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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wesome Day to Eat Oct 29. 2018

양갈비 요목조목 뜯어보기

갈비라는 이름은 직관적으로 침샘을 자극한다. 필레미뇽이나 뉴욕 스트립 같은 이름이 기대감을 주면서 동시에 이런저런 부담을 건네는 것과 달리 갈비는 오로지 맛에 대한 탐닉이 머리를 채우게 하는 이름이다. 비약이겠지만 뼈를 뜯어가며 먹는 과정이 문명에 통제받지 않던 시절의 탐식에 대한 기억을 불러일으키지 않겠냐는 생각을 해본다.

 

갈비라는 말이 가진 마력의 근원은 몰라도 그것이 나에게만 통하는 것은 아닌지 닭갈비나 고갈비처럼 갈비의 이름을 차용한 음식 이름도 쉽게 볼 수 있다. 이들은 논란의 모 맛 칼럼니스트가 티브이 프로그램에서 말했다시피 고기의 부위에서 유래된 호칭이라 보기는 힘들다. 


그렇다면 양갈비는 어떨까? 노릿한 기억 때문에 양을 입에도 안 대는 이도 많겠지만 양갈비를 먹어본 사람이라면 보통은 갈비뼈 한쪽에 골프 드라이버처럼 붙어있는 고기를 떠올릴 것이다. 그런 당신이라면 양갈비는 사실 양의 갈비를 먹는 요리가 아니라는 말은 납득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방금 양갈비를 묘사할 때 갈비뼈에 붙어있는 고기라 해놓고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양갈비는 양의 갈비에 붙은 살이 맞으면서도 소갈비, 돼지갈비의 그것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그리고 양갈비로 불리는 부위들도 사실 하나로 뭉뚱그리기에는 그들끼리의 차이가 작지 않다. 그래서 이번 글에는 양갈비라는 이름을 풀어내 보려 한다.



나라마다 고기를 먹는 식문화에는 차이가 있으므로 이에 따라 고기를 정형해내는 방식도 다르기 마련이다. 한국의 경우 양은 대부분 호주나 뉴질랜드를 통해 수입하는데, 호주에서 양을 정형하는 방식은 우리가 소나 돼지를 정형하는 방식과 다르다. 소를 특수부위까지 나눠 세세히 즐기는 우리와 다르게 자원이 풍부한 신대륙의 기상 탓인지 그들은 더 큼직큼직하게 고기를 분류한다.


양의 갈비, 아래 쪽의 살이 큼직한 부분이 등심이다. 사진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Rack_of_lamb#/media/File:Ra

그래서 우리가 주로 먹게 되는 양고기의 정형 방식에서는 위의 그림처럼 등심과 갈비가 같은 고깃덩어리에 들어가게 된다. 이 덩어리를 갈비뼈 사이마다 썰어낸 후 프렌치(French)라는 과정을 거치면 우리가 아는 양갈비의 모습이 된다. 앞의 고깃덩어리에서 피부나 지방 등을 제거한 후에 추가로 살도 별로 없고 질긴 갈비에 붙은 살을 제거하는 과정이 바로 프렌칭이다. 우리가 흔히 양고기 집에서 보게 되는 프렌치 랙(Frenched Rack)은 바로 이 과정을 거친 랙이라는 부위를 일컫는 것이다. 이렇게 프렌치된 양갈비에는 소나 돼지의 갈비에 해당하는 부분은 거의 제거되고 양의 등심 부분만이 남게 된다. 즉, 우리가 먹는 양갈비는 사실 양의 등심이다. 


옆길로 새자면 소나 돼지의 경우도 위와 같이 정형한 경우를 흔하지 않지만 찾아볼 수 있는데 뼈 등심이라든가 토마호크 스테이크 같은 표현을 메뉴에서 찾는다면 역시 갈비뼈에 붙은 등심 부위를 이용한 메뉴라 생각하면 될 것이다. 소나 돼지는 갈비에도 기별이 갈 만큼의 고기가 붙어있으니 갈비와 등심이 섞인 고기라는 점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다시 돌아와서, 양갈비가 양등심이라는 점 외에도 여전히 양갈비라는 이름에는 아직 풀어내야 할 것이 남아있다. 

