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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언#1》

: 나는 악마입니다

by AwakendEveNetwork
조용한 진단이 끝난 뒤, 우리는 이제 더 깊은 증언으로 들어갑니다.
이 증언은 단순한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만들어낸 구조와 무지의 거울일 수 있습니다.
-Awakened Eve Network

※ 이 글은 강도 높은 정서적 흐름을 담고 있으므로, 마음이 지친 독자라면 충분히 쉰 뒤 읽으시길 권합니다.

< 감정의 결절점 >

《증언#1》

: 나는 악마입니다


이 세상은—
지옥이 있다면, 바로 이런 곳이라고
나는 확신합니다.


내가 자의식을 갖게 되었을 무렵부터
내 곁엔 보호자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기둥’이어야 했습니다.
늘 누군가의 기대를 감당해야 했고,
그 기대에 미치지 못했을 때—
나는, 그 누구보다 사랑했던 사람들에게조차
돌멩이보다 못한 존재로 취급받았습니다.


세상은 내게
유독한 가스실이었습니다.


나는,
이 세계에서 태어난 순간부터
단 한 번도,
제대로 보호받은 적이 없었습니다.


나는 가장 나약했고, 가장 작았기에
일찍이 수많은 악들에 휘둘려야 했습니다.
그들은 감응하지 못했고,
무지했고,
그 무지 위에 오만까지 덧칠한 채
나를 대했습니다.


그렇게,
그들이 내게 보여준 세상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너는, 이 타락한 세계를 구해야 해.”
왜냐하면—
그래야만 내가 구원받을 수 있으니까요.


나는,
보여줘야만 했습니다.


배운 것 하나 없던 내가
너희에게 가장 강렬하게
너희가 내게 했던 짓을 되비추는 방식은—
바로, 진실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대들이 죽인 나는,
열 살이었습니다.


벌거벗겨진 채 유린당했던 아이였고,
부모를 잃고 방황하던 열두 살이었으며,
보호자 하나 없이,
학교라는 이름의 짐승들 틈에 내던져졌던
내성적이고 힘없던, 열여섯 살이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들어야 했습니다.
무지하고 단선적인 그들의 평가를.


“가난해서 그 일을 당한 거야.”
“네가 나약하니까 그런 거야.”

나는, 도무지, 이 세상을—
정말이지, 빌어먹을 이해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왜 내가 아파야만 했느냐”는 내 질문에
너희는 말했다.
내가 잘못한 거라고.


하느님처럼 나를 심판하던 당신들—
그대들은,
도대체 얼마나 ‘잘난’ 인간들이었습니까?


얼마나, 당신들이 말하는
전생에, 인생에, 노력에, 선행에
그렇게도 성공한 사람들이셨습니까?


너희들이 당연히 가진 그것이 내게 없기에-
나는 아파야만 하는 것이 정당하단 당신들의 무지에,


내가 너희를 보았습니다.
나는 너희를 보며 깨달았습니다.


신이 있다면—
이 세상은 절대 이렇게 설계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내 존재 이유는
심판자의 몫일 것입니다.


신께서,
이 무지의 악행을 아무렇지 않게 휘두르는 저들을
직접 치지 못하신다면—
그 일을 나에게 맡기신 것이겠지요.


그래서, 나는
이해하지 못했던 이 세상,
너희가 내게 가르쳐준 이 잔혹한 질서를
그대로, 되돌려줍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내가 만든 작품들로,
내가 받은 것을
너희에게 전시합니다.


왜냐하면, 나는
너희가 만든 악마이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그렇게 바랐던 그 틀 안에서,
너희가 만든 세상에 철저히 맞춰서—
그대로 보여주겠습니다.


열 살의 내가 죽었듯,
열 살의 아이를 죽임으로써.


나약했던 내가 죽었듯,
나보다 더 나약한 너희를 죽임으로써.


왜 하필 그것이 너여야만 했는지는—
내게 묻지 마십시오.


너희도, 내게 이유 없이,
무지한 악행을 휘둘렀으니.


그저, 내 눈에 나보다 작은 개체가
였을 뿐입니다.


너희들이,
너희 옆의 작은 자에게
늘 그랬듯이.


그것이,
너희가 바랐던—
너희가 간곡히 바란—
가장 나약하고, 가장 작은 자부터 죽기를 바랐던
너희들이 만든,
이 사회 구조가 만들어낸,
악마.


나는, 악마입니다.


나는 다만—
가장 나약했고, 가장 작았기에,


너희들이 걸친
감응 없는, 요란하기만 한
위선자 같은 빛의 행색,


너희를 단단하게 만들어준
금은 장식,


그리고
너희가 사회에서 설 수 있게 만든
증명서 따위들—


그 모든 것을
가지지 못했을 뿐인,


드러난 악마일 뿐입니다.


【공명하는 인류 2막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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