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션에 놀러 온 마음으로
새로운 집은 나름 쾌적하다. 이유 첫 번째는 빌트인 가구 외에는 딱히 살림살이가 없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중앙에서 컨트롤된다는 온/습도 제어 덕분이다. 며칠 전 구입한 시계의 온/습도에 따르면, 온도 22도, 습도 60%로 유지되고 있다. (첫 주의 외부온도는 40도를 넘었다. 체감온도는 더더더더 높았다. 온도가 높은 것도 힘들지만, 사실 습도가 더 힘들게 하는 것 같다. 습도가 높으니 불쾌지수도 높고 땀도 줄줄 흐른다.)
아직 아이들 개학 전이고, 너무 더워서 짝꿍 없이는 나갈 엄두를 못 내서 그런지, 조금 다른 한국 생활을 하는 느낌이다. 하루하루 삶은 펜션에 놀러 온 느낌이다. 대충의 살 것들이 갖추어져 있지만, 작은 도구들은 없다. (뭐 예를 들면, 소소한 주방 용품들 병따개, 가위, 칼 등등) 다시 생각해 보니, 펜션이 더 많은 것을 갖추고 있는 상황일 듯.
그나마 힘들게 이고 지고 온 것들이 정말 중하게 사용되고 있다. 이불같이 작정하고 가지고 온 품목들은 물론, 깜빡하고 이삿짐에 못 보낸, 주방 발 매트, 주방 고리 수건 1개, 손 세정제 등이 맹활약 중이다. 아이의 가방에서 뜬금없이 튀어나와 짐 부치러 다시 항공사 카운터에 다녀오는 수고로움을 줬던 문구용 가위는 썩 잘 들지는 않았지만, 꽤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다. 이렇게 되돌아보니, 실수나 실패로 평가되는 것들에 너무 매몰되어서 스스로에게 가혹한 대우를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 실수와 실패가 반전되는 행운을 줄 수도 있고, 다음번에 더 크게 발생될 것들을 줄여주는 완충작용을 할 수도 있다.
2주 차가 되니, 가끔씩 사모은 소소한 집기들 (칼, 도마, 스테인리스 볼, 냄비, 프라이팬)이 삶을 조금씩 더 풍요롭게 해주고 있다. 거기서 오는 만족감은 상상 초월이다. 그리고 어제 막 배송 온 이케아 물품들 덕에, 삶이 더 업그레이드될 예정이다. 난 이케아에서 온 어린아이용 식기-접시, 볼, 컵을 본 순간, 쿨하게 햇반 용기를 쓰레기 봉지로 툭하고 던졌다. 그리고 삶은 달걀, 각종과일, 고구마를 플레이팅 하여 식탁에 올려놓았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더니, 느림과 없음의 불편함에 적절히 스며들고 있다.
그러다 문득 든 생각,
"하아... 컨테이너 도착하면 그 짐들을 다 어디다가 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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