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쓸 수 없음을 느낄 때가 자주 있다. 글쓰기가 생각을 정리하는데 탁월한 방법이라고 한다면, 아무것도 쓸 수 없는 상태는 생각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일 것이다. 지금 나는 머릿속이 뒤죽박죽이다. 머릿속 생각이 정리가 안 되는 만큼이나 나는 일상 생활에서도 정리에 취약하다.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잘 까먹고, 갑자기 모든 것을 꺼내 한꺼번에 정리를 하려고 시도하다 정리 자체를 포기해 버리기도 한다.
정리를 잘하는 사람들은 어디에 무엇을 위치할 지 잘 정하고, 정리를 늘 습관으로 가진다. 갑자기 어느 날 기분이 내킬 때 정리하는 사람들보다 훨씬 효과적이고 체계적인 정리 습관은 하루 아침에 가진 것이 아닐 테다. 지금 내 머릿속이 뒤죽박죽인 것은 생각 정리를, 즉 글쓰기를 꾸준히 하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왜 생각 정리를 하지 않았을까? 어떤 것이 두려웠을까? 귀찮았을까? 나의 공부가 늘 겉핥기식 이었던 것과 같은 맥락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깊게 파고들기 보다 슥 지나치고 대충 알 것 같다 하고 넘겨버리는 특성. 멋있는 단어를 쓰고 싶지만 막상 그 단어의 뜻이 정확히 무엇인지 모르는. 구체적이고 집요하게 어떤 하나에 집착해보지 않는 그런 성격들이 내 삶 구석구석에 남아 있다.
눈 앞에 보이는 일을 바로 바로 해결하는 것들은 그나마 장점이다. 하지만 제쳐둔 것들, 이를 테면 서랍 속에 처박아 둔 것들, 눈에 보이지 않게 치워둔 것들은 기억하지 못한다. 아니, 기억하지 않는다. 애써 외면한다. ‘해야지, 해야지 해야 하는데’ 하고 자주 쳐다보는 서랍도 있다. 그만큼 중요한데 그만큼 꺼내 보기 싫은 문제들을 나는 그렇게 대한다.
글을 쓸 때, 쓰려고 할 때 나는 대부분 내 스스로에게 매우 중요해서 강조하고 싶은 것들을 떠올린다. 어렴풋이 단어로, 문장으로 말할 때는 정리가 된 것 같아도 보이는 곳만 닦았기에, 표면으로 올라온 먼지만 닦아 치우듯 알아차린 것들이기에 주르륵 글을 쓰려면 어려워진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침잠이라 표현했다. 완전히 침잠하여 나의 심연으로 다가가 나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일이거나 쓰고 싶은 것들이 저절로 써지는 상태. 그것에 다가가고 싶다. 어쩌면 단 한번도 그렇게 글을 쓴 사실이 없는 것 같다. 흉내만 냈을 뿐이다. 어떻게 써야 하는 지 어떤 말이 와야 하는지 대충은 안다 싶어 쓴 글들이 있을 뿐이다.
퇴고 없이 완벽을 꾀하는 것부터 문제일지도 모른다. 가령 지금 이렇게 쓰고 있는 와중에도 글이 생각 정리이고, 평상시의 정리습관과 비유해서 쓴 것이 마음에 든다. 그러다가 나의 특성들이 툭 튀어나왔고, 그것에 대해 반성하게 되다가 아까 쓰던 다른 주제, ‘느리게 오는 깨달음’과도 연관된 생각들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다다라서는 적당히, 대충, 솔직하지 않게, 아는 것처럼, 쓰고 우쭐해 하고 그만두는 나를 또 발견한다.
어쩌면 어느 누구보다 나는 잘 알고 있다. 잘 알아서 솔직하기 싫은 마음이 글쓰기에서도 어김없이 나타난다. 나의 보잘것없음을 드러낼 때 진짜 제대로 된 글쓰기가, 생각 정리가, 인생정리가 될지도 모르겠다.
여기까지 글을 썼을 때 어느정도 읽어줄 만한 글을 썼다고 생각했는데, 오늘은 전혀 아닌 것을 보니 어제 글도 형편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전혀 다르게 고쳐 써봐야겠다. 적어도 내가 해보지 않는 한은 모른다. 알면서 그런다. 알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