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해방일지, 미치지 못해 미칠 것 같은 젊음
글이 너무 길어져서 가독성이 떨어지는 바람에 결국 어제 쓴 글을 분리하였다. 1부는 드라마에 관련된 이야기를 남겼고 나와 관련된 이야기는 2부로 옮겼다. 속이 시원하다.
가장 감명 깊었던 회차는 11화이다. 사실 10화도, 12화도, 다가올 회차들도 감명 깊겠지만, 내가 좋아하는 시가 생각나며 염미정의 독백이 나에게 깊게 박혔다. (어... 그리고 키스신도요..!)
내가 싫어하는 새끼, 나 싫어하는 거 당연하지. 내가 훨씬 더 싫어할걸? 나는 그 새끼 경멸해. 조직에 있을 때나 있어 보이지, 나가면 아무것도 아닌 인간
신입 시절 나 괴롭히던 회사 사람들 향해 자주 하던 말이다. 내가 먼저 잘못한 것 없고 그냥 날 싫어하기로 작정한 사람에게 나는 유독 당당했다. "계속 나 싫어하라고 그래. 어차피 내가 더 싫어하니까" 진짜 진짜로, 이유 없이 인간 괴롭히고 이유 만들어서 인간 괴롭히는 사람들 내가 더 싫어해서 그래… '사회생활'. 집단마다 해석의 여지가 풍부한 그 단어. 썩은 집단에서는 사회생활 잘하는 사람도 썩은 것 같다. 그런 인간들과 비슷한 부류의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또한 스스로를 파멸시키지 않는 선에서 그 고통을 해소하려고 얼마나 죽을힘을 다해 노력했나 모른다. 아, 지나간 일은 잊어주고 용서할 줄 아는 큰 사람이 되고 싶지만 회상하며 또 빡이 도는 걸 보니 갈 길이 멀구나...
고작 이런 걸 기도한다고?
신한테?
신인데?
난 궁금한 건 하나밖에 없었어.
나, 뭐예요?
나 여기 왜 있어요?
실존은 반드시 본질에 앞선다(l'existence précède l'essence) 인간은 의자와 달리 목적(본질)을 가지고 만들어지지 않고 일단 태어나 세상에 내던져진 뒤(실존) 목적(본질)을 찾아 헤매게 된다. 실존주의에 따르면 인간은 '나는 무엇인가? 나는 왜 사는가?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해답을 찾아가 존재의 의미를 찾아나간다고 한다. 어쩌면 나, 뭐예요? 그 질문에 대답을 찾는 것 즉 본질을 찾는 것이 인간의 본질 아닐까. 말이 뫼비우스의 띠 같네. 실존과 본질에 대하여 뒤에서 더 다루겠다.
91년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고, 50년 후면 존재하지 않을 건데 이전에도 존재했고 이후에도 존재할 것 같은 느낌. 내가 영원할 것 같은 느낌. 그런 느낌에 시달리면서도 마음이 어디 한 군데도, 한 번도 안착한 적이 없어. 이불속에서도 불안하고, 사람들 속에서도 불안하고.
'내가 영원할 것 같은 느낌' 은 나에게 '내가 사라지는 것이 상상되지 않는 것'과 같다. 나는 왜 사는지도 모르면서 존재의 사라짐은 두렵다. 다들 두려워하며 살까? 나만 이래? 난 그래서 건강 염려증도 있는데
어떻게 보면 건강하게 잘 산다고 하는 사람들은 이런 모든 질문을 잠재워두기로 합의한 사람들 일수도. '인생은 이런 거야.'라고 어떤 거짓말에 합의한 사람들. 난 합의 안 해. 죽어서 가는 천국 따위 필요 없어. 살아서 천국을 볼 거야.
사회에서 자리 잡아가는 나이대를 살아가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나와 내 주변의 '실존'에 대한 질문에 직업, 직장을 빼놓고는 답변할 수 없다. 사람 사는데 일 말고도 중요한 것들이 많지만 지금부터는 본질이 마치 '일'인 것 마냥 주제를 좁혀놓고 글을 이어나가 보겠다. 나처럼 잡생각 안 하고 건강하게 그 '합의'한 목표를 바라보며 사는 것도 성향이고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인생은 원래 이런 거야. 회사 생활은 원래 이런 거야. 돈 버는 게 다 이런 거야. 일과 삶을 분리하면 돼. 삶의 의미는 회사 밖에서 찾는 거야.'
