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헤일메리
주낭아, 안녕. 넌 지금 내 옆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니? 나는 오늘 오랜만에 영화를 한 편 보고 왔어. 영화관에서 영화를 본 게 되게 오랜만이었는데 꽤 좋은 시간이었어. 날이 좋아서 널 데리고 산책을 하는 것도 괜찮았겠다 싶기도 했지만 말야. 이해해줄 수 있지?
오늘 본 영화는 <프로젝트 헤일메리>라는 SF영화였는데 주인공 그레이스가 위기에 처한 지구를 떠나 미션을 위해 떠난 우주에서 로키를 만나 함께 공통의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고군분투 하는 이야기였어. 아주 재밌었어. 뭐 여러가지 생각할 거리가 많은 영화기도 했지만 그런 얘긴 다음에 해줄게. 그냥 돌과 간장게장을 닮은 외계 생명체 로키가 정말 귀여워서 자꾸만 네가 생각 났어.
둘은 서로 다른 행성에서 태어나서 언어가 전혀 통하지 않았거든. 그래서 서로의 말과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 꽤 많은 시간을 써야 했어. 그래도 결국은 방법을 찾아내. 너와 나도 그럴 수 있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 근데 어쩌면 너는 최선을 다해서 나에게 말을 걸어온 것일지도 모르겠다. 최근에 알게 된 그 행동도 그렇지.
네가 한동안 오전 6시40분만 되면 자고 있는 내 머리를 땅 파듯이 박박박 긁었잖아? 배가 고파서 밥을 달라는 건 줄 알았는데 밥도 아니었고, 자다가 널 건드려서 깨웠거나 아니면 놀아달라는 건가 싶어서 짜증을 내면서 이불 속으로 숨기도 했는데 기어이 날 찾아내서 깰 때까지 박박박박 그랬던 거. 그게 알고 보니 내 알람 소리에 맞춰서 날 깨우는 거였더라? 맞지? 알람소리가 안 울리는 토요일에 그 시간에도 그러는 널 보고 이제야 알아들었어. 바보 같이 오래걸렸어. 널 위해서가 아니라 날 위해서 그랬던 건데.
지금도 키보드 위에 있는 내 손에 머리를 들이밀어 만져달라 애원하는 너. 내 방에서 나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겠다고 노트만 바라보고 있을 때도, 소파 위에서 TV프로그램을 보고 있을 때도,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할 때도 나만 졸졸졸 따라다니는 너에게 나는 참 이랬다 저랬다. 좋다고 괴롭히다가, 안중에도 없이 내 할 일을 하다가. 이렇게 제멋대로인 나에게 너는 어떻게 이렇게나 다정할 수가 있느냐고 묻고 싶다.
로키를 보고 주낭이 너가 생각난 건 그냥 귀여워서는 아닐지도 모르겠어. 어쩌면 그레이스에게 로키가, 로키에게 그레이스가 지구 밖 그 머나먼 곳에서 생김새도, 언어도, 살아가는 터전과 존재의 이유도 다른데 진정한 친구가 되었던 것처럼 너는 나에게 그런 로키이기 때문인 것 같아.
솔직히 바보 같은 나는 너 말고도 사는 내내 다른 로키를 찾아 헤맬 것 같아. 살면서 의지할 수 있는 친구는 잠깐일지라도 여럿일수록 좋다는 믿음이 있거든. 하지만 말야. 네가 나한테 준 만큼의 다정과 포옹, 조건 없는 사랑은 어느 누구도 줄 수 없을 거란 걸 알아.
염치없지만 주낭아. 지난 10년 동안 내 삶에 눈물이 있던 순간들에 늘 웃음과 의지를 안겨줬던 것만큼 앞으로도 오래오래 힘 닿는데까지 부탁해. 그리고 다음에 우리가 다시 만나면 인류가 <프로젝트 헤일밀리>만큼 발전해서 돌이랑도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세상이 되면 광활한 우주에서 다시 태어날 널 찾아 갈게. 그리고 그때는 내가 너의 로키가 되어 줄게.
주낭이 좋음 좋음 최고. 평서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