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줍잖은 피해의식
엄마의 꿈이 조금씩 현실로 다가오면서, 이상하게 나는 내 삶에 대한 피해의식이 늘어난다. 아마도, 내가 느끼기엔 다소 일방적인 엄마의 도움 요청이 시발점이 된 것 같다. 엄마는 나에게 일정 금액을 무조건 보태라는 요청과 가게를 시작하면 무조건 나와서 일손을 도우라는 요청을 아무렇지 않게 한다. 물론, 아들이라면 그럴 수 있겠지만, 나는 이런 삶을 강요받은 것 같아 짜증이난다.
아마도, 이런 피해의식을 어릴 적 경험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나는 부모님을 떠나 일찍 필리핀 유학을 떠났었고, 당시 우리 집은 막 이혼을 한 상태였다. 나는 어렸고, 내 동생을 더 어렸다. 점점 시간이 지나가며, 나는 상처를 숨기며 살았고, 동생을 상처를 드러내며 살았던 것 같다. 그런 동생의 어긋남(사회적 기준으로)을 항상 수습해야 했고, 그 가운데서 나는 지금의 피해의식을 기초를 쌓았던 것 같다.
나는 항상 가족의 일을 수습해야했고, 나름 잘 했다. 성인이 되어서는 자연스럽게 가장이 되어버렸고, 이런 삶이 좋기도 나쁘기도 했다. 다만, 여전히 나는 나를 숨기며 살았다.
서른세살의 현재, 나는 가족이 나의 삶을 망쳤다고 생각하는 시간들이 있다. 나는 평생 동생과 엄마, 그리고 요즘은 아빠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일을 했다고 생각했다. 생각해보면 뭘 그렇게까지 희생하고, 해결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무언가를 항상 해결하며 살았던 것 같다. 그 가운데 나는 나를 잃어버렸다고 생각했고, 가족들의 어려움을 항상 듣는 입장에 있다고 생각했다. 이 생각이 지금도 100% 틀렸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다만, 내가 생각하는 것 처럼 가족들은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엄마의 꿈을 놓고, 몇 주 동안 부정적인 감정들이 나를 감싸고 있다. 나는 왜 이런 삶을 강요받는가? 엄마가 한다고 하면 나는 왜 무조건 다 따라야하는가? 지금까지도 그래왔는데, 이젠 내 삶을 살아야할 나이임에도 왜 나는 그래야하는가? 서른셋, 나는 왜 전재산을 엄마의 꿈에 투자해야하는가? 나의 결혼은? 나의 집은? 나의 미래는? 억울하다는 생각이 머리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말도 거칠고, 차가워진다.
부정적 감정을 타인에게 비치는게 올바르지 않다는 걸 알기에, 노력하려 하지만 엄마의 목소리에 부정적 감정들은 최대치로 폭발한다. 엄마에 대한 원망과 불평이 늘어난다. 왜 아무렇지 않게 나의 삶을 빼앗아가는가? 엄마가 준 삶이기에 당연히 가져갈 수 있다는건가?
모르겠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은 하나뿐이다. 모든 것을 다 주는 것. 그럴 준비도 되어있지만, 그러고자 하는 마음이 앞서지 않는다면, 아마도 평생 엄마를 미워할 것이다.
어줍잖은 피해의식이다. 나는 성숙하지 못하다. 어쩌면 어릴 적 잘못 쌓아올린 사회성이 천천히 무너지면서 나를 찾아가는 과정일 수 있다. 눈 앞에 칭찬, 인정, 박수에 현혹되어 그 뒤에 외롭게 서 있는 나를 버려둔 결과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