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부 한 달 살기 3일 차 ‘우리 함께‘
행정적인 선택이었지만 1월 2일 하루는 연차를 사용하고, 휴직은 26년 1월 5일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그리하여 세부에서 맞는 세 번째 날이 나의 육아휴직 공식 시작일이자 아이의 어학원 입학일이 되었다.
굳이 의미를 부여하자면,
엄마와 아이가 같은 날, 같은 방향으로 무엇인가를 시작하는 날이다.
아이에게는 한 달의 공부가,
나에게는 6개월의 쉼과 전환이 열리는 날.
아이의 한 달 학습 방향은 오늘 정해진다.
어떤 레벨에서, 어떤 방식으로, 어떤 속도로 갈지.
나도 나의 방향을 나를 회복시키는 시간으로 만들 것인지, 다음 삶을 준비하는 기점으로 만들지 많은 고민을 통해 결론에 도출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아이는 아침부터 입학이 떨린다고 말한다. 생전 처음 보는 외국인 선생님과 1:1 수업 4시간, 처음 보는 친구들과 한데 섞여 그룹수업을 4시간이나 들어야 했으니 긴장되는 것은 당연했다. 덩달아 나도 긴장이 되었다.
한껏 얼어붙은 표정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딸아이의 모습이 왜 이렇게 짠하게 보이는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한 발 한 발 새로운 세상으로 발길을 옮기는 아이를 보며 응원한다.
‘딸, 넌 잘할 수 있어!‘
입학식 없이 아이들은 교실로 바로 들어갔고, 내부 기숙사를 이용하는 학부모들은 자연스럽게 외부 카페로 이동해 OT를 진행했다.
이 어학원을 여러 번 경험해 본 학부모, 이미 한 달 살이를 몇 차례 해봤다는 사람, 그리고 나처럼 모든 것이 처음인 부모까지. 서로의 배경은 달랐지만 같은 공간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묘한 공감대가 생겼다. 전국 각지에서 이곳까지 모였다는 사실도 신기했고, 각자가 이곳에 오게 된 이유를 듣는 일은 예상보다 훨씬 흥미로웠다.
이 자리는 단순한 어학원 OT가 아니라, 각자의 삶이 잠시 교차하는 작은 교차로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OT라고 해서 무겁게 생각했지만 몇몇 엄마들과 산미구엘로 마른 목을 적시니 나도 첫날의 모든 긴장이 풀리는 것 같았다. 역시 낮맥의 힘이란
아이들에게 주어진 쉬는 시간은 단 5분이었다.
분교에서나 들릴 법한 종소리가 울리자, 이곳의 아이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짧은 휴식이지만 그 5분은 아이들에겐 충분히 반짝이는 시간이었다.
종이 울리면 아이들은 즐거운 표정으로 교실을 뛰쳐나와 잔디밭으로 향했다. 누군가는 풀벌레를 찾아 쪼그리고 앉았고, 누군가는 까미와 밍키를 부르며 마당을 이리저리 누볐다. 자연은 놀이터가 되었고, 아이들은 그 안에 스며들 듯 어우러져 저마다의 즐거움을 찾았다.
그 풍경 속에서 딸아이의 얼굴은 어색함 대신 웃음이 먼저 나왔고, 자연스럽게 또래 친구들 곁에 섞여 있었다.
오후 학부모 일정은 단순했다. 함께 식당에서 점심을 먹은 뒤, 어학원에서 제공하는 지프니를 타고 근처 LG 가든 몰로 이동하는 것이었다. 환전도 하고, 마트에서 필요한 생필품을 사서 돌아오는 일정이라고 했다.
나는 마트에 들어서자 샴푸와 린스, 바디워시를 고르고, 아이를 위한 간식들을 하나둘 카트에 담았다. 낯선 브랜드 앞에서 잠시 멈춰 서서 성분을 살펴보고, 아이가 좋아할 만한 맛을 상상해 보기도 했다. 그렇게 천천히 장을 보는 일이 이상하게도 오랜만처럼 느껴졌다.
오직 아이만을 떠올리며, 아이만을 위한 장을 이렇게 여유 있게 본 적이 있었을까. 한국에서는 늘 시간에 쫓겨 장을 봤고, 장보기마저 일정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다. 급할 땐 클릭 몇 번으로 끝내는 인터넷 장보기가 더 익숙했다.
하지만 이곳에서의 장보기는 조금 달랐다. 필요한 물건을 산다기보다, 아이의 하루를 상상하며 마음을 채우는 시간에 가까웠다.
수업이 끝나는 오후 4시에 맞춰 아이를 기다렸다. 첫날이니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힘들었다고 하면 “괜찮아”라고 말해줄 준비를 하고 있었고, 적응은 천천히 해도 된다고 스스로를 다독이고 있었다.
그런데 아이의 첫마디는 예상 밖이었다.
“재미있어요!”
그 한마디에 마음이 풀어졌다. 그래, 공부는 둘째다. 한 달 동안 네가 행복할 수만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시간을 위해 쓴 비용이 전혀 아깝지 않겠다고, 오히려 잘한 선택 같다고 느껴졌다.
아이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기다렸다는 듯 수영장으로 향했다. 시원한 물속에서 아이들은 금세 웃음소리를 터뜨렸다. 두 시간 동안 ‘꾸야 삼촌’들이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는데, 그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아이 눈높이에 맞춰 웃고, 잠수하고, 튜브를 끌어주며 진심으로 어울려 주는 모습이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속에서 뛰놀던 아이의 얼굴은 한결 가벼워 보였다. 마치 이렇게라도 한국에서 쌓였던 스트레스를 풀어내는 것처럼.
두 시간의 물놀이 덕분인지, 딸아이는 밥맛이 유난히 좋았다. 저녁 식사는 채 10분도 걸리지 않아 끝이 났다. 그렇게 에너지를 다시 채운 뒤, 잠깐 남은 시간 동안 아이와 함께 어학원 투어를 했다.
1:1 수업을 했다는 교실도 들러보고, 아트 수업 시간에 만들었다는 결과물 앞에 서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아이는 제법 구체적으로 하루를 설명했고, 나는 그 설명을 듣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꽤 단단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저녁 7시부터는 Homework time이 시작된다. 아이들은 숙제방으로 모이고, 티처들이 낮에 내준 영어 숙제와 한국에서 가져온 문제집 풀이를 함께 봐준다. 한국에서라면 이 시간이 문제집이 싫다며 눈물과 콧물이 뒤섞이던 시간이었다. 옆에서 붙어 앉아 달래고, 다독이고, 때로는 실랑이를 벌여야 했던 바로 그 시간.
그런데 이곳에서는 다르다. 엄마가 옆에 있지 않아도 아이는 스스로 숙제를 마치고 돌아온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사소한 장면 하나하나가 기적처럼 느껴진다.
2026년 1월 5일.
아이와 내가 나란히 서서
각자의 출발선에 조용히 발을 올려놓은 날.
아이는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고,
나는 나 자신을 다시 배우기 시작했다.
그렇게 따로, 또 함께 하는 모습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