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달 만에 준비한 해외 한 달 살이
돌이켜보면 어떻게 준비했고,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아직도 조금은 얼떨떨하다. 모든 것이 갑작스럽게 정해졌고, 정신없이 후다닥 준비해 떠나는 여행이었으니까.
모든 시작은 작년 10월 초였다.
세부로 마음을 굳히는 순간, 마음이 급해졌다.
한 달 살이를 하면서 아이의 영어도 함께 챙겨보자는 방향이 잡히자 고민해야 할 것들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숙소는 어디로 할지, 끼니는 해 먹을지 사 먹을지, 아이 어학원은 통학형이 좋을지 기숙사가 나을지.
특히 워킹맘에게 시간은 늘 부족하다.
일하고 퇴근해 저녁을 준비하고 집안일을 하다 보면 하루가 훌쩍 지나가 있었다.
‘이 시간에 어학원도 좀 더 알아보고, 비행기 티켓도 빨리 끊어야 하는데…’ 결국 마음이 급해져 여러 유학원에 먼저 연락부터 돌렸다.
아이의 영어 실력은 어느 정도인지, 원하는 교육 방향은 무엇인지.
하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하나같이 같았다.
“1월은 극성수기라 이미 대부분 마감입니다.”
인기 있는 어학원은 최소 1년 전에 예약해야 한다는 말도 들었다. 남아 있는 곳들은 가격이 터무니없이 비쌌고, 하루 8시간 이상 영어만 하는 스파르타식 수업이 대부분이었다.
내가 바랐던 건 그게 아니었다.
한 달 동안 안전하게 지내면서, 아이가 영어에 흥미를 느끼는 정도면 충분했다. 하지만 조급해지다 보니 ‘그냥 아무 데라도 가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필리핀 가족연수를 찾아보며 알게 된 사실도 많았다.
저렴한 비용으로 1:1 수업이 가능하고, 가족연수나 기숙사형 어학원은 하루 두세 끼 식사에 빨래와 청소까지 제공된다고 했다. 엄마들 사이에서 ‘제2의 조리원’이라 불리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러다 우연히 한 어학원을 보게 되었다.
기숙사에 머물면 하루 세끼 한식이 제공되고, 주 3회 빨래와 청소 서비스가 포함되어 있었다.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마당과 수영장도 있었고, 수영장에서는 매일 두 시간씩 ‘꾸야 삼촌’이 아이들과 함께 놀아준다고 했다.
영어 수업도 암기 위주가 아니라 미술, 과학, 수학을 접목한 흥미 중심 수업이었다.
활달하고 뛰어노는 걸 좋아하는 딸에게 너무 잘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푸른 잔디와 숲처럼 우거진 나무들, 도마뱀을 잡으며 뛰노는 아이들의 모습. 자연 친화적인 환경은 나의 마음까지 단번에 사로잡았다.
세 곳의 유학원에 이 어학원만 대기를 걸어달라고 요청했다.
두 곳에서는 고개를 저었다.
“1월은 어렵습니다. 비수기로 미루시거나 다른 어학원이라도 빨리 결정하셔야 해요.”
하지만 마음은 이미 정해졌다.
이곳이 아니면, 그냥 아이와 신나게 놀겠다고.
이 시기를 놓치면 언제 이렇게 마음껏 놀 수 있을까 싶었다. 벌써부터 영어 공부로 아이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싶지 않았고, 나 역시 비싼 돈을 쓰고 결과에 연연하며 한 달 살이를 후회하고 싶지 않았다.
쉼이 아니라, 창살 없는 감옥 같은 시간은 보내고 싶지 않았다.
다행히 한 곳의 유학원에서 말했다.
“취소 자리가 날 수도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보세요.”
사실 그때도 이미 비행기 티켓은 끊어둔 상태였다.
자리가 있든 없든, 무작정 가겠다는 마음이었다.
세부에서 갈 만한 곳, 맛집들을 틈틈이 찾아보며 혼자 공부하듯 준비했다.
그리고 한 달 뒤인 11월 초, 한 통의 연락이 왔다.
“어머님, 취소 자리 생겼어요 등록해 드릴까요?”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네!”
그렇게 예약금을 송금했다.
두 달 남짓한 시간 동안 준비해 떠나는 길이라 여전히 막막하지만, 이상하게도 2026년은 무엇이든 잘 풀릴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행운이 우리를 위해 조금씩 움직여주고 있는 것 같은 느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