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버지에 대한 이것저것 1
내가 또래 친구들과 비교하여 몇 가지 최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는 게 한 가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아버지와 사이가 좋다는 것이다. 아버지와 사이가 좋고 나쁨이 어떤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진 않겠지만(되어서도 안된다고 생각한다. 각자의 가정환경은 다 다르고, 이는 존중의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기준에선 또래 친구들과 비교하여서는 안되지만, 남다르다.
우리 아버지는 원래 정이 많으시고, 유머러스한 아버지다. 아직도 어릴 때 아버지가 했던 몇 가지 발언들이 기억나는데, 한창 옷에 관심을 가지면서 새벽 동대문시장을 갔던 적이 있다. 중학교 때였는데, 어느 날은 무슨 이유인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친구들과 동대문시장을 가려고 했다가 못 갔다. 그 당시에 우리 집이 아지트였는데, 다들 아쉬운 마음으로 우리 집에서 티비를 보고 있었다. 아버지가 약속 후 들어오셨는데, 나와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시더니 현금 10만 원을 주셨다.
"가고싶으면 가야지, 이거 가지고 택시 타고 가!"
당시 중학생이었던 우리에게 10만 원은 엄~~~ 청나 게 큰돈이었고, 경기도에 살고 있던 우리에겐 "차"를 이용해서 서울을 가본 경험이 없었다. 항상 버스와 지하철을 이용했고, 당연히 학생이기에 운전은 할 줄도 몰랐다. 우린 너무 놀라기도 했고, 무섭기도 해서 거절했다. 우리가 계속 거절하니깐, 아버지는 그럼 이거 가지고 나가 놀아!라고 하시면서 10만 원을 주셨다. 그리곤 밤샘 PC방 허락을 해주셨다. (당시에는 미성년자가 밤새 PC방 이용이 안되었고, 부모님 허락하에만 이용이 가능했다) 솔직히, 그 당시 우리 집은 동네에서 나름 알아주는 부잣집이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우리 부모님에게 해당되는 말이었고, 나와 내 친구들은 그냥 중학생이었다. 결론적으론 동대문에 가지 않았지만, 우린 아버지가 준 10만 원으로 밤새 피시방에서 놀고, 아침도 거~~ 하게 김밥천국에서 먹고서는 새벽 동대문시장에 갔다 온 것처럼 아침에 잠이 들었다.
우리 아버지는 이렇게 호탕하면서도, 아들이 어떤 경험을 함에 무한한 지원을 해주셨다. 아버지가 너무 잘 나가셔서 내가 열여섯 살 때 이혼을 하시긴 하셨지만, 이후 내가 필리핀으로 유학을 가서도 아버지는 무한한 지원을 멈추지 않으셨다. 이 부분은 서른두 살인 현재도 변하지 않았다.
내가 아버지와 원래 사이가 좋았지만, 사이가 더욱 좋아진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부모님이 이혼하면 서다. 부모님이 이혼하면서 양육권은 어머니에게 부여됐고, 나는 이후 어머니와 계속 같이 살고 있다. 하지만, 나는 부모님 이혼 후 필리핀으로 유학을 갔다. 아버지와 떨어져 살아본 경험이 거의 없기에, 필리핀에서 적응하기 쉽지 않았다. 방과 후 내가 하루도 빠짐없이 했던 것이 아버지, 어머니와의 통화다. 그 시간에 내가 오늘 하루 뭘 했는지, 아버지는 뭘 했는지를 공유했다. 그리고 전화의 마지막은 항상 "사랑해"라는 말이었다.
나는 아버지와 내 여자친구 이야기, 선배들에게 맞은 이야기, 학교생활 이야기, 교회생활 이야기, 삶에 대한 이런저런 고민들을 아무 제한 없이 이야기한다. 이런 시간들이 아마 현재 아버지와 나의 좋은 관계를 유지함에 큰 영향이 있었을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전화를 하는 횟수는 줄어들었지만, 현재도 매주 일요일에는 아버지에게 꼬박꼬박 전화를 하고 있다.
현재 글을 쓰고 있는 날도 일요일이다. 집에 들어가는 길에 아버지한테 전화 걸어서 잔소리할 생각이다. 손주 볼 생각 있으면 담배 끊으시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