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웃음의 대학> 리뷰
"마음을 헤아리기 어려운 인물을 다룬 그림이나 연극을 더 좋아하는 이유는? 이에 대해서는 철학자 리처드 로티가 타당성 있는 설명을 제시한 바 있다. 학자 생활 말년에 로티는 문학의 교육적 효과에 점점 더 관심을 기울이게 됐다. 그 효과란 '이해하려고 노력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에 대한 태도를 바꿔 타인의 심리상태를 이해하게 하는 일'이었다. 로티는 이것을 예술의 '정서 교육'이라고 일컬었다. 그에 따르면 훌륭한 소설은 유쾌한 오락물인 동시에 우리를 더 나은 인간으로 발전시키는 도구가 될 수 있었다."
-책 <지루하면 죽는다> 中 미스터리 전략4-마성의 캐릭터
교육업에 꽤 오랫동안 종사하신 아버지 덕분에 나의 대학시절은 다른 친구들과 달리 '과외,학원' 알바로 도배되어 있다. 수학을 많이 썼던 전공과는 다르게 '영어/국어'과외로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과외 선생님으로써는 꽤나 괜찮은 커리어(?)를 보유하게 되었다. 선생님이라는 직업에는 여러가지 알려진 애로사항이 있지만 막상 수업에 들어가보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당황스러움에 직면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특히나 국어 수업이 그러하였다. 뼛속까지 문과인 나에게 문학수업은 항상 즐거운 시간이었고 흥미로운 소재였지만, 몇몇 학생들에게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특히 이과 친구들이 문학수업을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놀랍게도 대다수의 학생들이 어려움을 호소하는 구간은 바로 '대체 왜 이게 사랑인지 모르겠어요!' 또는 '등장인물들이 이렇게 행동하는게 이해가 안가서 문제를 틀렸어요'였다. 후자의 질문은 그나마 논리적으로 설명이 가능한 구간이 존재하지만 등장인물의 세세한 감정선까지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고 나는 '넌 첫사랑 안해봤니?'라는 말도 안되는 질문을 학생에게 하기에 이르렀다.
연극 <웃음의 대학>을 보며 나는 과거의 학생들을 다시 만나는 기분이었다. 1940년대 일본을 배경으로 한 <웃음의 대학>은 희곡을 쓰는 작가와 문학을 검열하는 검열관의 이야기를 담은 연극이다. 검열관은 소위 '문학의 필요성'에 대해 이해도가 아예 없는 인물이었고, 국가에 대한 충성심만이 깊이 자리한 인물이다. 그런 검열관에게 희곡은 그것도 서양을 기반으로 한 대본은 하등 가치가 없는 무언가이며 문화예술은 오직 국가를 위한 프로파간다로서만 기능하는 것이었다. 그러한 그가 작가와 함께 검열 (이라고 부르고 대본 수정이라고 한다)을 진행하며 변화해가는 모습은 '예술의 정서 교육'의 표본이라고 생각하였다. '읽는다-이해하려고 노력한다-질문한다-스스로 다시 생각해본다'라는 정말 완벽한 교육적 커리큘럼으로 진행되는 검열관의 희곡 분석(다시 말하지만 그의 본업은 검열이다)은 문학을 이해하는 것에서 나아가 웃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분석으로 이어졌고 마지막에는 인간에 대한 깊은 공감과 이해로 마무리되었다.
그에게 '이해하려고 노력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되는 사람들=희곡 작가와 극단'에 대한 태도를 바꾸게 하고 '타인의 심리상태=작가와 관객의 심리상태'를 이해하게 하며 자신의 삶의 가치를 바꾸게했던 모습은 정말이지 여전히 문학이 필요한 이유를 보여주는 완벽한 서사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검열관은 관객이 보기에 더 나은 인간이 되어있었다.
여기까지만 보면 마치 검열관이 희곡을 읽으며 스스로 변화해간 것 처럼 보이지만 그의 교육에는 작가라는 훌륭한 선생님이 존재했다. 물론 자기주도학습을 통해 '예술의 정서교육'을 훌륭하게 수행하는 학생도 있지만, 검열관처럼 완고하고 나이가 있어 변화가 어려운 학생에게는 무릇 설리번 선생님같은 존재가 필요한 법이다. 작가는 학생의 무리한 요구를 모두 들어주는 척하지만 결국 자신이 원하는 방향성으로 끌고가는 선생님에게는 어려운 교수법을 선택했는데 수학, 과학, 사회과학, 역사 등 다른 과목과는 달리 오직 문학/예술 교육에서만 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각자 작품을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바가 다르고 그 누구의 감상도 정답이 아니기에 '틀렸다'라고 말하기 보다 스스로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무엇인지, 직접 그 상황에 놓이면 어떠한 기분이 들지에 대해 선생님이 물어보고 고민하게 하는 것. 그것이 문화예술 교육의 핵심이지 않을까. 연극 내에서는 직접적으로 언급되지 않지만 변화된 검열관의 모습을 보며 작가는 어떤 생각을 했을지 궁금했다. 즐거워 하는 그의 모습에 뿌듯했을까 아니면 급격한 변화에 무서웠을까?
사실 '더 나은 인간'이라는 정의는 각자의 가치관과 생활 환경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누군가는 감성적으로 변화한 검열관의 모습을 보며 이상하게 변했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다시금 보호주의와 민족주의가 강해지고 전세계에서 전쟁이 터지고 있으며 종교갈등은 더더욱 심해지고 있는 가운데 '이해하려고 노력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은 사실 없으며 '타인의 심리상태를 이해하게 하는 것'은 얼어붙은 사회를 따뜻하게 만들 가장 기초적인 가치관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나도 '이해하려고 노력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을 자주 마주친건 사실이지만,,, 문학, 공연, 예술을 접하며 어제보다는 좀 더 괜찮은 사람이 되어 있기를, 그러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이 되기를 그러하여 '예술의 정서 교육'을 다른 사람들에게 설파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