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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 작가 Jan 20. 2024

친구는 왜 접시를 집어던졌을까

내 이야기를 극영화로 만든다는 것(1)

얼마 전, 고등학교 동창들 일명 '고양이'와 신년회를 가졌다. 기차여행을 떠났던 고3 봄날, 계모임 이름을 정하려는데 철도 주변으로 고양이가 지나가는 게 아닌가? 나는 "야! 계(개)모임 하지 말고, 고양이 모임하자!"라고 제안했고, 만장일치로 고양이가 되었다고 한다.


현재는 모두 초딩 자녀를 둔 엄마들이라, 대화 주제는 육아 이야기부터 시작해 주를 이룬 건 '남편 뒷담'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공감력 제로인 나는 동떨어진 이야기에 더욱 공감을 못하며 기빨리지 않으려고 최대한 방어태세(?)를 유지한 채 먹방에 집중했다. 아우, 나도 이제는 털어놓고 싶은, 꺼내놓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 너무 긴 이야기라 할많하않했다고 한다.


대신 나에겐 '브런치'가 있지 않은가? 우린 헤어지고 나서도 신년회의 여운을 즐기며, 단톡에서 수다를 이어갔는데 그 분위기에 올라타 브런치 글을 띄워보았다. 고양이 단톡뿐 아니라, 다른 몇 친구들에게도-


"이거 니 글이야?" "소설 아니야?" "소설인 줄 알고 읽었어"


나의 실화!라고 하니


"기특하다 내 친구" "토닥토닥" "멋지다" "내 친구 용기 있다!!"며 응원해 주었다.

마음이 아파서 좀 쉬다 읽겠다는 친구도 있었고, 눈물을 함께 흘려준 친구도 있었다. (F성향들) 그러면서, 내면의 상처를 글로 풀어내는 작업에 관심을 보였는데, 정말로 치유가 될 것 같다며...하지만 글을 잘 못 쓰니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 우린 모두 상처투성이가 아니던가? 누구에게나 돌보지 못했던 마음의 흠집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고양이 멤버 중, 영구라는 닉네임으로 불리는 '영신이'는 캘리그래피를 배워 마음공부를 하는데, 모인 날 우리 모두에게 손수 정성껏 그린 캘리그래피 엽서를 액자에 담아 선물해 주었다.


오늘, '친구는 왜 접시를 집어던졌을까?'의 주인공이기도 한 영신의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컨펌받았음) '영구'가 더 익숙하지만 진지한 글이 될 것이므로 (어색하지만)본명을 사용하겠다. 작가인 내가 연출을 배운답시고 다녔던 아카데미의 실습작 중 하나로 단편 극영화를 제작할 때, 어떤 소재를 담을까 고민하던 차에 영신이와 대화하던 중 모티브를 얻었다.


"내...신랑 때문에 하도 열받아서 악! 소리 지르고, 설거지하다가 접시 집어던지고 집 나간 적도 있데이"

영신이의 고백이었다.


너무 낯설었고,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내가 아는 영신이는 절대 그런 과격한 행동을 하는 친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중학교 때부터 친했으니, 햇수로 27년- 나름 영신이를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무엇이 친구를 변하게 만든 걸까? (그 와중에 안 깨지는 접시를 골라 던졌다는 걸 보면, 그래도 영구다 싶긴 한데...)


나는 영신이의 '접시 던지고 집 나간' 모먼트에서 출발해, 극을 쓰기로 했다. 러닝타임이 10분 내외인 단편 극영화이기에 복잡한 이야기보다는 심플한 하나의 모먼트에 집중하는 게 이야기를 풀어가기에도 쉬우며 관객을 몰입시키기에도 좋다. 일단, '접시 사건'의 배경을 알기 위해 영신이의 얘기를 더 들어보았다.


모두 들은 후, 나는 아래와 같이 연출의도를 정리했다.


