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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썸데이 May 20. 2022

드라마를 봤는데 독후감을 쓸 수 있을 것 같다.

나의 해방일지, 미치지 못해 미칠 것 같은 젊음

글이 너무 길어져서 가독성이 떨어지는 바람에 결국 어제 쓴 글을 분리하였다. 1부는 드라마에 관련된 이야기를 남겼고 나와 관련된 이야기는 2부로 옮겼다. 속이 시원하다.



출처 : 공식 사이트

가장 감명 깊었던 회차는 11화이다. 사실 10화도, 12화도, 다가올 회차들도 감명 깊겠지만, 내가 좋아하는 시가 생각나며 염미정의 독백이 나에게 깊게 박혔다. (어... 그리고 키스신도요..!)


내가 싫어하는 새끼, 나 싫어하는 거 당연하지. 내가 훨씬 더 싫어할걸? 나는 그 새끼 경멸해. 조직에 있을 때나 있어 보이지, 나가면 아무것도 아닌 인간


신입 시절 나 괴롭히던 회사 사람들 향해 자주 하던 말이다. 내가 먼저 잘못한 것 없고 그냥 날 싫어하기로 작정한 사람에게 나는 유독 당당했다. "계속 나 싫어하라고 그래. 어차피 내가 더 싫어하니까" 진짜 진짜로, 이유 없이 인간 괴롭히고 이유 만들어서 인간 괴롭히는 사람들 내가 더 싫어해서 그래… '사회생활'. 집단마다 해석의 여지가 풍부한 그 단어. 썩은 집단에서는 사회생활 잘하는 사람도 썩은 것 같다. 그런 인간들과 비슷한 부류의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또한 스스로를 파멸시키지 않는 선에서 그 고통을 해소하려고 얼마나 죽을힘을 다해 노력했나 모른다. 아, 지나간 일은 잊어주고 용서할 줄 아는 큰 사람이 되고 싶지만 회상하며 또 빡이 도는 걸 보니 갈 길이 멀구나...



고작 이런 걸 기도한다고?
신한테?
신인데?
난 궁금한 건 하나밖에 없었어.
나, 뭐예요?
나 여기 왜 있어요?


실존은 반드시 본질에 앞선다(l'existence précède l'essence) 인간은 의자와 달리 목적(본질)을 가지고 만들어지지 않고 일단 태어나 세상에 내던져진 뒤(실존) 목적(본질)을 찾아 헤매게 된다. 실존주의에 따르면 인간은 '나는 무엇인가? 나는 왜 사는가?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해답을 찾아가 존재의 의미를 찾아나간다고 한다. 어쩌면 나, 뭐예요? 그 질문에 대답을 찾는 것 즉 본질을 찾는 것이 인간의 본질 아닐까. 말이 뫼비우스의 띠 같네. 실존과 본질에 대하여 뒤에서 더 다루겠다.



91년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고, 50년 후면 존재하지 않을 건데 이전에도 존재했고 이후에도 존재할 것 같은 느낌. 내가 영원할 것 같은 느낌. 그런 느낌에 시달리면서도 마음이 어디 한 군데도, 한 번도 안착한 적이 없어. 이불속에서도 불안하고, 사람들 속에서도 불안하고.


'내가 영원할 것 같은 느낌' 은 나에게 '내가 사라지는 것이 상상되지 않는 것'과 같다. 나는 왜 사는지도 모르면서 존재의 사라짐은 두렵다. 다들 두려워하며 살까? 나만 이래? 난 그래서 건강 염려증도 있는데




어떻게 보면 건강하게 잘 산다고 하는 사람들은 이런 모든 질문을 잠재워두기로 합의한 사람들 일수도. '인생은 이런 거야.'라고 어떤 거짓말에 합의한 사람들. 난 합의 안 해. 죽어서 가는 천국 따위 필요 없어. 살아서 천국을 볼 거야.


  사회에서 자리 잡아가는 나이대를 살아가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나와 내 주변의 '실존'에 대한 질문에 직업, 직장을 빼놓고는 답변할 수 없다. 사람 사는데 일 말고도 중요한 것들이 많지만 지금부터는 본질이 마치 '일'인 것 마냥 주제를 좁혀놓고 글을 이어나가 보겠다. 나처럼 잡생각 안 하고 건강하게 그 '합의'한 목표를 바라보며 사는 것도 성향이고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인생은 원래 이런 거야. 회사 생활은 원래 이런 거야. 돈 버는 게 다 이런 거야. 일과 삶을 분리하면 돼. 삶의 의미는 회사 밖에서 찾는 거야.'

