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끼면 똥된다’ 휴가에 대한 나의 철학이다. 돈의 속성이 모이면 힘을 가지는 것이라면, 휴가의 속성은 완전히 반대다. 휴식은 모아도 삭제되거나, 그저 계속 괴로워지거나,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다. 이것이 내가 지난 10년간 사업을 하면서 얻은 깨달음이다. 그때부터 나는 갈 수 있을 때 여행을 가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언제나 내키는 대로 온전히 떠나지는 못했다. 마음 한구석에는 언제나 ‘너 그럴 자격 있어?’ 라는 물음이 가득했으니까. 그 끝에 타협으로 선택한 여행들은 제주였다.
올해로 매해 6번째, 제주에서 늦은 여름 즈음 휴가를 보낸다. 극성수기인 7월말에서 8월초, 공장이 모두 문을 닫고 한 마음 한 뜻으로 휴가를 떠날 때 기간에 맞춰 함께 쉬지 않는다. 대신 비행기 값이며 숙소 값이며 저렴한 때에 최대한 회사에 나의 거취를 알리지 않은 채 여행을 떠난다. 내 맘대로 떠날 수 있는 것은 사업자인 나와 남자친구의 특권이다. 남자친구는 혼자 일하는 회사를 운영해 자신이 휴가를 선언하면 꽤나 자유로워진다. 반면 나는 플라스틱제조 공장을 운영 중이다. 플라스틱 제조공장은 시간이 돈이다. 공장이 가동되는 만큼의 시간이 돈이기 때문에 공장운영에 이슈가 없도록 상시 핸드폰과 무거운 노트북과 각종 OTP카드를 이고 지고 다녀야 한다. 내 맘대로 여행은 특권이지만 이고 지고 다니는 물건들은 휴가를 휴식답지 못하게 만드는데 큰 몫을 했다.
이제까지 쌓여온 제주 여행 데이터를 통해 우리는 몇 가지 문제점을 찾았다. 회사는 일을 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주중 일하는 시간에는 나를 찾는 연락이 계속 온다는 것, 같은 이유로 내가 놀고 있음에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었다. 직장인이라면 아무래도 휴가만큼은 그동안의 노고를 떠올리며 기분 좋은 마음으로 훌훌 털고 가겠지. 물론 한 번도 직장인인 적이 없어서 그게 정말인지는 모른다. 그러나 사업자의 휴식은 그 또한 모두 내 책임이기 때문에 항상 마음 한 구석엔 불안을 안고 여행을 떠난다. 이번 여행도 지난 제주처럼 모든 짐을 진 채 알 수 없는 동동거림과 함께 시작했다. 이 여행이 이전과 전혀 다른 경험을 안겨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제주를 자주 가게 된 것은 남자친구의 찐친 ‘우럭’이 제주에 정착해서부터다. 우럭은 자신의 이름과 비슷하면서 이쁘게 생겼는데 아낌없이 맛있는 우럭이라는 별명을 스스로 지었다. 그 별명에 걸맞게 그는 물과 관련된 모든 스포츠에 능하고 각종 해양생물부터 민물고기의 도감을 외우고 있을 정도로 관심이 깊다. 과감한 퇴사 뒤에 제주살이를 하며 유튜브로 바다이야기를 전하던 우럭은 그간 우리의 제주 여행에 지대한 도움이 되었다. 그의 집에서 자며 숙소비를 아끼고, 그의 차를 타고 여행을 했기에 렌트도 필요 없었다. 제주를 선택한 것에 이 절약은 큰 위로였다. 한 가지 문제는 나와 남자친구가 그리 물과 친하지 않다는 점에 있었다.
남자친구는 그나마 나보다 형편이 나았지만 매번 허우적거리는 나를 챙기느라 긴장 상태였다. 무릎까지 오는 높이에서 물장구나 치던 우리는 우럭과의 제주여행에서 여러 챌린지를 마주했다. 아무래도 섬나라 제주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 우럭은 우리가 제주를 갈 때마다 제주 바다를 여실히 느낄 수 있도록 온 정성을 다해 플랜을 짰다. 낚시나 해루질부터 스노쿨링, 프리다이빙에 이르기까지. 스노쿨링과 프리다이빙에 도전할 때면 더 좋은 스팟과 다양한 물고기를 보여주고 싶어했다. 문제는 그 만이 아는 히든 플레이스는 파도가 매섭거나, 매우 깊은 바다일 때도 많았다는 점이다. 게다가 실력은 없는데 겁은 상실한 나는 수트부터 구명조끼와 스노쿨링 장비까지 장착한 내가 마치 인어공주라도 된 양 조심하지 않고 날뛰었고, 남자친구는 그런 나를 챙기느라 바빴다. “어디가니? 이쪽으로 와야지” “그쪽 발 안 닿는 곳이니까 알고 있어야 돼” 이런 물놀이가 끝나고 나면 우리는 이것이 힐링인지 극기훈련인지 헷갈리고는 했다.
