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육휴 생활 #4

세부 한 달 살기 1일 차 ‘우여곡절‘

by 브리너즈




2026년 1월 3일, 이곳 시간으로 새벽 1시 25분.

우리는 모녀는 필리핀 세부에 도착했다.


추운 겨울을 떠나 필리핀에 도착한 공기는 따뜻하다 못해 축축했다. 후덥지근한 온도가 피부 위에 내려앉았고, 저녁 비행기로 출발한 탓에 기내에서 곤히 잠들어 있던 딸은 여전히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얼굴이었다.


입국심사 줄에 서자 말로만 듣던 어학원 성수기의 풍경이 단번에 펼쳐졌다. 세부로 향하는 관광객이 줄어 항공 노선도 축소된다고 들었지만, 비행기는 이미 만석이었고 입국장은 어학연수 온 가족들과 관광객들로 인산인해였다. 입국심사를 기다리며 남편이 일러준 대로 이심(e-sim)을 차례로 설치하고, 잘 도착했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한국처럼 모든 것이 빠르게 흘러가지 않는 나라. 이곳에서는 느긋함의 미학을 배워야지 다짐했지만, 현실은 그 반대였다. 기다림은 길었고, 더위는 만만치 않았다.


무엇보다 아이의 컨디션이 가장 마음에 걸렸다. 잘 먹고 잘 자야 금세 회복될 텐데, 열은 오르락 내리락했고 엄마의 마음만 애간장을 태웠다.


한 시간을 훌쩍 넘긴 끝에 드디어 우리 차례가 되었다.

아이와 여권을 내미는 순간, 심사원은 친절하지도 불친절하지도 않은 표정으로 소리치듯 물었다.


“아빠 어디 갔어?”


순간, 깜짝 놀라 굳어버렸다가 이내 웃음이 새어 나왔다. 영어가 아닌 어설픈 한국말로 물어봤으니

그래도 ‘친절한 편’이라 스스로 결론 내렸다.

미리 준비해 둔 영문 가족관계증명서를 재빠르게 내밀었고 잠시 훑어본 심사관은 고개를 끄덕이며 도장을 찍었다.


‘딸과 함께 무사히 입국 완료.’


여권에 찍힌 필리핀 입국 도장을 보니 긴장으로 굳어 있던 어깨가 스르르 풀렸다. 마치 처음 넘어야 할 큰 산 하나를 막 지나온 기분이었다. 대부분의 가족연수는 어학원에서는 공항 픽드롭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나는 첫날만큼은 아이와 여유롭게 시작하고 싶었다. 그래서 직접 숙소를 예약하고 따로 체크인하기로 했었기에 짐만 찾고 ATM기에서 돈만 뽑아 그랩을 타고 숙소로 가면 모든 걱정이 끝날 거라 믿었다.


물론, 그때는 몰랐다.

아이가 열로 뒤척이고 마음이 조급해질 줄은.

모든 계획은 늘 예상 밖의 순간에 흔들린다는 걸

이곳에서 처음으로 배웠다.


긴 입국심사를 마치고 나왔을 때, 도합 50kg이 넘는 캐리어 세 개가 공항 한편에 옹기종기 모여, 마치 부모를 잃은 아이들처럼 서로 기대어 서 있었다. 아이에게는 기내용 캐리어 하나를 맡기고 나는 28인치 캐리어 두 개를 끌고 ATM기로 향했다.


문제의 시작은 그때부터였다.

어느 한 곳 잘못된 기계 하나가, 낯선 여행자의 새벽을 흔들었다. ATM 기기 앞에는 돈을 뽑으려는 사람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지만 기계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이미 시간은 필리핀 기준 새벽 2시 40분을 훌쩍 넘어 있었다. 눅눅한 공기 속에서 아이의 얼굴엔 피로가 짙게 내려앉아 보였고 더 이상 이대로 머물 수 없다는 생각에 출금은 깔끔히 포기하였다.


다른 나라에서는 한 번도 문제없던 그랩. 이번에도 쉽게 될 거라 믿었다. 하지만 이상한 예감은 빗나가지 않았다. 4인승을 불러도, 6인승을 불러도 화면엔 “이용 가능한 차량이 없습니다.”라는 문구만 반복됐다. 이미 그랩을 타고 공항을 빠져나가는 한국인 관광객들을 보며 딸은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왜 우리 차만 안 와?”

목이 메었다. 그 말에 담긴 지친 마음과 작은 절망이, 나를 더 깊은 당혹감 속으로 끌어내렸다. 더위와 당황스러움이 한데 뒤섞여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그리고 낯선 공항 한가운데, 아이와 단둘이 남겨졌다는 사실이 머리를 스쳤다.


그 순간, 설명할 수 없는 두려움과 후회가 몰려왔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영어를 배웠건만, 왜 이런 순간엔 입이 떨어지지 않을까. 문법 대신 용기가 필요하다는 걸.

