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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월 Jun 27. 2021

小門스님이 , 大門아니 나아가 無門이 되려면

마음공부는 속세를 떠나서가 아니라 시장통! 삶의 한 가운데서 해야 하는법

운영팀장과 이야기가 되었다. 원래는 9시에 마치는 것이나 9시30분까지 자유롭게 운영하면 되는 것으로. 팀장에게 감사를 표했고 팀장도 웃으며 화답했다. 이 아름다운 청정도량에서 도반들과 함께 명상하는 기쁨은 온 세포에 각인될 추억 아닌가! 게다가 금강산과 가까운 정기 넘치는 곳에서... 


소리가 좀 큰가 싶긴 했다. 평소 볼륨이나 고즈넉한 산사의 밤은 더 없이 고요했기에. 시간은 9시 28분... 이제 마무리 해야 겠다 싶은데, 팀장께 전화가 왔다. 다급한 목소리다.  "소문스님께서 제게 화를 내십니다. 지금 정리하셔야 겠습니다". 사람이 촉이란게 있지 않은가? 아하! 명상음악소리가 좀 컷나 보다. 지나가던 길손이 민폐를 끼칠 순 없는 법. 약속시간은 정확하게 지키는 것이 많으니 29분에 마무리 하고 30분에 소등하고 자리를 를 비웠다. 모두 조용히 객사로 이동해 약속대로 10시에 소등 후 취침. 


문제는 밤 늦은 10시에 도착한 문자다. 소문스님께서 화가 단단히 나셨는지 평소 답지 않게 장문의 문자를 여러통 보냈다. 그리곤 성이 안찼는지 짧은 문자를 추가로 보냈다. 감정이 들떠 있는 이에게 바로 논리로 설명하는 것은 적절치 않아 그날 밤은 고요히 보내고, 다음날 아침공양시간에 만난 운영팀장께 상황을 물었다. 그리고, 받은 문자 내용중 몇가지 팩트 확인을 하였다. 이야기가 달랐다. 


소문스님께서 보낸 문자의 요지는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8시 50분에 마쳐달라 했는데. 9시30분까지 진행되었다. 

  2. 음악 소리가 컸는데 주지스님과 다른 스님들께 입장이 곤란하게 되었다.

      많은 스님들께 내가 원성을 듣게 되었다. 내 입장이 매우 곤란하다. 

  3. 내일 참석한 사람들과 차담은 취소하겠다.

추가문자, 

  4. 다음부터는 다른 곳으로 가라. 오지 마라. 


이런 큰 결례가 있나. 다음날 체크한 팩트체크에서 절의 템플스테이 운영팀장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 했다.

1. 9시30분까지 하는 것으로 보고를 했고, 팀장인 자신도 그렇게 알고 9시30분까지 하시라 말씀 드린 것입니다. 

2. 음안소리가 커서 주지스님과 다른스님이 불편한것은 팀장으로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주지스님 신경안쓰시고, 다른 스님 안계시거든요. 

추가로 이야기 한다, 소문스님 조금 신경질 적이시고 운영하시는데 이상한 말씀 많이 하셔서요... 일전에 계시던 등산사에서도 다른 스님들이 힘드셨다고 하던데요...


나는 혹시 얼마나 큰 결례를 범했는지를 알아보려고 물었는데, 운영팀장은 오히려 나를 위로하면 나아가 자신을 위로해 달라는 이야기로 이어진다. 음... 이건 내가 상상한게 아니었다. 내 계획에 없었다. 


이유 불문 누군가 불편했다면 송구하고 미안할 따름이다. 하지만, 왠지 소문스님의 문자는 마음에 걸린다. 그가 수도자의 길, 구도자의 길을 떠나 용맹정진한 세속시절 벗님이었기 때문이다. 엄친아로 불릴만큼 좋은 대학을 나와 대한 최고의 회사 중 한곳을 다니다 서른즈음에 결단을 내렸으니 그의 내공과 깊이가 얼마나 무르익었을까? 한편으론 그 용기를 부러워도 하기도 하며 마음으로 응원헀던 친구였기 때문이다. 백배 원인 제공을 한 나로써는 고개숙여 사죄해도 모자랄 판이었다. 


허나,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마음 한 구석이 씁씁했다. 소문이 나에게 보낸 문자의 격이 떨이지고 힘어 없었기 때문이다. 강력한 한마디로 내 마음을 흔들기를 바랬건만, 오히려 안타까움이 커져오는 통에 돌아와 며칠을 고민하다 편지를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오랫만에 손편지를 썼다. 내용은 이러하다. 


소문 스님,

귀한 장소와 시간 허락해서 너무도 감사하다. 

늦은 마무리와 높은 볼륨의 명상음악으로 폐를 끼친점 재삼 용서를 구한다. 

부끄럽지만 그래도 세속시절 친구로서 감히 말씀올린다. 