그런데, 난 합의 못해. 난 일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을 거야. 일주일 중 5일은 일을 하며 살아야 하는데 그 시간을 버티고, 견디기만 하며 살아간다면 인생이 너무 아깝다. 나는 하고 싶은 일을 하다가 죽을 거야. 언젠가 비로소 일을 돈벌이 수단으로 받아들일지언정, 이 회사에서, 이 업무를 하다 피 말라죽지는 않을 거야.
돌이켜보면 회사에서의 내 모습은 일정 부분 염창희와 닮아있는 것 같기도 하다. 내가 업무를 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일 잘한다' 인정받는데, 그런 인정보다는 아쉬운 부분이 내 눈에 더 들어와. 내 손에서 미끄러져 빠져나간 부분이 너무 아까워, 그래서 정작 손에 담고 있는 일에는 전혀 보람을 찾지 못하는 거지. 하지만 그걸 놓지 않으면 새로운 일을 잡을 수 없잖아. 평생 보람이 느껴지지 않는 일을 하며 아쉬워하며 살 수는 없으니 가진 것을 내려놓아가면서라도 새로운 도전을 할 수밖에. 그래서 퇴사 하는거지 뭐. 난 당장의 월급보다 나 자신이 더 중요하고, 꿈같은 이야기일지 몰라도 어차피 평생 돈을 벌어야만 한다면 '자아실현'이 가능한 일이 필요했다. 길이 보이면 사자의 입 속으로 머리를 처넣는 인생. 천 번의 헛된 시도를 하게 되더라도 천한 번의 용기를 버리지 못하고 도전하는 바람에 안착하지 못한 인생. 내 인생 끝엔 후회가 있을까 승리가 있을까. 최선을 다해보면 알겠지. 한 가지 확실한 건 난 회사로 (혹시 번복할 수 있으니 같은 업계의 회사라고 한정지어 볼까)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이미 그곳에서 최선을 다 해서 쌀 한 톨 만큼의 후회가 남아있지 않다.
구본형 <미치지 못해 미칠 것 같은 젊음>에서 발췌한 표현
내가 만일 다시 젊음으로 되돌아간다면,
겨우 시키는 일을 하며 늙지는 않을 것이니
아침에 일어나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이 되어
천둥처럼 내 자신에게 놀라워 하리라
신(神)은 깊은 곳에 나를 숨겨 두었으니
헤매며 나를 찾을 수밖에
그러나 신도 들킬 때가 있어
신이 감추어 둔 나를 찾는 날 나는 승리하리라
이 세상에서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이것이 가장 훌륭한 질문이니
하늘에 묻고 세상에 묻고 가슴에 물어 길을 찾으면
억지로 일하지 않을 자유를 평생 얻게 되나니
길이 보이거든 사자의 입속으로 머리를 처넣듯
용감하게 그 길로 돌진하여 의심을 깨뜨리고
길이 안 보이거든 조용히 주어진 일을 할 뿐
신이 나를 어디로 데려다 놓든 그곳이 바로 내가 있어야 할 곳
위대함은 무엇을 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며
무엇을 하든 그것에 사랑을 쏟는 것이니
내 길을 찾기 전에 한참을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
천 번의 헛된 시도를 하게 되더라도 천한 번의 용기로 맞서리니
그리하여 내 가슴의 땅 가장 단단한 곳에 기둥을 박아
평생 쓰러지지 않는 집을 짓고
지금 살아있음에 눈물로 매 순간 감사하나니 이 떨림들이 고여 삶이 되는 것
아, 그때 나는 꿈을 이루게 되리니
인생은 시(詩)와 같은 것
낮에도 꿈을 꾸는 자는 시처럼 살게 되리니
인생은 꿈으로 지어진 한 편의 시
구본형, <미치지 못해 미칠 것 같은 젊음>
요즘 내가 숨이 턱 막힐 때 읽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시이다. 뭐랄까, 나는 지금 새로운 직업을 갖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알고 있다. 성공이라는 게 참 노력의 순수한 결과물? (예컨대...시험이라면...점수! 같은 투명한 노력의 산물) 만으로 되는 게 아니더라. 그래서, ‘내가 노력해도, 일이 잘 풀리지 않을 수 있다.’라는 압박감에 숨이 턱 막힐 때 이 시를 읽으면, '일이 잘 풀리지 않아도, 천한 번의 용기로 맞서면 돼.' '신이 나를 어디에 데려다 놓든, 그곳이 내가 있어야 할 곳. 인생이 어떻게 흘러가든, 내 인생은 내가 괜찮게 만들 수 있어' 그런 식으로 생각하게 되며 진정이 되는 것 같다. 11화를 보며 번뜩 이 시가 생각이 나 다시 찾아봤다가, 깊게 위로받는 요즘이다.
마무리를 어떻게 지어야 하나..?
I love My liberation notes...
I love gucci...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