우리와 다르게 물 위에서 날아다니던 우럭은 이제 스쿠버 다이빙 전문 강사 자격증을 따서 ‘상상바당’이라는 다이빙 샵을 차렸다. 이번 여행은 오픈 후 바빠진 우럭의 가이드 없이 우리끼리 여행하는 오랜만의 제주였다. 남자친구와 나는 MBTI ‘P’ 성향의 즉흥적인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것저것 스케쥴을 정한 상태에서 여행을 하지 않는다. 숙소 정도만 예약한 상태에서 듬성듬성 굵직한 계획들만 정하는 편인데 이번 여행의 첫 계획은 ‘맹그로브 제주’에서 바다를 배경 삼은 워케이션이었다. 워케이션은 일과 휴가의 합성어로 여행지에서 원격 근무를 하며 여가를 즐기는 근무 형태다. 맹그로브는 일상에서 벗어나 몰입을 돕는 워케이션 공간으로 유명한 곳이다. 내가 제주에 있을 첫 날, 그 시간은 업무시간이기에 연락이 많을 것이고, 마음도 편치 않을 것이 분명했다. 그런 의미에서 맹그로브는 본격적으로 휴식을 취하기 전에 하반기 진행해야 할 일들에 대해 바다를 바라보며 정리하면 좋겠지? 하는 마음이었고 ‘놀러 왔지만 놀러 오지 않았다’라고 스스로 마음먹기 위한 일종의 장치이기도 했다.
_
렌트를 하고 맹그로브를 향하는 동안 차가 꽉 막힌다. 이곳이 교통체증 청정구역 제주가 맞는 것인가. ‘여기 주차해도 되는 거 맞나? 괜찮겠지?’ 맹그로브 근처에 왔는데 주차부터 어렵다. 차가 없다는 제주에서 주차까지 쩔쩔매고 있다니, 점차 짜증이 밀려왔다. 설상가상 역시나 나를 찾는 전화들이 몰아친다. “대표님 이거 어떻게 하죠?” “견적 넣어야 할 게 있는데 보내줄 수 있어?” 나는 놀러 왔지만 직원들은 내가 놀러 왔다는 것을 알 필요가 없다. 공장은 돌아가야 하니까 바로 필요한 일을 해주자 싶어 주변에 괜찮은 카페를 찾아 나섰다. ‘제주 스러운 느낌 있는 카페를 가자. 그럼 그것도 휴식이야.’ 그러나 카페는 보이지 않았고 늦은 여름임에도 불구하고 푹푹 찌는 날씨에 지쳐갈 때 보이는 것은 서울에서도 자주 보던 프랜차이즈 컴포즈 커피다. ‘하하 참 이게 최선의 선택인가? 내가 꽉 막힌 도로에서 운전하고 컴포즈 커피에 가고 전화에 시달리러 여기까지 왔단 말인가.’
그런 마음 속에서도 어쨌든 여행은 진행되어야 마땅했다. 속에서 부글대는 마음을 최대한 외면하면서 맛있는 갈치 솥밥도 먹고 맹그로브 아래에 있는 헬리녹스에서 캠핑의자도 구경한다. 남자친구는 그런 내 마음도 모르고 헬리녹스에서 마음에 드는 캠핑의자를 구매하더니 기분이 좋아졌나 보다. ‘괜찮아 나는 맹그로브 가서 일을 할거니까! 그리고 말끔히 여행을 시작 하는 거야!’ 생각하며 라운지를 예약하러 갔다. 맹그로브는 숙박과 더불어 라운지라는 공간에서의 업무를 할 수 있게 구성된 곳이라 숙박 없이 이용하는 라운지는 당일 워크인으로 예약하게끔 되어 있었다. 3-4시간정도 라운지에서 일을 하고 서쪽으로 내려가면서 금능 해변에 잡아둔 숙소에 체크인을 하고 물놀이를 할 계획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라운지만 이용하기로 했다. 그런데 예약 시간이 난감하다. 아홉시부터 세시까지 오전타임과 세시부터 아홉시까지 오후타임으로 이용 시간이 나눠져 있었는데, 지금 시간은 오후 한시반이다. 오전타임은 거의 지났고 오후타임은 오늘 하루를 다 바쳐야 하는 시간이다. 맹그로브를 포기해야 했다.
