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버지에 대한 이것저것 2
아버지와 앞으로 함께 기억할 시간들이 많겠지만, 과거를 생각하면 대부분 좋은 기억들만 있다. 하지만, 아버지에 대한 기억 중 슬픈 기억이 딱 "두 번" 있었다. 한 번은 과거에 있었던 일을 말씀해주시는데 내가 너무 슬펐던 기억이고, 한 번은 나와 통화하시다가 서운한 감정을 말씀하셨는데 그게 슬픈 기억으로 남아있다.
"아빠는 아들 볼 생각에 계속 기대하고 기다렸는데, 왜 그러는 거야?!"
필리핀 유학시절, 여름방학을 한국에서 보내려고 나왔었다. 당연히 아버지 만날 날을 정했는데, 무슨 이유인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약속 전날 취소를 했어야 했다. (내 기억에는 엄마가 가지 말라고 했던가... 내가 굉장히 억울해했던 기억이 있다)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미안한데 내일 못 갈 거 같다고 했다. 근데... 내 인생에서 아버지가 이렇게 큰 소리로 나에게 꾸중을 하셨던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 아버지가 소리를 지르셨다. 아직도 이때의 아버지 목소리와 감정이 생생하다. 나는 너무 놀라서 아무 말도 못 했고, 아버지는 이런저런 서운한 마음을 표현하시곤 전화를 끊으셨다. 그때 아버지가 했던 말이 위의 말이다. 이혼 후 어머니와 계속 살았고, 아버지와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 나는 크게 생각하지 못했는데, 아버지는 외로웠었고 힘드셨던 것 같다. 내가 중학교 시절에 친구들과 담배를 피우다 걸려도, 마트에서 맥주를 훔쳐 마셔도, 학교에서 친구들과 싸우고 들어와도, 어떤 나쁜 짓을 해도 단 한 번도 나에게 나쁜 소리를 하시지 않았던 아버지였기에 저 당시 나는 굉장한 충격을 받았었다.
당시에는 큰 충격이었지만, 시간이 흘러 위 기억을 떠올르면 나는 엄청 슬퍼진다. 내가 상상도 못 할 아버지의 외로움이 얼마나 크셨을지, 혼자서 보낸 그 시간이 얼마나 힘드셨을지를 생각하면 엄청난 슬픔에 빠지곤 한다. 지금 글을 쓰는 순간에도, 아버지의 목소리가 뚜렷하게 기억난다. 이게 내가 아버지에 가지고 있는 두 번의 슬픈 기억 중 하나이다.
"아빠는 아들들 없는 세상을 살고 싶지 않았고, 할 수 있는 게 돈을 쓰는 것뿐이었어"
열여섯 살에 우리 부모님은 이혼을 하셨는데, 이혼 이유는 "돈"이었다. 다행히도 가난해서 이혼하신 게 아니라, 너무 부자여서 이혼을 하셨다. 평생 한 번도 만져보기 힘든 돈을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가 버셨고, 돈 때문에 결국 이혼하셨다. 이후 나와 동생은 필리핀으로 떠났고, 어머니도 본인의 인생을 착실히 살아가셨다. 이 시기에 아버지가 정확히 어떤 시간을 보내셨는지 아직도 자세히는 모른다. 근데, 성인이 되어 아버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 이 시간에 아버지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잠깐 들었다. 우리 아버지는 싱크대 공장을 운영하시면서 큰돈을 버셨고, 이를 당시 유행하던 "바다이야기" 성인오락실(?)에 투자하셨다. 도박장은 아니고, 성인게임(?), 뭐 이런 거였다. 자연스럽게 이런 성인게임장과 가깝게 지내셨다. 이혼 후 아들들이 없는 시간이 갑자기 큰 외로움으로 다가왔다고 하신다. 견딜 수 없으셨고, 견디고 싶으셔서 성인게임장에서 1년 가까이를 지내셨다고 하신다. 당시 금액으로 수억을 탕진하셨다는 말씀을 해주셨는데, 이 이야기를 들었던 순간에 나는 울컥한 마음을 참기 힘들었었다. 내 잘못 같았고, 아버지가 외로움을 느끼는 남자라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었다. 다행히 당시 재력가였던 아버지가 돈 때문에 삶을 포기하는 TV 속 도박꾼의 모습으로 살진 않으셨지만, 아버지가 이런 시간을 보내셨을 거라 상상도 못 했던 나에게 위 사건은 매우 슬픈 기억이다.
내가 나이가 들수록 아버지에 대한 이상한 감정이 많이 생기고 있는 것 같다. 엄마한텐 다시 한번 미안하지만, 같은 "남자"라는 이유로 생기는 감정인 것 같다. 나는 아직 미혼이고, 아빠가 된다는 것에 대한 엄청난 부담감과 무서움이 있다. 이런 나의 감정에 투영하여 우리 아버지를 바라볼 땐 엄청난 경외심이 일어난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100% 좋을 순 없겠지만, 99% 좋았으면 좋겠다. 내가 마흔이 되고, 더 늙어서도 아버지한테 잔소리하면 아버지가 "아 새끼야, 잔소리 좀 그만해!"라고 답해줬으면 좋겠다.
나는 우리 아버지가 영화 속 슈퍼히어로처럼 죽지 않고, 영원히 살았으면 좋겠다. 평생 내 옆에서 내 아버지로 있었으면 좋겠다. 평생 아프지 않으시고, 건강히 사셨으면 좋겠다.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