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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순하루 May 10. 2023

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







하늘나라에 가 계시는

엄마가

하루 휴가를 얻어 오신다면

아니 아니 아니 아니

반나절 반시간도 안된다면

단 5분

그래, 5분만 온대도 나는

원이 없겠다


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_정채봉








나는 엄마가 없다. 오늘같이 부모님을 생각하는 날이 다가오면 사무치게 그립지만 이미 돌아가신 지 19년이 되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아프다. 그렇다고 아버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없는 분이나 다름이 없다.

이미 엄마가 돌아가시고, 1년도 채 되지 않아 동생들과 살고 있는 집에 12살 어린 식당 아줌마를 데리고 들어왔고, 난리를 치던 동생들은 나에게 울며 전화하고 그때 수화기 너머의 아이들의 목소리를 잊을 수가 없다. 그리고 수차례 바뀌는 여자들로 인해, 가족들 사이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 


"야, 솔직히 까놓고 이야기해서 너희 아버지 여자 바뀌는 횟수가 우리 아들 여자친구 바뀌는 수보다 많지 않니? 해도 해도 너무 한다 정말"


작은 집 식구들이 그렇게 흉을 보고 그랬다. 그런 아버지였다. 여자가 수없이 바뀐다고 해서 나쁜 아버지라고 말할 수는 없다. 이미 배우자를 잃은 슬픔을 그 어떤 스트레스보다 심했을 것이고, 엄마와의 사이가 나빴던 것도 아니었고, 배우자 존재의 상실감은 그래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자식된 우리들이 참을 수 없었던 것은 생전 자상이라고는 1도 없던 엄마에 대한 태도를 이제는 잘 보여야 하는 이성 앞에서 하는 이율배반적인 태도이다. 이에 대해 불만이 깊고 화가 많이 난 우리들에게 쏘아붙인 말은 


"그래서 니들이 엄마 살아생전에 얼마나 잘했는데? 그딴 말을 할 자격이 없어."


그렇게 서로는 각자의 합리화 속에 감정의 골은 깊어졌다. 우리는 엄마를 잃었고, 남편은 아내를 허망하게  잃었다. 한 겨울 사철탕을 점심으로 먹던 식당에서 말이다. 상실의 슬픔은 그 무엇도 위로를 할 수 없었고, 가족은 해체되었다. 엄마가 안 계시면 서로를 의지할 줄 알았겠지만, 각자의 슬픔은 각자도생으로 처리하고 있었다. 그 안에서는 어떤 유대감도 생길 수 없는 그런 날들의 연속이었다.


 



어느 날, 정채봉 님의 [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이라는 시를 만나게 되었다. 단 몇 줄을 읽는데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고 울컥하는 마음은 쉬이 진정이 되질 않았다. 내 마음을 읽어주는 단 몇 줄의 시는 그냥 충분했다


우리 엄마는 그냥 허망하게 마지막 인사도 없이 갔다. 쓰러지기 전날, 퇴근한 나와 동생에게 당신이 자고 있는데 시끄럽게 한다고 욕을 한 바가지 퍼부었고 다음 날, 쓰러지셨다. 나는 출근하는 길에 작은 엄마로 부터 엄마가 위중하다는 연락을 받고 회사가 아닌 병원으로 차를 돌렸고, 중환자실에서 의식 없이 누워있던 엄마의 모습이 마지막이며, 결국 며칠 사경을 헤매다 본인의 생일날 이 세상과 작별을 고했다. 

친척들은 그때 모두 한 목소리로 말했다. 태어나고 죽은 날이 같으면, 제 명에 살다가 간 거라고.


자식 된 입장에선 그 따위 말들은 소용이 없었지만, 참으로 거슬리게 말들이 많았고 정신없이 장례를 치른 후 집에 와 배가 고파 밥을 먹는데 김치냉장고에는 우리가 좋아하는 오이소박이, 배추김치가 하나 가득 들어 있었다. 잘 익어 한껏 맛이 오른 김치와 함께 따순 밥을 먹던 기억이 오늘 같은 날 느닷없이 떠오른다. 




꿈에서라도 보면 좋겠지만, 숱한 세월동안 꿈에도 찾아오지 않는데에는 이유가 있겠지라고 생각해 본다. 

나는 엄마가 없어서 참 속상하다. 오늘같이 다들 찾아갈 부모님이 있고 애잔한 마음들이 SNS 올라올 때면, 더 서글퍼지는 그런 날이다. 그냥 나는 오늘이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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