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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잡식성 염소 Jul 25. 2024

오랜만에 만난 사진을 찍을 수 없는 전시

서양미술 800년 展

전시관, 미술관에 사진 촬영이 허용되고 인스타그램이 떠오르며 전시 업계에 순풍이 불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몇 없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인생샷을 남기기 위해서든 자랑하기 위해서든 어떻든 대중들이 전시와 미술에 관심을 많이 가지는 그 자체는 절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과하게 '사진 만을 위한 전시'를 보러가게 되면 조금 힘든 것도 사실이다. 딱히 인생샷에 미련이 없는 나는 내가 나오는 사진은 거의 촬영하지 않기에 작품을 감상하거나 방문 기록용으로 맘에드는 작품을 찍는게 나의 전시관람 법인데, 사진이 관람을 앞서게 되면 '내가 여기 왜 왔지'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모르는 '사진을 찍을 수 없는 전시'들도 많았겠지만 정말 오랜만에 사진을 찍을 수 없는 전시를 보러가게 됐다. (근데 막상 나도 관련 업계에서 일을 할 때 무조건 사진촬영 허가해야된다고 부르짖었었다. 변명하자면 바이럴 효과의 차원이 다르다. 사진 촬영을 허가하지 않는 몇 가지 예상되는 이유가 있긴하지만.. 그래도 신기했음.) 


'서양 미술 800년 展'
더현대 서울 6층 ALT.1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고전 유럽미술 작품부터 근현대까지 유럽미술 원화작품을 관람할 수 있는 전시이다. 맘에 드는 작품은 나중에도 찾아볼 수 있게 작품과 캡쳐를 찍어두기에 카메라를 켜고 입장하려고 하는데 '사진 촬영은 불가하다'는 안내를 받았다. 솔직히 말해서 살짝 당황했었다. 우선 분명 예매처에 고지가 되어있을텐데 당연히 촬영할 수 있겠지라는 생각에 제대로 읽어보지 않았다는 것과 이제는 촬영하는 것이 너무 익숙해졌구나 싶은 생각 때문이었다. 처음 성인이 되어 전시를 보러다니던 시절엔 한창 사진 촬영이 막 허가되기 시작하던 때라 논란도 많았고 관련 의견도 분분했던 것 같은데 이제는 촬영이 허가되지 않으면 어색하다니..


그렇게 관람하기 시작한 전시는 정말 좋았다. 미디어아트가 휩쓴 트렌드로 전통 원화를 보는 것은 아트페어를 제외하면 오랜만이기도 했고, 시대의 흐름에 맞춘 작품들은 하나하나 눈길을 끌지 않는 것이 없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작품 스타일과 사람에 대한 표현법 그리고 근현대로 갈 수록 느껴지는 기술의 발전은 전시의 재미를 한층 북돋아 주었다. 특히 관람하는 모두가 촬영을 하지 않다보니 작품에 한층 이입할 수 있었고 번잡하게 사진촬영을 기다리거나 할 필요가 없어 관람에 방해되는 요소가 전혀 없었다. (촬영하느라 줄이 밀리거나 사람들이 동선을 피해다녀야 하는 것들..) 삶에서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디지털 디톡스가 이루어진 순간의 느낌은 꽤 좋았다. 사진을 별로 찍지 않는 편이니 항상 전시를 집중해서 잘 관람했다고 생각했는데 그 너머의 영역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달까. 다시 보지 못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집중의 강도와 마음이 많이 달랐다. 


<서양미술 800년 展>에는 로빌란트 보에나 갤러리의 작품들이 전시되었고 원하는 작품은 구매까지 가능했다. 워낙 집중해서 잘 봤기에 맘에 쏙 들어오는 작품이 정말 많았지만 구매까지 가기엔 주머니 사정이 많이 어려웠다. (슬픔) 언젠간 맘에드는 그림을 구매해보고 싶다는 로망은 이루어질 수 있을지.. 아쉽지만 맘에 들었던 작품의 엽서만 구매해서 전시장을 빠져나왔다.


이후 1층에 따로 전시되어 있는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 '생명의 나무'를 보고 있는데 너무 썰렁했다. 첫 프리즈 아트페어에서 데미안 허스트 작품을 관람했었는데, 그 땐 사람이 너무 바글바글해서 제대로 관람도 못했었다. 그 때와 지금 이 곳에 모여 있는 사람들의 관심사가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사진 촬영을 목적으로 전시를 보기시작했더라도 앞으로는 그것을 너머 예술 그 자체에 많은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참고로 지금은 사진 촬영이 된다고 한다! 잠깐의 촬영 비허가 시기에 관람했던 내가 오히려 승자가 된 묘한 기분. 하지만 진짜 승리자는 작품을 구매할 수 있는 분들이겠지! 오늘도 로또를 사러가본다.


전시 예매 : https://tickets.interpark.com/goods/24007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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