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는 곰돌이에 불과하고

by 이단아

내 생일은 1월 12일이다. 새해의 상쾌한 기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나의 탄생을 기뻐할 수 있다는 점에서 꽤 괜찮은 생일 날이다. 하지만 어릴 때는 1월 생일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빠른 년생이라 7살에 학교에 들어갔고, 나이를 설명하는 것도 번거로웠고, 스무 살이 된 해에는 술자리에서 민폐도 겪었다.


학창시절에는 더 복잡했다. 지난 학년의 같은 반 친구들에게는 이미 방학이었고, 새롭게 만나는 친구들에게는 이미 지나간 생일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나는 학기 중에 반 친구들을 모두 모아 성대한 생일파티를 하는 봄 생일 친구들을 부러워했다. 서로 탐색하고 알아가는 시기에 자신의 생일파티를 주제삼아 친해질 기회를 얻는 그 친구들이 최고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기억에 남는 생일이 두 번 있다. 하나는 초등학교 6학년, 졸업을 앞둔 시절. 반 친구가 아닌 ‘내가 정말 좋아하는 친구들’을 한 명 한 명 따로 초대해 베니건스에서 파티를 했다. 부모님을 조르고 졸라 마련한 생일이었다. 오은영 박사가 “반 친구는 classmate, 친구는 friends”라고 말한 장면이 떠오른다. 그날이 깊이 남은 건 부모님의 거금 때문만이 아니라, 그 친구들을 초대한 내 마음이 진심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돌이켜보면 나는 친구를 만드는 데 서툰 아이였다.


반 친구들 모두에게 관심을 나누느라 진짜 친구를 만드는 데 필요한 시간을 확보하지 못했고, 너무 적극적이거나 너무 빨리 물러나는 방식으로 매력적인 친구가 되는 방법을 익히지 못했다. 서툼은 시간이 지나 30대가 된 지금도 순식간에 극복된 문제는 아니다. 좋은 친구는 여전히 어렵다.


두 번째 생일은 대학 졸업 무렵, 캐나다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나기 전이었다. 학교에 남아 있던 언니 오빠와 친구들을 불러 술집에서 생일을 겸한 작별 인사를 했다. 많은 이들이 와준 사실이 그저 기뻤다. 그날의 대부분과는 지금 연락이 끊겼지만, 그 시절의 변화를 축복해준 마음이 남아 있다.


어른이 되면 자신을 챙겨줄 이벤트가 드물다. 어린이날도 없고, 선물을 주는 산타도 없다. 그래서 생일을 챙기는 것은 쓸데 없는 일이 아니다. 생일에 유난히 적극적인 것은 좋다고 본다. 다만 생일을 파티로 증명하려는 마음은 오래갈 가치가 없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한때 나는 생일을 기쁘게 보내기보다 내가 얼마나 사랑받는지, 얼마나 축복받는지를 확인하는 데 더 몰두했다. 지금은 반대로 나에게 집중하는 날로 만든다.


세월이 흘러 나는 나의 생일을 다루는 특별한 능력이 생겼다. 일부러 나 생일이라고 생일 주간이거나 생일이 있는 달에 안 하던 앙탈을 부리기도 하고, 생일을 무기 삼아 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연락해 만나자고 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 어떤 날보다 좀더 나를 아껴주고 내 마음은 어떠 한지 살피고 누구와 함께 할 때 행복한지 떠올린다.


올해 생일은 흑백요리사2에 흠뻑 빠져 있는 시기라 남자친구와 생일전야에 ‘단정’이라고 하는 와인바에서 맛있는 저녁을 먹었고, 당일에는 남자친구의 절친과 함께 빙어낚시를 해서 도리뱅뱅을 만들어 보는 캠핑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좋아하는 친구들을 만나 드라이브를 하고, 장을 보고, 아이를 만나 즐겁게 놀아줬다. 나의 취미도, 좋아하는 사람도, 해보고 싶던 일도, 지금 나의 시절에 딱 맞는 생일을 보냈다. 이 자체가 나의 생일선물이다.


나이는 곰돌이에 불과하고 나는 아마 할머니가 될 때까지 나의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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