1. 팀장과 이야기 해보니. 소통의 문제가 있었습니다. 운영총괄스님이라면 운영전반에 대한 사항을 놓치고 있지 않아야 합니다. 팀장이 9시30분까지 가능하다는 의견을 전해주었고, 그것이 보고까지 되었다면 그내용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 


2. 팀장이 오히려 소문스님에 대해 블라블라 이야기를 타인에게 하는 것은 안타깝습니다. 비록 절간이지만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해주시길 기대합니다. 


3. 앞으로 충고할 땐 타인 때문이 아니라 내가 그렇게 생각한다고 이야기 해주십시오.  소리가 시끄러웠다면 "거사님 제가 듣기에 소리가 커서 불편했습니다."라는 돌직구를 던지셔야지, 소리가 커서 다른 스님들이 불편해 하시고 나를 탓하면 내가 아주 힘들고 어렵다라고 하는 논리로 자신이 피해자가 되고, 희생양이 되는데 그것이 당신 때문이다... 라는 간접 화법은 힘이 없습니다. 그냥 "내가 불편했소!"라고 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말에 힘이 있고 령이 사는 것입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화자의 생각이고 전달입니다. 이것이 clean communication입니다. 소문스님은 어떻게 생각하셨는지요? 본인은 시끄럽지 않은데 다른 스님이 시끄럽다고 하신다면, 오히려 그분들께 시끄럽지 않은데요? 라고 이야기 할 수 있는 것 아닌지요. 따라서, 타인의 생각이라며 전해주신 말씀은 소문스님의 생각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대중들을 상대하실 때 "내 생각은~", "내 느낌은~"이라는 순수의식pure awareness의 차원에서 이야기 하시길 기대합니다. 그래야 힘이 있습니다. 그래야 진실한 것입니다. 저는 그리 애둘러 타인들을 빗대에 이야기 하시는 소문스님의 말씀에 나의 잘못에 대한 죄책감 보다는 소문스님의 소통에 대한 아쉬움이 더 큽니다. 기대가 커서 일까요?


4. 차담 취소라니요?

세상에! 차담은 스님들이 할 수 있는 죄고의 기부입니다. 이는 내가 대단한 이야기를 대중들에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불교를 모르는 많은 이들에게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전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입니다. 영화 싸일런스를 보면 일본에 기독교를 전파하는 선교사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목슴을 걸고 선교하지요. 한국 카톨릭에서도 첫 셰례를 받은 이승훈, 첫 사제서품의 김대건 까지... 자신의 믿음을 알리는 것은 축복입니다. 예수의 열두 제자중 인도까지 선교하러 갔다가 가죽이 벗겨져 십자가에 거꾸로 못박혀 순교한 12제자중 한사람인 Bartholomew 역시 한명 한명을 만나는 것이 미션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귀한 시간 (교회를 다님에도 불구하고) 큰 마음먹고 템플스테이에 참여한 분들을 만나는 시간을 취소하다니요? 이것은 직무유기입니다. 또한 얼마나 불교계가 권위적이고 허례허식에 빠져있는지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던데 차담은 소문스님이 은혜를 베푸는 것이 아니라, 대중들이 그대에게 기회를 주는 공부와 수련이 장이란 말입니다. 승복을 입은 자일수록 더 낮은 곳으로 임해야 할터인데 스스로를 높은 격으로 올리는 순간 가장 낮은 곳으로 떨어짐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오. 


5. 성이 덜풀렸는지... 다음에는 오지마라. 라는 추가로 온 단문에 대해선 내가 토를 달지 않겠소이다. 그대 스스로 얼마나 반응적 행위를 했는지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혼자서 수련을 많이 해서 그런가 보오. 친구로서 권한다면 우리 소문에겐 혼자서 수련하는 그 무엇 보다는 타인들과 함께 훈련하는 축구나 배구를 꾸준히 하며 몸과 마음을 단련하는 것이 어떨까 하오. 사람이 다루는 병장기는 그의 의식 수준을 따라가게 되어있는데, 그가 하는 훈련법 역시 그의 그릇의 한계를 그려내기 때문이오. 혼자서 결코 다 해낼 수 없는 축구, 배구... 서로 주고 받고, 도와주고 패스하는 단체 운동이야 말로 진짜 마음공부의 도구가 아닐까 하오. 


아울러... 쉽게 반응하고 감정적 표현이 나오는 것은 어쩌면 그대의 건강에 이상 신호가 온 것은 아닌가 걱정이 되오. 산사에서 생활하지만 다양한 비타민을 챙시기라 편지와 함께 동봉하오. 부디 그대의 출가가 단순히 '00 주식회사'에서 '**사'로의 위치 이동이 아니었길 바라오. 


오랫만에 손 편지를 쓰니 손이 얼얼했다. 세상에 10장이 넘다니... 위의 내용은 대강 요약한 것이다. 실제 편지는 훨씬 공손하고 정중하고 납작 업드려 적었다. 


그리고, 그 편지는....


부치지 않았다.


아니


부치지 못했다. 


청아한 어느 숲속에서 찢어 버렸다. 다음과 같은 외침과 함께... "나나 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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