교통체증, 삭막한 카페 모두를 맹그로브 하나를 위해 견뎠는데, 정작 맹그로브를 포기해야 했을 때 나의 우울은 절정에 이르렀다. 맹그로브는 단순한 하나의 여행계획에 불가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일을 하는 것으로 불안한 마음을 털어낼 계획이 무너졌다. 이런 상태에서 즐거운 여행이 가능할까 싶었지만 꿍한 마음을 남자친구한테까지 전염 시킬 수는 없었다. 어쩌면 눈치 빠른 남자친구는 이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순간순간 고비가 있었지만 어찌저찌 숙소에 도착했다. 물놀이를 하기 전에 숙소 근처를 구경해보기로 했는데 해가 넘어가는 3-4시가 되었음에도 날은 33도를 웃돌고 있었고 입고 있던 청바지에는 습기가 차기 시작했다. 신고 간 크록스마저 말썽이어서 발바닥이 시큰시큰 아팠다. 아웃도어 편집샵 홀라인도 들려서 남자친구가 새하얀 비즈 팔찌도 사주고, 귀여운 것들을 잔뜩 파는 소품샵에 들어가서도 “이거 하나 사 이쁘네!” 하는 말에도 “아냐 됐어, 팔뚝만 이따 만큼 커 보일 것 같아” 괜히 심술을 부렸다.
지금은 맥주타이밍이다. 이 더위와 짜증을 날려보내야 한다. 얼른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맥주를 들이키며 바다를 쳐다봤는데, 두 눈을 의심했다. “오빠,, 바다가 왜 이렇게 멀어? 여기 서해야?” 글쎄 바닷물이 잔뜩 빠져서 백사장이 흡사 월드컵 경기장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밀물 썰물은 서해바다에나 있는 줄 알았다. 서쪽 제주 바다에도 밀물 썰물이 존재하는 거였다. ‘저길 언제 걸어가?’ ‘짐은 또 어디다 둬?’ 숙소 가서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저 먼 바다까지 걸어갈 생각에 마음은 짜게 식어 버렸다. 이미 몇 번이나 위기가 있었던 제주의 첫 날, 마음대로 되지 않았던 일정과 서울과 다름 없는 제주의 풍경, 여기에 바다마저 나를 외면한다고 느꼈다.
_
“그냥 아무것도 하지 말고 쉬고 싶다” 나는 말했다. 남자친구는 그런 내가 신경 쓰였는지 “아니야, 그래도 왔으니까 수영복만 갈아입고 아무것도 들고 가지 말고 발이라도 담구자!” 고 했다. 마지못해 “그래 잠깐이라도 가보자” 고 대답했다. 어떻게 온 여행인데 이대로 망칠 수는 없었다. 어느덧 오후 5시가 넘은 시간, 이제 연락 올 일도 없다. 거추장스러운 장비도 핸드폰도 버려두고 바다로 향했다. 물은 따뜻했고 엉금엉금 팔로 걸을 수 있는 깊이였다. 남자친구도 나를 챙기느라 애쓸 필요가 없을 죽고 싶어도 죽을 수가 없는 깊이다. 뭘 해볼까 하다가 오랜 숙원사업이었던 맨몸 뜨기 연습을 해보기로 했다. 남자친구의 도움을 받아 한 번 두 번 세 번. “숨을 조금씩만 쉬어” “몸 전체를 띄우려 하지 말고 얼굴만 밖으로 내민다는 생각으로” “물 들어와도 놀래지 말고 침착하게” 35년만에 아무 도구도 없이 물에 뜨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뜨는 것에 성공하고 나니 내가 이제껏 뭘 잘못하고 있었는지 번뜩 알아챘다. 내 머릿속에 있는 ‘뜬다’의 개념은 ‘머리부터 다리까지 몸 전체가 수면 위로 있어야 하는 것’ 이었는데 특히 귀까지 물 위로 열린 상태를 생각하면서 얼굴과 가슴에 힘을 줘서 노골적으로 뜨려다 보니 오히려 가라앉게 된 것이었다. 게다가 가끔 눈이나 코에 바닷물이라도 들어 갈까 싶으면 놀라면서 금방 일어서기를 반복했으니 결코 뜰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귀도 몸도 그냥 내버려 두고 입만 둥둥 떠서 숨만 쉬면 된다는 생각으로, 가끔 출렁이는 파도가 눈이나 코를 덮쳐도 의연하게 있었다면 나는 진작에 뜰 수 있었을 것이다. 뜨는 개념이 마치 일과 휴식과도 닮았다고 생각했다. 노골적으로 힘을 주고 즐겁기 만한 여행이 되려고 하는 것이 과연 행복한 여행일까? 따가운 소금물이 눈을 맵게 한다고 일어서버리면 뜰 수 없는 것처럼, 일이 조금 망쳐졌다고 금방 일어서버리면 금방 포기해버리면 결과를 낼 수 있을까? 숨 쉴 구멍만 둥둥 만들어주면 뭐든지 다시 할 수 있다.
