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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월 Dec 03. 2018

갚은 그림자 속으로

고교 시절 교련 선생님을 추억하며

17번! 32번! 49번! 62번! 나와!!

한 교실에 60명이 우글거렸던 학창시절을 돌아보면 놀랍다. 허나 그 보다 더 잊을 수 없을 만큼 놀라운 것은 절대 학생들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 선생님에 대한 기억이다. 고교 시절 교련선생님은 작은 키에 깡마른 체구였다. 작대기를 하나 들고 조금만 헛점을 보이면 군기를 잡으셨다. 우리는 군인이었다. 학생호국단.  매년 교련사열(우리 고2때를 마지막으로 사라졌다)을 했고, 학생들은 분렬(정말 정신이 분열되는 제식 훈련이었다) 연습을 했다. 고2 마지막 교련사열은 좁은 운동장 덕분에 바닷가에서 했다. 그 한번의 행사를 위해 우리는 교련복을 입고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서에서 줄맞춰 걷기를 했다. 나는 1학년, 2학년때 반장도 반장이지만 고2때 우리 학년을 대표해서 무슨 중요한 학생회 간부를 했었기에, 교련사열때는 1학년 후배들의 중대장을 했다. 1-3학년 공히 12반이었고, 3개반이 하나의 중대였으니 각 학년별로 4개 중대가 있었다. 2-3학년반은 3학년들이 중대장을 하고, 1학년 4개 중대의 중대장은 2학년이 했다. 나는 1학년 어느 중대를 이끄는 중대장이었다. 중대장들은 워커를 신으라는 명을 받고... 시장통에서 워커를 사 신고 다녔다.

다시 돌아가 언제나 번호만 부르던 교련 선생님은 간부들만 호칭을 불렀다. 야 중대장 이리와, 고3선배인 학생회장은 대대장이다.. 야 대대장 이리와~~! 그외엔 언제나 번호였다. 절대 학생들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 고교시절 교련 선생님. 한번은 왠지 선생님께서 감성적모드로 들어간 것 같다는 섣부른 판단에 '선생님 저는 이성엽입니다.' 라고 슬쩍 도전해 봤는데, 역시 돌아온 것은 날카로운 몽둥이였다. 그렇게 잘도 안맞으며 학창시절을 보냈는데... 기억나는 몇 안되는 아픔이었다. 진짜 나무 방망이는 찔끔 눈물 날 만큼 아팠다.

이야기가 정확한지 모르나, 인간에 대한 실망 때문에 이름을 부르지 않는 것이라며 선배들은 나의, 아니 우리 후배들의 교련 선생님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줬다. 누가 들었는지 모르나 선배들도 선배에게 들었고, 그 선배들도 그들의 선배들에게 들었다는 것이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그 번호만 부르는 교련선생님은 육사출신인데... 김종필이 동기였고, 군사혁명을 반대하고 하지 않기로 했는데 했기에... 군 동료들에 대한 배신감에 전역을 했고, 학교에 교련교사로 전직을 했으며.... 사람의 이름을 부르면 정이들고, 정이들면 떼기 힘들고, 고통만 남기에... 절대 누군가에게 정을 주지 않기위해, 사람에 대한 실망을 더이상 하지 않기 위해 이름을 절대 부르지도 기억하지도 않기로 했다는 것이다. 미쳤다고 생각했다.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 할 수가 없었다. 세월이 그렇게 지났는데 과거의 감옥에 살고 있는 것 같은 모자만 눌러쓴 말라꽝이 교련 선생님...

놀랍게도 30여년이 지난 지금. 그의 감정이 느껴진다. 그의 아픔이 느껴지고, 그의 고뇌와 외로움이 느껴진다. 얼마나 아팠으면... 제자들의 이름조차 부르지 않겠다는... 결심까지 하며 살았겠는가?!  사실 살다보면 다 내 맘 같지가 않다. 그렇게 없는 이에게 퍼주고 또 퍼주었더니... 더 주지 않아 섭섭하다고 하고, 그 적은 인원 오직 그를 위해 정성과 열정으로 함께 했더니... 부실했다고 하고, 하늘이 두쪽나도 그 사람은 나를 지지할 것이라 믿었건만... 뭐 그런게 제대로 되겠어요?라는 이야길 들을때면 섭섭한 마음이 올라오는 것을 막을 수 없다. 나도 정주지 않으려면 이름을 부르지 말고 앞으로 휴대폰 끝자리를 불러야 하나?

그런데, 가만 돌아보면 다 맞는 말이다. 지도는 영토가 아니니... 각자 자신의 세상을 사는 것이다. 또한 각자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하는 것이다. 더 퍼주지 않아 섭섭했을 수 있고, 부실하게 느꼈을 수 있고, 그게 안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문제는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오히려, 문제는 나의 어설픈 기대나, 나의 순수하지 못함에 있다. 내 마음속 가려둔 그 무엇이 투사되서 나오는 것인데, 나 조차 그 기본적인 원리를 깜빡 깜빡 하기도 한다. 바보다. 지난 두 달간 전생에서 부터 함께 훈련하던 도반들을 수천년 또는 수백년 만에 만나 묵상/명상을 하고 있다. 리차드 러드는 나의 그림자를 속삭인다. '당신은 불평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인간적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 모두의 오라에 부정적인 주파수만 만들어낸다. 더 많이 불평할수록 당신은 당신과 세상에 더 많은 손해를 입히는 것이다.',  '당신의 판단이 당신의 정체성을 정의하고 당신이 더 안전하다고 느끼도록 만든다. 그런데 당신이 당신의 의견이라고 생각하면 할수록 당신은 더욱더 많이 방어해야 한다. 동일시가 문제다. 당신이 옳게 되려는 욕구를 놓아 버리기 위해서는 당신의 정체성을 더 느슨하고 더 가볍게 해야 한다.'. '당신의 생각 내용이 중요치 않다. 당신의 머리의 판단으로만 정체성을 구성하면... 당신의 주변으로 내보내는 요동치는 주파수를 통해 사람들을 부정적으로 자극할 것이다. 비록 당신의 판단이 당신에게는 긍정적이라고 느껴지더라도 당신은 그것을 너무 단단히 붙들고 있기 때문에 ... 오해될 가능성이 있다.' 수많은 충고를 들으며... 한달 내내 묵상으로 보내고 있다. 그저 희망이 있다면 '삶은 너에게 너 자신의 완성을 실현하기 위한 길을 끊임없이 제공하고 있다'는 속삭임.

'누군가는 검은머리동물은 거둬들이는 것이 아니다'라며 내게 일침을 고한다. 하지만 나는 DNA...게놈에 묻혀 있는 저주파 두려움의 유전적 연결고리를 이겨낼 것이다. 러드는 깊은 공포와 두려움은 면역체계 내에 깊숙히 자리 잡혀 있다고, 나의 높은 수준의 주파수와 깨달음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두려움을 통과하는 것이라 충고한다. 더욱 큰 용기가 필요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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