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 살기를 계획하다
올해는 결혼 10주년이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신혼여행지가 떠올랐다. 멕시코 칸쿤. 언젠가는 아이와 함께 다시 가보고 싶다고, 막연히 마음속에 넣어두었던 곳이다.
천혜의 자연을 품은 세노떼, 말 그대로 천연 워터파크였던 셀하. 한낮의 카리브해도 충분히 아름다웠지만 석양이 내려앉은 해변에서 마시던 깔루아 밀크의 맛은 지금까지도 선명하다. 10년이 다 되어가는 기억인데도 그 장면만큼은 바래지지 않았다.
물론 직항이 없어 미국을 경유해야 한다는 점은 여전히 부담이지만, 이제 초등학교 3학년이 되는 딸과의 긴 비행이 아주 큰 문제가 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서 ‘이번엔 아이와 함께’라는 전제를 달고, 작년 초부터 칸쿤 여행 경비를 하나둘 찾아보기 시작했다.
넉넉하게 잡아도 일주일이면 천만 원 안쪽에서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예상보다 훨씬 냉정했다. 2인 기준으로 이미 천만 원을 훌쩍 넘는 가격. 아이까지 동반한다면 1,500만 원은 우습게 깨질 기세였다.
일주일에 1,500만 원.
말로 하면 가볍지만 고작 며칠 쉬었다 오는 여행에 그만한 비용을 쓰는 게 과연 맞을까 싶어졌다. 같은 돈이라면 다른 선택지가 있지 않을까.
그렇게 ‘칸쿤 여행’이라는 목표는 잠시 옆으로 밀려났고, 대신 새로운 질문이 생겼다.
차라리 한 달을 살아보는 건 어떨까.
그 질문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나를 이끌기 시작했다.
나에게는 그동안 한 번도 사용하지 못했던 육아휴직이 남아 있었다.
아이를 낳고 언젠가는 써야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써야지 하며 마음속에만 접어두었던 휴직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늘 계산기를 먼저 꺼내게 했다. 신축 아파트 입주와 함께 시작된 대출 상환. 월 100만 원 남짓 들어오는 육아휴직 급여로는 빠듯하다 못해 아슬아슬할 것 같아, 결국 휴직은 또다시 미뤄졌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초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 그러니까 2026년 1월부터 6개월만이라도 써보자고 마음먹게 됐다.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라면.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을 이 육아휴직을 단순한 ‘쉼’이 아니라 결혼 10주년을 기념하는 여행으로, 그리고 내 인생에 두 번 다시 없을 ‘한 달 살기’로 만들어보기로 했다. 그렇게 2025년 초부터 ‘어디에서 살 것인가’를 두고 수많은 정보 속을 헤매며 살았다.
국내 후보지로는 제주도가 가장 먼저 떠올랐고, 국외로는 발리, 치앙마이, 베트남이 리스트에 올랐다. 조건은 명확했다.
2026년 1월에 떠나야 하니 날씨는 따뜻할 것, 음식이 입에 맞을 것, 그리고 1,000만 원이라는 예산 안에서 한 달을 살아갈 수 있을 만큼 물가가 저렴할 것.
2025년 2월에 다녀온 베트남 다낭은 거의 모든 조건에 부합했지만, 당시에도 물놀이가 춥게 느껴질 만큼의 날씨가 걸렸다. 물놀이를 무엇보다 좋아하는 아이의 성향을 생각하면 베트남은 아쉽게도 탈락이었다.
치앙마이는 건기에 물가가 저렴하고 한국인들에게 한 달 살기 성지로 불릴 만큼 인기가 많다고 했지만, 바다와 먼 내륙 지역이라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아이가 조금만 더 어렸더라면 망설임 없이 치앙마이 티켓을 끊었을지도 모른다.
‘신들의 천국’이라 불리는 발리는 해양 액티비티부터 예술과 힐링이 있는 내륙 지역까지, 모든 것이 완벽해 보였다. 짧은 기간의 영어 스쿨까지 있어 우리 가족에게 딱 맞는 여행지라 생각했다. 하지만 1월이 우기라는 점, 그리고 아이와 함께하는 가족에게는 무엇보다 무서웠던 ‘발리 밸리’—일명 발리 장염—앞에서 결국 발리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결정타는 남편의 급작스러운 국외 연수 일정이었다.
아이와 나는 꼬박 4주를 함께 살아야 했고, 남편이 동행할 수 있는 시간은 고작 2주뿐이었다.
어디를 가든, 타국에서 아이를 하루 종일 혼자 케어할 자신도 없었고, 그렇다고 한 달 내내 그냥 놀리기에는 애매했다. 그때 떠오른 대안이 영어를 배우면서, 해양 액티비티도 가능한 곳이었다.
그렇게 세부가 후보에 올랐다.
필리핀은 막연히 ‘위험한 나라’라는 인식 때문에 애초에 고려조차 하지 않았던 곳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나는 세부의 한 어학원에 등록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