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시간짜리 일탈

엄마가 될 수 있을까?

by 이단아

어느 수요일, 다섯 명의 여자가 오전 열시 반에 모인다. 아이 하원 시간 전까지, 그들에게 허락된 시간은 단 네 시간이다. 청량리, 청라, 고척, 덕은, 여의도. 사는 곳도 살아가는 모양도 제각각인 여자들이 후다닥 커피를 마시고 냉삼에 소주 한 잔을 곁들여 수다를 벌인 뒤 신기루처럼 각자의 방향으로 흩어진다. 이 만남은 엄마가 된 내 친구들의 작고 중요한 일탈에서 비롯되었다.


이 모임에 처음 발을 들이게 된 것은 고척에 사는 키 큰 여자 때문이다. 대학을 막 졸업할 무렵, 캐나다로 워킹홀리데이를 다녀온 나는 친했던 친구와도 멀어지고, 오래 사귀던 남자에게는 문자로 이별을 통보 받아 멘탈이 탈탈 흔들리던 시기를 지나고 있었다. 나와 대학 동기인 고척 여자는 특유의 다정함으로 그런 나를 특별히 챙겼다. 동네 친구, 학교 친구, 사회 친구 구분 없이 친구가 많던 그는 자신의 동네 친구들 사이에 나를 자연스럽게 끼워 넣었다.


고척 여자의 동네 친구들과 유일하게 운전이 가능했던 나는 때때로 여행을 떠났다. 모임의 이름은 657. 서로의 키를 모두 더해 나온 숫자였다. 물론 고척의 여자가 그 숫자를 막강하게 더해줬다. 우리는 경상남도 남해로, 강원도 인제로, 경상북도 대구로 떠나 그곳의 명물이라 불리울 만한 맛있는 안주와 함께 소주를 마셨다. 여자 넷이 소주 여덟 병 정도는 거뜬했으니 어디서도 꿀리지 않을 주량이었다. 그렇게 자유롭게, 언제든 떠날 수 있던 스물다섯의 우리는 이제 네 시간도 아쉬워 헐레벌떡 하는 서른다섯이 되었다. 그 사이 이 모임은 멤버도 바뀌었고 각자의 상황도 모두 달라졌다.


빠르게 커피를 마시고 냉삼집에 앉아 주문을 한다. “냉삼 3인분이랑 후레쉬 하나요” 술이 센 청량리 여자의 술 친구를 자원한 덕은 여자와 여의도 여자가 소주잔을 부딪친다. “언제와? 나는 뭐 먹지?” 고척 여자의 수화기 너머로 아내 바라기 남편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얼른 이거 가져가라~ 무겁다.” 청라 여자와 청량리 여자는 각자의 손에 바리바리 들고 온 품앗이 물건을 서로 꺼내 주기 바쁘다. “그래서 넌 언제 남자 만나서 언제 결혼 할래?” 이 모임에 유일한 솔로인 여의도 여자에게 엄마보다 무서운 잔소리들이 쏟아진다. “난 얼굴도 안 보는데, 진짜 만나도 재미가 너무 없는 걸 어떡해? 진짜 그건 못 참겠어.” 그 말에 일동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재미없는 건 못 참지”


이들의 네 시간 일탈에 초대된 나. 덕은 여자가 이 모임에 발을 들인 건 이날이 세 번째 였다. 오랜 연애 끝에 이제 결혼을 앞두고 있지만 아이의 엄마가 되는 것에는 아직 아무런 준비가 없었기에 이 만남은 마치 미리 보는 엄마의 세계처럼 느껴졌다. 이들의 결혼, 임신과 출산, 육아 그리고 이 숨막히게 짧은 일탈을 보며 내가 지금 보고 있는 이것이 정녕 엄마의 현장인 것인지 두려움이 엄습하면서 ‘나도 이들처럼 이런 삶을 감당할 수 있을까?’ 계속 시뮬레이션을 돌려보게 되었다.


돈도 벌면서 아이까지 케어 할 수 있을까? 아침잠이 많은 내가 꼭두새벽부터 아침밥을 만들고 등원을 시키는 일이 가능할까? 우리 강아지 고양이 키우는 일도 버거운데, 지금도 집안일이 태산인데 얼마나 더 늘어 날래나? 사야 할 것도, 준비해야 할 것도 엄청나던데,, 나는 내 친구들만큼 해낼 수 없을 것 같아. 아이에게 무한히 줄 수 있는 엄마가 되지 못하면 어쩌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은 점점 겁만 늘게 만들 뿐이다.


집까지 가장 거리가 먼 청라 여자가 떠난다. 남은 이들끼리 아쉬운 마음에 맥주 한잔을 더 하고 헤어진 시간은 불과 오후 세시다. 날이 하얗게 밝은 날 알딸딸한 채로 집에 가는 길 위에서 나의 근심걱정은 모두 사라졌다. 이 모든 것이 술 기운일지도 아니면 친구들의 해냄을 보고 있는 덕분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왠지 가능할 것만 같다. 나도 누군가의 아내가 되고, 아이의 엄마가 되어 삶의 무게를 견뎌내는 어른이 되더라도 이렇게 잠시 다시 ‘나’로 돌아올 수 있는 시간이 있다면, 재미를 중요하게 여기는 여자들이 서로의 안부를 묻고 웃을 수 있는 네 시간이 있다면, 그렇다면, 나도 내 친구들처럼 아내가, 엄마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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