해가 넘어가기 시작하고 물이 점점 차올라 드넓던 백사장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동안에도 남자친구와 나는 계속 떠있기를 반복했다. 남자친구는 노을지는 바다에서 해질녘 수영을 해보고 싶어했는데 바다 위로 노을이 아름답게 지면서 마침내 그 기분을 느꼈다. 나 역시 주변 상황을 볼 수도 없을 만큼 고개가 뻣뻣하게 그저 떠 있을 뿐이었지만 이 감각은 생애 최초였다. 하루 종일 짜증이 나고 왜 이러고 있나 싶고 날 좀 그만 괴롭혔으면 좋겠는 억울한 마음이 내 몸에서 바다로 흘러 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내 몸을 괴롭히던 독과 같은 생각들이 바다로, 바다로 방류되며 세상에서 가장 자유롭고 가벼운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그제야 나는 동동거리지 않고 둥둥 자유로워졌다. 첫 날 이후에도 생각대로 되지 않는 상황은 넘치도록 많았다. 달라진 것은 마음가짐 뿐이었다. 이제 나는 놓친 것보다 얻은 것에 집중하게 되었다. 2시간 넘게 기다려야 하는 실탄사격 대신 선택한 레이저사격으로 남자친구와 전세를 내고 신이 나게 싸울 수 있었고, 계획이 무너져 물놀이를 갈까 고민하던 시간에 잠깐 스르륵 잠든 낮잠이 그토록 달콤했고, 빈티지샵 을 돌면서 힙한 아이템 하나 건지지 못했지만 지나가는 길에 들렀던 카페에서 너무 멋진 러닝모자를 찾았다.
경이로운 그 기분은 여행이 끝나고 한 달이 넘은 지금도 불쑥불쑥 떠오른다. 그리고 계속해서 이 여행이 유독 달랐던 이유에 대해서 생각한다. 마음처럼 안 되던 첫 날의 일정과 기분이 인생에 가장 세게 각인된다는 첫 경험이 만났기 때문에 나에게 엄청난 작용 을 만든 것일까? ‘굳이?굳이?’를 반복하면서도 생각에 그치지 않고 어떤 일을 도전 해보고, 다른 이가 봤을 때는 부질 없는 경험들도 모두 값진 이유는 깨달음이 언제 어디서 올지 모르기 때문일까? 만약 멀어진 바다를 보고 발이라도 적시자고 마음먹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아니 그전에 여행 자체를 포기했다면 어땠을까? 아끼면 똥된다는 내 휴식철학은 역시나 옳았고, 더불어 휴가를 그저 쉼으로만, 늘 행복해야만 한다는 강박과 환상으로만 바라봐서는 안된다는 것도 깨달았다. 동동거림을 둥둥거리는 자세로 만드는 것은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힘을 꽉 주어서도 안 되고 욕심을 부려서도 안 되고 너무 빨리 얻고자 해서도 안 된다. 워케이션이 달리 맹그로브에 있는 것이 아니다. 다름없는 6번째 제주여행이 온통 나를 다르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