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토론

by 이단아

뒷담화는 노력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11년지기 소주 메이트가 있다. 누군가에게 지독한 상처를 입은 날이면, 무엇 하나 내 마음 같지 않은 하루를 보낸 날이면 그와 함께 소주를 따른다. 한 잔 두 잔 빠르게 취기를 올리고 나면 오늘 나를 힘들게 했던 그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대부분 그것의 시발점에는 어떤 이와의 부침이 있다. 내가 옳다고 믿고, 당연히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전혀 통하지 않는 대상과의 마찰에서 시작되는 불편하고 황당한 부글거림. 그 마음을 달래기 위해, 내가 옳지 않았냐고 확인받기 위해 매일 밤 소주 토론이 시작된다.


"오늘 거래처 담당자가 나한테 말도 안 되는 납기로 소량 발주를 요구하면서 이런 식으로 말하는 거야. '다른 업체는 다 해주는데요, 안 되는 건 아니고요, 방법을 찾아달라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말이 돼?" "음, 그동안은 어떻게 했는데?" "지금까지는 이번만, 이번만 그러면서 해줬지. 근데 이젠 절대 어렵다고 말을 했는데 또 저러잖아." "지금까지 가능했으니까 안 된다고만 하는 게 이해가 안 갔겠지. 왜 안 되는지 좀 더 명확하게 설명해주지 그랬어." "가능한 건지 판단하는 건 나야. 무리한 발주를 했으면 미안하다고 하면서 부탁하는 게 맞지 않아?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는 게 열 받은 거야." "그건 그랬을 수 있겠네. 근데 그 사람은 그런 의미로 말한 거까지는 아닐지도 몰라."


나의 소주 메이트는 엄격하다. 내가 아무리 평생을 약속한 반쪽이라 한들 오로지 내 편만 들어주지 않는다. 대놓고 "지금 내가 하는 얘기는 그냥 내가 맞다고 말해주길 바라서 하는 이야기야."라고 말해도, "그 마음은 이해하고,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만 또 다른 입장이 있는 거니까."라며 단호한 대답만이 돌아올 뿐이다. 그렇게 화풀이를 하고 한숨 자고 일어나면 사실은 8할이 소주 메이트 이야기가 맞다.


따지고 보면 이렇게 이야기하는 대부분이 누군가의 뒷담화다. 단순히 험담을 하기 위한 뒷담이라면 문제가 될 수도 있으나 나에게 뒷담은 노력이다. 나와는 전혀 다르지만 이해하고 싶은, 아니 이해해야만 하는 사람이 생겼을 때. 때로 부러워서 닮고 싶은데 인정하고 싶지 않을 때. 하루 종일 머릿속을 채울 만큼 나를 흔들어 놓은 문제를 붙들고 씨름하게 될 때. 그럴 때 하게 되는 것이다. 분명 오늘의 빌런 이야기를 하러 앉았는데 결국 그 끝에는 언제나 나에 대한 질문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토론의 끝에 깨닫는다.


단호한 소주 메이트 덕에 나는 수많은 누군가와 상대는 모르는 화해를 경험했다. '그래, 그건 내가 넘겨짚고서 함부로 예상했네, 내가 과했어.' '그 사람은 전혀 그럴 의도가 없었는데 나 혼자 발끈한 걸지도 몰라.' 뒷담을 통해 내가 얻는 건 상대에 대한 이해가 아니라, 정작 나 자신에 대한 이해다. 그러니 소주 토론은 당분간 계속될 것 같다. 이해하고 싶은 사람이 생기는 한, 그리고 그걸 받아줄 메이트가 곁에 있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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