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본가가 이사를 하게 되었다. 내 물건을 정리하러 오라는 말에 집에 간 나는 내 어릴 적 일기가 몽땅 버려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릴 때 쓴 일기들이 세상에 없어졌다는 것. 최근 들어 글을 쓰고 기록을 남기는 일에 진심이 된 탓인지 그 말이 예상외로 크게 와닿았다. 지금의 내가 나라고 믿는 것들에 어떤 역사가 있는지, 나는 어떤 아이였는지 궁금한 적이 많았다. 그 실마리가 사라진 셈이었다. 맘대로 내 기록을 버린 엄마가 야속했다.
그러다 문득, 일기에 대한 글 하나를 적고 마음을 정리하자 싶었다. 하나가 불쑥 떠올랐다. 제목은 <뽀뽀귀신>. 오히려 그게 웃겼다. 다 버려지고 제일 오래 살아남은 기억이 그거라니. 이 글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해가 떨어질 때까지 운동장에서 뛰어 놀고, 친구 집에서 또 놀고, 숙제를 해치우고, 아람이랑 선정이랑 무얼 먹었는지를 적은 하루의 타임라인 같은 일기들. 그 숱한 일기들 중에 <뽀뽀귀신>만큼은 제목도, 내용도 선명하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나는 일기를 아주 중요시하는 담임선생님을 만났다. <숲속을 걸어요>라는 동요의 작사가이자 시인이기도 하셨던 유종슬 스승님이다. 일기에는 매일 스승님의 코멘트와 함께 '참'이라고 적힌 동그란 도장이 찍혔다. '참 잘했어요'의 그 '참'이다. 일기 쓰기를 딱히 좋아하지 않던 나는 그해 스승님의 '참' 도장을 받기 위해 일기에 열심이었다.
'참' 도장은 하나, 둘, 셋으로 등급이 나뉘었다. 글씨를 또박또박 쓰고 압도적인 길이를 자랑하는 것으로는 '참' 하나 정도를 노릴 수 있었다. '참참참'은 쉽지 않았다. 내 기억으로 <뽀뽀귀신>은 '참참참'을 받은 최초의 일기였다.
내용은 대충 이랬다. ‘뽀뽀귀신’은 다름 아닌 나다. ‘뽀뽀귀신’이 당시 유행했던 강시 마냥 통통 튀어 다니면서 무작위로 반 친구들에게 뽀뽀를 하겠다며 쫓아 다닌다는 내용이다. 그런 나를 피하기도 하고 뽀뽀에 결국 당하며 웃고 떠드는 이야기를 하다가 ‘그래 나는 뽀뽀귀신’이다 하고 선언하며 끝나는 이야기. 지금 생각해보면 친구들이 좋다는 표현을 아주 끔찍하고 일방적이고 1차원적으로 했던 부끄러운 순간인 것 같다. 그런 나를 웃으며 넘겨준 2학년 3반 친구들의 인내심과 너그러움에 새삼 감사해진다.
그렇다면 <뽀뽀귀신>은 왜 ‘참참참’짜리 일기였을까? 역시 강력한 후킹이 되는 제목?아니면 나와 친구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적은 묘사? 웃음 가득한 에피소드와 빨간 색연필로 칠해진 입술 그림? 아마도 가장 결정적인 건 따로 있었을 것이다. 친구들을 좋아하는 마음, 튕겨내도 포기하지 않고 해맑게 다시 달려드는 속마음. 그 진짜가 글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참'을 받으려고 쓴 일기가 아니라, 솔직한 마음을 쓴 일기였기 때문에.
나는 지금 그런 글을 쓰고 있을까. 여전히 누가 봤을 때 어떨지 걱정하며, 적당히 솔직한 글을 쓰고 있지는 않을까. 잃어버린 일기장이 남긴 건 <뽀뽀귀신> 하나만이 아닌 것 같다. 글 앞에 솔직해지고, 좋아하는 사람 앞에 당당하게 마음을 외치고, 기억과 추억을 아끼며 참된 인생을 살라는 교훈을 남겼다.
‘참참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