그제야 유독 비싸다고 들었던 옐로 택시와 화이트 택시 줄이 긴 이유가 도무지 잡히지 않는 그랩 때문임을 알게 되었다, 돈이 얼마나 들던 아이를 위해 그냥 타야겠다 생각한 택시들마저 이상하게 증기처럼 사라져 버린 듯 보이지 않았다.


아이의 울음은 점점 커졌고, 나 역시 주저앉아 같이 울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붙잡고 있었다.시작도 전에 왜 이런 시련을 주느냐고 따져 묻고 싶었지만, 그 물음은 결국 타인이 아닌 나 자신에게 향했다.


새벽의 공항, 무너질 듯 버티던 순간— 극적으로 4인승 그랩이 잡혔다. 창문 너머로 기사님이 내리는 모습을 보자마자,


“땡큐, 땡큐…”


라는 말이 입 밖으로 새어 나왔다.

낯선 땅에서 처음 만난 은인, 그 이름 모를 기사에게 마음 깊이 감사했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막탄 뉴타운의 숙소. 아이는 옷만 갈아입고 침대에 쓰러지듯 잠들었다. 나 역시 잠 깐 지만 깊은 단잠에 빠져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두꺼운 커튼을 걷자 아침 햇볕이 한가득 들어왔다. 그리고 창밖으로 펼쳐진 풍경에 나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짙푸른 하늘과 바다, 야자수 잎이 찰랑이는 세부의 아침. 그제야 실감이 났다.

‘아, 정말 도착했구나. 우리가 한 달을 살 그곳에.’

피곤에 지쳐 있던 아이도 창밖 풍경을 보자 금세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긴장했던 새벽의 일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웃음이 다시 피어났다.


첫 끼는 필리핀의 국민 프랜차이즈, 치밥의 원조라 불리는 ‘졸리비’로 정했다.

아이는 스파게티와 햄버거, 감자튀김으로 메뉴를 채웠고 나는 치킨과 밥을 주문했다. 따뜻한 밥과 치킨을 함께 먹으니 낯선 풍경 속에서 익숙한 한국의 맛이 겹쳐졌다. 신기하게도 기본 음료는 탄산이 아닌 아이스티였다. 달콤하고 시원한 아이스티 한 모금이 목을 타고 내려가자 새벽의 피로가 조금은 녹아내리는 듯했다.



식사를 마치자 아프고 피곤해 날카로워졌던 딸의 얼굴이 눈에 띄게 부드러워졌다.

밥 한 끼의 힘이란, 참 대단하다 싶었다.


다음 일정은 작년 다낭에서 딸이 그렇게 좋아했던 키즈 네일. 다행히 숙소에서 멀지 않았고, 짐 보관은 물론 일정 금액 이상 결제 시 드롭 서비스도 가능하다고 했다.


딸이 있어 좋은 점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수만 가지의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이런 순간이다. 나란히 앉아 네일과 페디를 받으며 서로에게 “예쁘다”를 속삭이는 시간.

그 짧은 대화 속에서 우리는 친구가 되고, 여행의 동반자가 된다. 한국보다 훨씬 저렴한 금액이지만, 손끝에 닿는 정성과 세밀함은 어느 곳에도 뒤지지 않았다.

아이의 작은 발가락 위에 새겨진 라부부 캐릭터를 보며 웃음이 새어 나왔다. 단순한 미용이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의 작은 예술을 보는 느낌이었다.



손끝과 발끝을 꾸미고 나니 마음까지 한결 가벼워졌다. 거울 속 우리는 완벽한 여행자 모드였다.



드롭 서비스를 통해 향한 곳은 세부 막탄, 마리바고에 위치한 어학원.


사진으로만 보던 울창한 나무들이 눈앞에 펼쳐지고,

수업이 끝나면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들 수 있는 푸른 수영장, 자연과 어우러진 숙소가 따스하게 맞이해 주었다. 오늘 새벽, 지옥문 앞까지 다녀온 기분이었다면 지금은 오래 그리던 고향집에 돌아온 듯했다.


불안이 잦아들고, 공기가 달라졌다.

저녁은 편하게 기숙사에서 시켜 먹기로 했다. 메뉴를 고르던 중, 딸이 또다시 외쳤다.


“졸리비!”


마음에 들면 한 가지를 끝까지 파고드는 그 집념.

이곳에서도 졸리비가 마음에 들었구나.

한 달 동안 우리는 몇 번의 졸리비를 먹게 될까.

그런 상상을 하며 미소 짓는다.

그렇게 세부에서의 첫날은

낯섦과 두려움, 웃음과 위로가 뒤섞인 채

졸리비의 달콤한 소스로 천천히 마무리되었다.



작가의 이전글슬기로운 육휴 생활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