육아우울증이 극에 달한 엄마 영신이 보내는 단 하루의 휴가! 아내로서, 엄마로서 지내오며 늘 가족에 치였던 영신은 진짜 '영신'이 어떤 모습이었는가, 어떤 모습이길 바랐는가, 무엇을 잃어왔으며 무엇을 되찾아야 하는가 생각하며 그 누구도 아닌 '나만의 시간'을 가지려 몸부림친다. 달콤한 듯 하지만 애처롭기도 한 그 짧고도 소중한 휴가를 통해 나를 아끼고 사랑하는 일, 나를 1순위로 올리는 일을 영신이 해낼 수 있길 바랐고... 이 영화를 통해 '진짜 나'를 찾고자 하는 모든 사람을 응원하고 싶다.


나는 영신이가 본연의 모습을 되찾기 바랐고, 꿀 같은 휴가이자 도파민 터지는 하루를 선물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직접 연기까지 요청!! 영신인 쿨하게 수락했고, 영신이 남편도 아내의 1박 2일 외출에 동의했다.


내가 극영화를 통해 끌어내고 싶었던 영신의 모습은 어떤 걸까? 주인공 '영신이'를 탐구를 해보자.


때는 바야흐로 1996년, 중학교 2학년 때로 거슬러 올라가 본다. (멀다 멀어) 이름에 '영'이 들어간다는 단순한 이유로 '영구'가 된 영신이는 별명과 달리 똑똑한 친구였다.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줄곧 반장을 맡았고, 쿨의 '이재훈'을 닮은 선하고 오목조목한 인상이다. (본인은 박보영이라 들었다고 하지만 이재훈이다. 위에 커버 사진 참고)


영신이는 놀기도 좋아하고 끼도 다분했다. 온화한 편이었으며, 화를 내는 법이 없었는데- 당시, 우리 반에 깡년(부산 애들은 일진을 깡년이라 칭했다)이 하도 반의 물을 흐리고 약한 애들을 괴롭히는 일이 잦아지자, 터져버렸던 영신은 교단에 서서 꽥 소리를 질렀다.


"야!!!!! #$% 너희들!!! 제발 그만 좀 해라!!! 애들 다 너희 싫어한다!!!!!@#$%$@*"


우리도 놀랐지만, '깡'들도 놀랐을 거다. 당황한 걸 들키지 않으려고 실실 비열하게 쪼갰지만 당장의 나쁜 짓을 멈췄을 뿐 아니라, 그 후로 한동안 잠잠했던 걸 보면 확실히 영구효과가 있었다. 어쩌면, 이때 본 영신이의 모습이 '접시를 집어던질 수 있는 영신이'의 씨앗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등장인물을 만들 때는 성격의 씨앗을 심는 작업이 필요한데, 씨앗이란 일종의 우리가 가지고 있는 숨은 기질을 일컫는다. 씨앗이 발아하고 열매를 맺는 그 과정은 인물의 성격이 변화하는 과정과도 같은 것이다. 씨앗들을 극에 전면으로 드러내진 않더라도 내적 설계 차원에서 촘촘히 심어두어야, 등장인물의 특수한 행동(ex/접시를 던지는 행동)에 관객이 의문을 갖지 않고 인물의 전사를 유추해가며 극을 따라갈 수 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또 같은 반이 된 영신이와 나는 고양이를 결성해 더 가까워졌다. 이때, 영신이를 반장으로 적극 추대한 장본인이 바로 나야나. 참고로 나는 자발적으로 총무부장을 맡았으며, 반의 실세이기도 했기에 뒤에서 반장 영신이에게 별별 주문(?)을 하는 것은 물론, 각종 회비를 내야 할 땐 단 한 명도 늦거나 누락되는 일이 없도록 아이들을 쥐 잡듯이 잡았더니, 선생님이 몹시 뿌듯해하며 "희영아, 너는 내가 여태까지 만난 총무부장 중에 가장 일 잘하는 총무야!!"라며 칭찬을 해준 기억이 있다. (갑분 내자랑)