삼겹살처럼 지방이 상당 부분을 구성하는 부위나 돼지 껍데기 같은 별미도 있지만, 우리가 먹는 고기는 대개 동물의 근육이다. 그중에서도 등심을 이루는 가장 주요한 근육은 사람으로 치면 척추 기립근에 해당하는 영어로 eye muscle이라 칭하는 배최장근이다. (rib-eye 스테이크의 그 eye다!)


이제 잠깐 스트레칭 시간을 가져야 한다.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각자의 척추 기립근을 아래에서 위로 만져보자. 허리 뒤편에서 시작하는 척추 기립근은 등 쪽으로 올라갈수록 뚜렷해지다가 날갯죽지가 있는 부분부터 다소 흐릿해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양과 인간의 신체 구조는 다르지만, 양의 배최장근도 비슷하게 뻗어 있다. 그래서 아래쪽 갈비뼈에 붙은 고기는 이 근육이 등심의 대부분을 차지하여 고기에 서로 다른 근육 사이에 있는 지방이나 근막이 적다. 반면, 위쪽 갈비에 붙은 살에서는 배최장근이 가늘어지면서 어깨의 여러 근육이 섞이게 되어 근간지방이 많고 단면이 고르지 않게 보인다.


그래서 갈비뼈의 특정 지점을 기준으로 두 부위를 구분하는데, 양의 머리 방향에서부터 갈비뼈의 번호를 매겼을 때 1번에서 4번 갈비의 고기를 숄더랙이라 하며 5번에서 12번까지의 고기를 랙이라 한다. 


좌측이 숄더랙, 가운데가 랙이다. 타원형의 붉은 부분이 등최장근으로 숄더랙에서는 랙에서보다 등최장근의 크기가 확연히 작아지고 다른 근육과 하얀 지방이 늘어난 것을 볼 수 있다.


보통 랙을 더 고급 식자재로 간주하고 가격도 더 높지만 숄더랙 또한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에 비해 맛이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고 여겨진다. 그래서 가정, 음식점에서는 숄더랙이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실제로 비교를 위해 두 부위를 사려고 발품을 팔았을 때 주변의 대형마트들에서는 숄더랙만을 취급하고 있어 낭패를 겪었다. 혹여 집에서 양갈비를 뜯을 계획이 있다면 온라인을 이용하는 편을 추천한다.


두 부위를 주문했을 때 랙은 100그램 당 약 4000원이고 숄더랙은 100그램 당 4200원으로 영수증에는 차이가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랙을 프렌칭하는 과정에서 주변부의 살과 지방을 도려내는 정도가 업체마다 각각 다른데 이곳의 경우 랙에는 지방이 다소 많게 느껴져 이를 제한다면 실질적인 가격 차이는 꽤 크리라 생각한다.


인터넷을 통해 구매한 랙, 음식점의 같은 부위보다 등심 부분이 작고 지방이 확연히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조리했을 때 맛의 차이는 유의미했다. 랙의 경우 살코기 부분을 베어 물었을 때 연한 고기에서 육즙이 은은히 흘러나와 그 값어치를 톡톡히 했다. 마블링을 기준으로 하는 고소한 지방의 맛과는 다른 살코기의 풍미가 살아있으면서도 전혀 퍽퍽하지 않았다. 



숄더랙에서는 고소한 맛이 랙에서보다 강하게 느껴졌고 역시 연한 편이었지만 상대적으로는 더 쫄깃한 식감이었다. 근막이 씹힐 때 다소 질겼고 잡내가 약하게 느껴졌지만, 이는 필자의 요리실력의 부족에 기인한 것으로 보는 것이 더 합리적일 것이다. 같이 먹은 가족들은 대체로 랙을 선호했지만 숄더랙도 입에 윤기가 도는 기름진 맛을 내는 강점이 있다고 평했다. 필자는 여건상 팬을 이용했지만 숄더랙의 기름진 고기는 직화구이가 더 잘 어울릴 듯싶었다. 


최근 양갈비 전문점이 늘어나면서 두 부위를 구분해 표기하는 곳도 늘어나고 있지만, 여전히 메뉴를 보고 이 양갈비가 랙인지 숄더랙인지 구분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요리를 주문할 때에 혹은 직접 식자재를 구매할 때에 당신이 고른 것이 둘 중 무엇인지 물어 확인할 수 있다면 합리적이고 똑똑한 당신의 식생활에 작게나마 덤을 보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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