  그런데, 난 합의 못해. 난 일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을 거야. 일주일 중 5일은 일을 하며 살아야 하는데 그 시간을 버티고, 견디기만 하며 살아간다면 인생이 너무 아깝다. 나는 하고 싶은 일을 하다가 죽을 거야. 언젠가 비로소 일을 돈벌이 수단으로 받아들일지언정, 이 회사에서, 이 업무를 하다 피 말라죽지는 않을 거야.

  돌이켜보면 회사에서의 내 모습은 일정 부분 염창희와 닮아있는 것 같기도 하다. 내가 업무를 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일 잘한다' 인정받는데, 그런 인정보다는 아쉬운 부분이 내 눈에 더 들어와. 내 손에서 미끄러져 빠져나간 부분이 너무 아까워, 그래서 정작 손에 담고 있는 일에는 전혀 보람을 찾지 못하는 거지. 하지만 그걸 놓지 않으면 새로운 일을 잡을 수 없잖아. 평생 보람이 느껴지지 않는 일을 하며 아쉬워하며 살 수는 없으니 가진 것을 내려놓아가면서라도 새로운 도전을 할 수밖에. 그래서 퇴사 하는거지 뭐. 난 당장의 월급보다 나 자신이 더 중요하고, 꿈같은 이야기일지 몰라도 어차피 평생 돈을 벌어야만 한다면 '자아실현'이 가능한 일이 필요했다. 길이 보이면 사자의 입 속으로 머리를 처넣는 인생. 천 번의 헛된 시도를 하게 되더라도 천한 번의 용기를 버리지 못하고 도전하는 바람에 안착하지 못한 인생. 내 인생 끝엔 후회가 있을까 승리가 있을까. 최선을 다해보면 알겠지. 한 가지 확실한 건 난 회사로 (혹시 번복할 수 있으니 같은 업계의 회사라고 한정지어 볼까)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이미 그곳에서 최선을 다 해서 쌀 한 톨 만큼의 후회가 남아있지 않다.


구본형 <미치지 못해 미칠 것 같은 젊음>에서 발췌한 표현


내가 만일 다시 젊음으로 되돌아간다면,
겨우 시키는 일을 하며 늙지는 않을 것이니
아침에 일어나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이 되어
천둥처럼 내 자신에게 놀라워 하리라

신(神)은 깊은 곳에 나를 숨겨 두었으니
헤매며 나를 찾을 수밖에
그러나 신도 들킬 때가 있어
신이 감추어 둔 나를 찾는 날 나는 승리하리라

이 세상에서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이것이 가장 훌륭한 질문이니
하늘에 묻고 세상에 묻고 가슴에 물어 길을 찾으면
억지로 일하지 않을 자유를 평생 얻게 되나니

길이 보이거든 사자의 입속으로 머리를 처넣듯
용감하게 그 길로 돌진하여 의심을 깨뜨리고
길이 안 보이거든 조용히 주어진 일을 할 뿐
신이 나를 어디로 데려다 놓든 그곳이 바로 내가 있어야 할 곳

위대함은 무엇을 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며
무엇을 하든 그것에 사랑을 쏟는 것이니
내 길을 찾기 전에 한참을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
천 번의 헛된 시도를 하게 되더라도 천한 번의 용기로 맞서리니

그리하여 내 가슴의 땅 가장 단단한 곳에 기둥을 박아
평생 쓰러지지 않는 집을 짓고
지금 살아있음에 눈물로 매 순간 감사하나니 이 떨림들이 고여 삶이 되는 것

아, 그때 나는 꿈을 이루게 되리니
인생은 시(詩)와 같은 것
낮에도 꿈을 꾸는 자는 시처럼 살게 되리니
인생은 꿈으로 지어진 한 편의 시

구본형, <미치지 못해 미칠 것 같은 젊음>

요즘 내가 숨이 턱 막힐 때 읽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시이다. 뭐랄까, 나는 지금 새로운 직업을 갖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알고 있다. 성공이라는 게 참 노력의 순수한 결과물? (예컨대...시험이라면...점수! 같은 투명한 노력의 산물) 만으로 되는 게 아니더라. 그래서, ‘내가 노력해도, 일이 잘 풀리지 않을 수 있다.’라는 압박감에 숨이 턱 막힐 때 이 시를 읽으면, '일이 잘 풀리지 않아도, 천한 번의 용기로 맞서면 돼.' '신이 나를 어디에 데려다 놓든, 그곳이 내가 있어야 할 곳. 인생이 어떻게 흘러가든, 내 인생은 내가 괜찮게 만들 수 있어' 그런 식으로 생각하게 되며 진정이 되는 것 같다. 11화를 보며 번뜩 이 시가 생각이 나 다시 찾아봤다가, 깊게 위로받는 요즘이다.




마무리를 어떻게 지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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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love gucci...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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