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손실방지위원회

with 데스커라운지 홍대

by 이단아

자주 땔감이 필요하다. 내 안의 무엇에 불 지피기 위해서, 이따금 무료해질 때 다시 유료해지기 위해서, 이 찰나의 삶에 대단한 뭔가를 심어내기 위한 발악으로 땔감을 주으러 나선다. 이번 달의 땔감은 데스커라운지 홍대에서 진행하는 글손실방지위원회 참여다.


브랜드 ‘데스커’에서 운영하는 데스커라운지는 그들의 책상과 의자를 자연스레 경험할 공간을 제공함과 동시에 책상 위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영감과 이야기들을 공유하는 것으로 책상의 무한함을 전파하는 곳이다. 최근에 나는 평소에 출근하는 공장이나 일하는 공간을 벗어나 데스커라운지를 가는 날이 많아졌다.


부족한 엉덩이심을 이겨내기 위한 일종의 발악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기록이나 스스로의 일과 삶에 진심인 사람들이 다녀간 이 공간이라면 나도 뭔가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충만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 크다. 글손실방지위원회 역시 그런 이유에서 참여하게 되었다. 근손실만큼 노력한 세월이 무색하게 눈깜짝할새 사라지는 것이 글쓰기 근력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아는 내게 ‘글손실방지’라는 단어는 팩트 폭행 그 자체였다.


이 글은 글손실방지위원회가 강제한 세 번째 글이다. 글의 주제는 <몸의 상처> 란다. 사실 이 글의 앞에 글방위를 내세운 이유는 마감이 한 시간 남았는데 이제야 책상에 앉았기 때문이다. 지금 내 몸의 상처에 대해 깊이 생각할 시간이 없을 것 같다. 당장 글을 써내려 가야 한다. 그래도 주제에 맞는 글을 써내려 가보자. <몸의 상처>라는 주제를 듣고 내 몸에 있는 두 가지 상처를 떠올렸다.


어릴 때부터 아주 건강한 체질이었던 나는 어느 곳 하나 부러져본 적, 크게 아파본 적 없이 자랐다. 그래서 내 몸에는 큰 상처랄 게 없지만 워낙 천방지축으로 잘 뛰어다니고, 자주 넘어지고 그 위에 딱지가 앉고 그것을 반복 했던 터라 무릎이 성할 날이 없었다. 이 상처에 대해 써볼까 싶어 오랜만에 무릎을 쳐다 봤는데, 어라? 분명 있었던 그 자리에 상처가 없어졌다.


그렇다면 믿어볼 상처는 이것 뿐이다. 내 콧구멍 바로 밑에서 자주 코딱지를 연상케 하여 나를 불행하게 했던 수두 흉터다. 초등학교 3학년 방학 때 수두에 걸렸다. 온 몸에 수포가 어마어마하게 많이 났다. 분홍색 약을 수시로 발라줘도 잠시 뿐이었다. 간지러움을 견디지 못해 괴로워하는 내가 잠결에 벅벅 어딘가를 긁어버려 여자애 얼굴에 흉터가 남을까 걱정했던 부모님은 내 손에 장갑을 끼우고 테이프를 칭칭 감았다.


수많은 수포 중에 가장 크고 흉하게 난 자리가 하필 오른쪽 콧구멍 바로 밑이었다. 다른 곳에 난 것들은 간지러움이 극에 달하면 옷 위로 내 몸을 퍽퍽 쳐서 괴로움을 달랠 수 있었는데 이 콧구멍 바로 밑은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그 자리에 벌레 한 마리가 무한으로 기어다니는 기분, 아무리 입과 코를 찡그리며 얼굴로 춤을 춰도 해결되지 않는 극한의 가려움이었다.


결국 나는 얼굴에 유일한 수두 흉터를 갖고 말았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이 흉은 꽤 깊어서 친구들의 눈에 코딱지를 달고 다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그때마다 “이거 수두 흉터거든? 내가 설마 코딱지를 달고 다니겠어?”라고 해명해야 했다.


거울을 들어 코 밑을 유심히 살펴봤다. 예전보다 훨씬 연해진 상처는 나만 알아볼 정도의 수준이 되어 있다. 생각해보니 코 밑에 그건 뭐냐고 묻는 질문이 언제 마지막인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니, 그만큼 신경 쓰이지 않을 만큼 옅어 졌나 보다. 어쨌든 이 수두 흉터가 아니었다면 나는 오늘 이 글을 완성하지 못할 뻔 했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숱하게 넘어지고 딱지지고를 반복해서 분명 있어야 할 무릎의 상처는 사라져 있고, 내 인생에서 가장 극한의 고통을 주었던, 얼굴 정면 아주 중요한 자리에 있던 수두 흉터조차 흐려져 있다. 심지어 내게 훌륭한 글감이 되어 주었다. 어쩌면 내가 살면서 겪은 사라지지 않을 것 같던 고통과 슬픔, 실패와 좌절 역시 흐려지는 날이 오겠구나, 인생의 재료가 되는 순간도 있겠구나. 그러니 일희일비하지 말자고, 이렇게 애써 글손실을 방지하듯 인생의 큰 손실을 방지하기 위해 조금의 노력을 더해 살아가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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