다시 영신이 얘기로 돌아와, 나랑 영신이는 고양이 활동 외에도 반의 '깡'들과도 잘 어울려 다녔다. 다만, 얘네는 남을 괴롭히지 않는 그냥 놀기 좋아하는, 살짝 까진...착한 깡에 속하는 친구들이었다. 얘네와 한창 화상채팅에 빠졌을 때가 있는데, 야자를 째고 PC방으로 달려갈 땐 빛보다 빨랐다고...(에헴) 여기서도 내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데, 난 이미 하두리계의 '김희선'이라 불리고 있었다. 각도를 잘 잡고, HOT문희준처럼 앞머리 커튼을 치고 눈에 힘을 꽉 주면 김희선 완성! 그러다, 어떤 ‘노는 오빠들’이 김희선을 꼭 보고 싶다고 해서 용기 내 나가볼까? 했더니 친구들이 "야! 니 나갔다가 맞는다"며 극구 말려서, 예쁜 깡친구들을 선발(?)하여 대신 내보내기도 했는데, 무스탕을 입고 오토바이를 타고 온 무시무시한(그러나 잘생겼다는) 오빠들이 희선이 없다고 희선이 데려오라고 난리~난리를 쳤다고 한다. "니 나갔으면 진짜 죽었다"라던 깡친구들의 전언이다. 휴, 암튼 영신이랑 나는 화상채팅으로 남자아이들과 즐소통~하면서 온라인 상의 인기녀로 한껏 끼를 부렸던 때다. (또 내 얘기가 길어졌다)


영신이와는 집도 매우 가까워서 등교와 하교를 같이 하곤 했는데, 집에서 학교까지 가는 마을버스는 늘 만원인데다 걸어서는 40분이 넘게 걸리기 때문에 대부분 매달 얼마씩 내고 통학 봉고차를 이용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나는 봉고차 탈 돈이 없어서, 마을버스 문에 매달리듯 끼여 타거나 차라리 지각을 해서 여유 있게 가거나 둘 중 하나였는데, 가끔 영구가 봉고차를 타는 시간에 나를 마주치면, "야! 타라!" 해서 태워주곤 했다. 기사 아저씨가 천사같은 분이어서 내가 자주 무임승차했는데도 늘 웃으며 반겨주었고, 다른 모르는 친구들도 내가 떠드는 이야기가 재밌었는지 눈치 주는 법이 없었다.


영신이와 나는 급식도 나누어 먹었다. 식판 하나로, 밥과 반찬을 산더미처럼 담아와 나눠 먹는 개념이다. 급식비를 아끼려고 한 짓인데, 다행히 나랑 친한 수봉이라는 키다리 친구가 배식을 담당해서 항상 우리가 원하는 만큼 넉넉하게 퍼주었다.


영신이와의 '셰어'는 20대 후반이 되어서도 이어졌다. 바로 '고시원'의 룸메이트로 지내게 된 거다. 당시 영신이는 광고홍보학을 전공했다가 사범대로 편입해 졸업을 앞두고 임용 준비를 하고 있었고, 나는 IT벤처기업에서 일을 하다가 방송작가가 되겠다고 kbs방송아카데미를 다닐 때였다. 고시원 대부분은 몸 하나 누일 공간인 방도 한 달에 40~45만 원 하는데다 화장실도 공용이어서, 궁리 끝에, 반투명 화장실이 딸린 75만 원짜리 널찍한(그래봐야 두 명 누일 공간) 고시원 방을 구해 셰어하는 것이 더 경제적이란 판단에서 합심! 합방! 하게 된 거다.


우린 좁은 고시원 방에 살면서도, 각자의 길을 향해 부지런히 공부했고, 때론 '빌붙기 허용권'따위를 휴지에 조악하게 적어 친구들에게 내밀며 밥을 얻어먹고 다니기도 했다. 아이스크림은 꼭 쌍쌍바처럼 나눠먹을 수 있는 것 또는 1+1을 픽했다.


