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육휴 생활 #3

아이와 둘이서 떠나는 한 달 살이 출국일

by 브리너즈




2026년 1월 2일 밤 9시 35분

우리 모녀의 출국일이 결정되었다.


그러나 설상가상.

출발을 딱 일주일 남겨두고, 딸아이가 갑자기 고열이 올랐다. 독감 확진을 받고 진료실 문을 나서면서부터 머릿속은 온통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이러다 정말 못 가게 되면 어쩌지.’

하루에도 몇 번씩 아이 이마에 손을 얹어 보며 컨디션을 체크하는 건 집안에서 의사가 된 엄마의 일이 되었다.


불안한 건 나만이 아니었다.

타국에서 한 달 살기 일정을 누구보다 기대하고 있던 아이는 힘없는 목소리로 계속 물었다.


“엄마, 나 갈 수 있어요?”

“엄마, 나 열 내렸어요?”


열이 조금만 떨어져도 거울 같던 눈이 다시 반짝였다가, 다시 오르기라도 하면 금방 축 가라앉았다.

혹시 많이 아프면 못 갈 수도 있다는, 엄마로서 내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솔직하게 말해버렸던 날 밤.

아이의 눈에 금세 눈물이 그렁그렁 고였다.

“독감 같은 건 왜 있어요? 바이러스 같은 건 다 없어졌으면 좋겠어…”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이는 엉엉 울었고, 나도 속으로 따라 울었다.

‘그러게, 엄마도 같은 마음이야.’


한편, 12월 31일까지 꽉 채워 일하는 워킹맘의 연말은 그야말로 전쟁이었다.

남들처럼 연말 파티도, 1월 1일 일출도, 새해 다짐도 올해만큼은 쿨하게 건너뛰기로 했다.

쉬는 날마다 세부에 대한 정보들을 찾아 읽고, 온라인 카페 후기를 뒤지고, 짐 싸기 리스트를 만들었다.

짐 정리와 정보 수집이 반복되는 새벽마다 문득문득 같은 질문이 떠올랐다.


‘나, 잘할 수 있겠지?’


이 질문은 다짐이라기보다, 불안에 조금 더 가까운 독백이었다. 해외라곤 혼자 떠나본 적도 없었고, 나 혼자라면 몸으로 부딪히며 배우고 조금 불편해도 견딜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상황이 다르다. 나를 믿고 따라오는 딸과 함께 하는 첫 ‘타국 한 달 살기’였다.

안전해야 했고, 너무 힘들지 않아야 했고, 웬만한 변수는 내가 미리 계산해야 했다.


그때서야 여행 갈 때마다 그저 ‘짐꾼’ 정도로 생각하던 남편이 떠올랐다. 비행 전날까지 묵묵히 캐리어를 들고 옮기고, 공항에서 동선 체크를 하던 그의 모습이 뒤늦게 의미를 달리했다.

그도 아마 이런 마음이었겠지.

지켜야 할 아내와 딸을 데리고 움직이는 사람의 마음으로, 매번 공항 바닥을 걸었겠지.


출국 당일 아침.

독감의 고비는 넘겼지만, 아이의 기침은 여전히 길게 남아 있었다. 아침 일찍 동네 병원에 들러 마지막 진료를 보고, 처방약을 쥔 채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11시쯤, 인천공항으로 가는 리무진 버스를 타기 위해 집 문을 나섰다. 남편은 본인도 불안하고 미안했던지, 근무 중 짬을 내 우리 짐을 같이 들어주고 터미널까지 배웅을 나왔다.

23kg 수하물을 꽉 채운 캐리어 두 개, 기내용 캐리어 하나, 그리고 아이가 원하면 웬만한 건 다 꺼내 줄 수 있을 것 같은, 도라에몽 가방을 닮은 나의 큰 가방까지.

네 개의 가방이 줄지어 서 있는 모습이, 이번 여행의 각오를 눈으로 보여주는 것 같았다.

일주일 뒤면 세부에서 다시 만날 텐데, 딸은 아빠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아빠가 벌써 보고 싶어요.”


창밖으로 남편의 모습이 작아질수록, 세 사람의 역할도 풀려나갔다. 남편은 직장인으로, 나는 보호자로, 아이는 한 명의 작은 여행자로 새로 정렬되는 느낌이었다.


금요일이라 길이 막힐 것을 염두에 두고 일찍 움직였더니, 오후 3시 무렵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 자동문이 열리는 순간, 공기가 달라진다.

겨울을 실감하게 하던 바깥의 찬 공기는 문턱에서 멈춰 서고, 안쪽에는 계절을 잊은 공기가 일정한 온도로 흘러 다니고 있었다.

전광판에 떠 있는 도시 이름들 사이로, 사람들의 시간대가 뒤섞여 공중에 떠 있는 것 같았다.

어디선가 영어와 한국어, 또 다른 언어들이 겹겹이 포개져 웅성거림을 만들고, 캐리어 바퀴가 바닥을 긁는 소리가 일정한 박자를 찍고 있었다.


그 속을 걸어가면서, 나는 잠시 엄마라는 이름을 뒤에 두고 온 사람처럼 느껴졌다.

마트 카트 대신 짐 가득 실린 공항 카트를 밀고 있는 오늘만큼은, 분명히 엄마보다는 여행자에 가까웠다.

아이의 물티슈와 비상간식, 해열제와 감기약이 들어 있는 가방이 내 어깨를 누르기보다는, 이상하게도 나를 앞으로 밀어 올리고 있었다.



‘그래, 잘할 수 있을 거야.’


불안과 설렘이 섞인 그 문장을 속으로 다시 한번 삼키며, 모녀의 첫 한 달 살기를 향한 긴 하루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