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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편안하세요.

떠나보내는 마음을 담아봅니다.


한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하지만, 오늘은 몇 줄이라도 남기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요즘 새벽에는 AI 실전 북클럽에서 책도 읽고 실습도 하느라, 아침부터 ChatGPT를 열심히 테스트하고 있다. 슬개골 골절이 아직 회복되지 않아 (곧 3개월이 되어가지만 여전히 통증이 있다) 운동은 워밍업만 참여하는 중이다. 그 외 시간에도 ChatGPT와 씨름하듯 시간을 보내고 있다. 공부를 하며 이어폰을 끼고 있었지만, 새벽의 고요함을 깨고 방문 너머로 들려오는 아빠의 통화 소리. 누군가의 부고 소식인 것 같았다. 통화를 마치신 후 한참 동안 아빠는 방 밖으로 나오지 않으셨다.


아빠의 연세를 생각하면 부고 소식이 놀랍지는 않다. 이미 코로나를 기점으로 아빠의 친구분들이 많이 떠나셨고, 그래서인지 아빠의 정기 모임도 많이 줄어든 듯했다. 궁금했지만, 아빠가 나오시길 기다렸다.

잠시 후 아빠가 전해주신 소식은 막내 고모부의 부고였다. 그저께 내가 한국에 왔다는 소식을 듣고 통화하셨던 막내 고모와의 대화가 아직도 생생한데, 믿기지 않았다. 막내 고모부께서는 요양원에 계시긴 했지만 위독하신 것은 아니었기에, 더욱 먹먹한 소식이었다.


우리 집은 친가, 외가 할 것 없이 친척들이 많다. 그중에서도 막내 고모부는 내게 특별한 분이셨다. 키도 크시고 체구도 크셔서 어린 내게는 더욱 큰 어른으로 보였지만, 늘 너그럽게 환한 미소를 보여주시던 분이었다. 2년 전 아빠 팔순 때 시골 어른들을 뵈러 갔을 때는 요양원에 계시던 고모부를 뵙지 못했으니, 마지막으로 뵌 지 십여 년이 된 것 같다. 얼마 전 고모와의 통화에서 이제 9살이 된 삼둥이를 아직 못 보신 아쉬움을 말씀하셨는데, 한 번이라도 고모부께서 아이들을 만나보셨다면 얼마나 좋아하셨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일 저녁 책과강연 SPEC 강연이 있어서 장례식장이 있는 목포까지 가는 일정을 잡기가 쉽지 않았다. 부모님과 삼둥이들, 그리고 강추위까지 고려해야 했다. 겨울방학이라 그런지 SRT와 KTX 표도 구하기 어려웠다. 겨우 새벽 차를 타고 오후에 서울로 돌아오는 티켓을 구할 수 있었다.


한파가 기승을 부리는 추운 겨울이라 장례를 치르시는 고모와 가족들이 너무 고생이 많으실 텐데, 내가 마침 한국에 나와 있을 때 받은 소식이라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모부께서 내가 한국에 있을 때 마지막 가시는 길에 인사도 드리고, 고모께도 삼둥이들을 보여드릴 기회를 주신 것은 아닐까...


고모부, 이제 편히 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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