우린 생활방식이 참 달랐다. 영신이는 공부하는 시간도 규칙적으로 지켰고, 고시원 주방을 적극 활용해 밥도 꼬박꼬박 챙겨 먹었다. 반면에 나는 에너지를 쏟을 때 확 쏟고 늘어질 때는 한없이 늘어졌으며, 대부분 밖에서 햄버거를 먹거나 분식으로 끼니를 때웠다. 그러다가도 우리 둘은 죽이 척척 잘 맞아 초롬이(내 반려인형)와 함께 좁은 방에서 웃고 (조용히)떠들며 놀고, 6개월을 함께 지내며 단 한 번도 다툰 적이 없었다. 심지어, 소화 불량인 영신이 방구를 자주 뀌었어도 냄새를 못 맡는 무딘 후각의 나는 아무렇지 않게 영신이의 독한 방구를 들이마셨다. ㅡㅡ; (부끄러운 이야기이니 줄 그음)


그만큼 잘 맞았던 우리는 함께 잘 되어 고시원을 나갈 수 있었다. 비슷한 시기에 영신이는 임용에 붙었고, 나는 kbs 휴먼다큐멘터리 막내작가로 취업을 해 각자 자취방을 구해 독립한 거다. 서로에게 합격턱을 낼 때도 돈을 아끼기 위해 대패삼겹살따위를 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마저도 “2인분만 시키래이..."하면서.


영신이는 내가 하는 방송에도 출연을 했다. KBS아침 매거진 프로그램을 할 땐데, 혁신적으로 달라진 한강 문화를 소개하는 목적의 VCR로, 영신이는 새로 조정된 전망대에서 투명한 바닥창으로 한강을 내려다보며 신기해하는 시민 역할을 해주었다. 편집을 하던 피디가 "친구분 연기 왜 이렇게 잘해요?" ㅎㅎ


영신이는 타고나길 무대 체질이기도 하고, 광고홍보학을 전공할 때 직접 영상을 제작한 경험도 있는데다 마라톤부터 인라인스케이트 등 활동적인 것을 즐겨서인지 방송 출연과 같은 제안이 있을 땐 두말없이 콜!이었다. 영신이에게 세상은 재미난 일들로 가득한 것만 같았다.


무엇보다 영신이에게 본받고 싶은 점은 소소한 일에도 행복해하고 감사할 줄 아는 긍정적인 태도였다. 이따금 "너의 요즘 행복지수는 얼마냐?"라고 물으면, "나? 95점?"이라고 대답할 만큼 밝은 기운으로 가득한 영신이.


그랬던 영신이가 소리를 지르고? (안 깨지는)접시를 집어던지고? 집을 나가기까지 했다니...이 얘기를 듣고, 문득 그때가 떠올랐다. 영신이가 첫째를 낳고 육아휴직 중일 때 찾아간 적이 있는데, 생기를 잃은 수척한 얼굴과 뭔지모를 어두운 기운...깔끔한 영신이의 성격과 달리 집도 어수선해 보였다. 육아우울증으로 힘들었던 시기라는데, 친구를 맞이하느라 억지로 텐션을 끌어올리려는 영신이를 보며 안쓰러웠던 기억이다.


나는 첫째랑 놀아줄 테니 먹고 싶은 걸 먹으라고 했고, 영신이는 "그르믄...내 짜장면 시켜 먹어도 되나아?"해서, 짜장면을 시켜주었다. 나는 거실에서 첫째랑 인형놀이하고, 영신이는 식탁에 앉아 짜장면을 먹으며 "야...내 이렇게 맘 놓고 먹어본 게 얼마만인지 모른다야...고마우"하며 웃었다.


첫째가 초등학생이 되고, 둘째는 어린이집에 다니는 최근 영신이를 만났을 땐 캘리그래피 도구를 가져와 나에게 함께 해보자고 하며 가르쳐주었는데. 캘리그래피에 집중하는 영신이가 즐거워 보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어떤 절박함이 느껴졌다. 내가 글을 쓰고, 다큐와 드라마를 만드는 것으로 나를 위로하듯, 영신이에게 캘리그래피는 짓눌린 일상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창이자, 상처받은 자신을 향한 하나의 애도의 방식인 듯 했기에.


영신이가 보내는 단 하루의 휴가! 나의 극영화 <영신>은 어떤 이야기로 전개될까? 2탄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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