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미쓰리는 알고있다'
넷플릭스를 보는 시간보다 넷플릭스에서 콘텐츠를 찾는 시간이 더 길다는 요즘. 오히려 선택지가 너무 많아서 그런지 볼만한 콘텐츠가 없다고 느낄 때가 많다. 넷플릭스 뿐만 아니라 다른 OTT도 마찬가지인데 그래서 그런지는 알 수 없지만 최신작보다 옛날 콘텐츠를 찾아보게 된다. 분명 내가 놓친 콘텐츠가 있을 것이라는 굳건한 믿음! 그리고 그렇게 발견하게 된 드라마가 있다.
기억을 더듬어 더듬어 올라가보니 얼핏 이름을 들었던 것 같기도 하지만 무슨 내용인지는 몰랐다. 2020년도면 그렇게까지 오래된 드라마도 아닌데 뭔가 옛스러운 포스터에 이끌려 1화를 클릭했고 그렇게 정주행을 완료했다. (4화라는 짧은 분량도 한 몫했다.) 미친듯이 재미있고 반전이 거대하거나 CG가 끝내주거나 출연진이 엄청 유명한 건 아니었다. 그렇기에 오히려 신선했다. 오징어게임의 성공 이후 드라마들에서 보이던 거대한 자본력보다는 내용 그 자체로 끝까지 보게 만드는 매력이 이 드라마에는 있었다.
앞서 말했듯이 뭔가 대단한 반전이나 대단히 특별한 내용은 없었기에 누군가에게는 재미없는 드라마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가 이 드라마를 정말 재밌게 봤던건 어느 아파트에서나 볼 법한 사연과 캐릭터를 가진 인물들을 현실적으로 잘 풀어냈기 때문이다. 같은 건물에 사는 사람들 간의 갈등과 살인사건 범인 추적이라는 비슷한 소재를 잘 보여준 다른 드라마인 '타인은 지옥이다'와 비교해보면 캐릭터성의 차이를 명확하게 느낄 수 있다. 타인은 지옥이다는 연쇄살인범과 같은 일상생활에서 만나보기 힘든 캐릭터가 나오지만 '미쓰리는 알고있다'에서는 오늘도 우리 동네에서 볼 수 있는 사람들이 나온다.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을 평범하지 않게 그러나 세련되게 연출함으로써 공포감을 극대화했던 타인은 지옥이다와는 달리 엄마의 수다 속에 한 번쯤 나왔던 그 때 그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오기에 더 무섭고 슬픈 장면이 많았다.
조합장 자리를 노리는 재건축 아파트 주민들, 동네 소문의 근원지인 복덕방, 미쓰리라는 친근하지만 이제는 듣기 힘든 호칭의 복덕방 주인, 자식 뒷바라지에 있는 재산을 다 날렸지만 그래도 아들이 쓰던 한국대(아마 서울대)의 모자를 쓰고 다니는 할아버지, 치매 할머니, 아픈 노모를 모시는 자식, 어린 자녀의 학군 때문에 재건축이 내심 미뤄지길 바라는 엄마 등
너무 많이 듣고 봐서 이제는 별다를 것도 없는 캐릭터이지만 그들의 사연이 조금씩 사건과 얽히며 드러날 때가 되면 다른 어떤 드라마보다도 슬펐다. 어쩌면 과거의 누군가였던 그 사연이 내가 될 수도 있는 나이가 되어서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캐릭터의 범법행위가 개인사연으로 덮어질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런 것을 드라마가 원하지도 않는다. 그냥 담담히 흔한 개인사가 한 명을 어디까지 몰고갈 수 있는지 보여줄 뿐이다. 고길동이 짠하면 어른이 된 것이라더니 별다를 것 없는 사연에 왜이렇게 나까지 힘들었는지 참 알 수가 없었다. 그것이 극본과 연출의 힘이겠지.
또한 작가는 복덕방의 주인인 '미쓰리'를 통해 정말 하고싶었던 말을 전했다. '모든 사람은 자신만의 달이 있다', '어쩌면 진실은 앞이 아니라 뒤에 있는게 아닐까?' 작가는 달의 이면이라는 비유를 통해 한가지씩 숨기고 싶은 비밀을 안고 사는 사람들의 삶을 표현했다. 누군가에겐 흔해빠져 별 볼일 없는 그 사연이 얼마나 한 사람을 고통 속으로 몰아넣을 수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큰 나비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 우리는 앞면밖에 볼 수 없는 달처럼 어쩌면 사람들의 진실 없는 앞면만 보고사는건 아닌지 말이다.
드라마를 보면 알겠지만 어느정도 진행되면 사건의 큰 그림은 어느정도 눈에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건에 대한 스포는 하지 않으려한다. 사건에 집중하며 캐릭터를 하나하나 살피고 그들의 뒷면을 발견하는 것이 이 드라마를 보는 진정한 묘미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오늘도 뒷면을 열심히 지켜가며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그 뒷면을 지키려는 사람들의 노력이 만들어낼 좋을지 나쁠지 알 수 없는 결말을 위해 이 드라마를 추천한다.
그리고 제목처럼 미쓰리는 알고 있었다. 사건의 진실이 아니라 삶의 진리에 대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