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란 계획대로 살 수 없다.

by 브리너즈




자연분만이 제왕절개보다 나은 이유는 수십 가지라고들 한다.


그중 가장 와닿았던 말은
"자연분만의 고통은 일시불이고, 제왕절개의 고통은 할부"라는 이야기였다.


옆방의 자연분만 산모는 걸어서 휠체어로 이동하고 바로 미역국도 먹을 수 있다는데 반면에 나는 스트레쳐 카에 누워 아랫배에 묵직한 모래주머니를 올리고 복대까지 두른 상태로 이동했다.

물론 밥도 먹을 수 없었고 소변줄 때문에 당장 거동도 어려웠다. 소변줄을 빼기 위해 물을 많이 마시라는 의료진의 말은 이해가 됐지만, 누운 채로 물을 마시는 일은 여간 쉬운 게 아니었다.

소변줄을 빼고 난 다음 날에는 많이 걸어야 회복이 빠르다는 말을 들었다. 하반신 마취의 여파로 다리는 코끼리처럼 부어 감각이 무뎌졌고, 신발은 신는 것이 아니라 발 위에 얹어놓은 상태 같았다. 그 상태로 무통 주사가 달린 폴대까지 끌며 이동해야 했다.


그럼에도 초인적인 힘으로 폴대를 신나게 끌고 내려간 곳은 오전 신생아실 면회 시간이었다.
이런 것이 엄마의 힘인가 싶었다.

어제는 분만의 고통으로 사리 분별이 되지 않아 자색고구마인지 개불인지 모를 아이를 보고 흠칫 놀랐다면 오늘은 부기가 쏙 빠져 예쁘게 자고 있는 아이를 20분 내내 제왕절개의 고통 따위도 잊은 채 하염없이 바라보기만 해도 좋았다.


5박 6일의 입원을 마치고 병원 건물 안에 있는 조리원으로 이동했다.
2주에 300만 원가량의 비용을 지불한 만큼 “제대로 누리고 오자”고 다짐했지만, 초보 엄마였던 나에게 조리원은 천국이 아니라 ‘조리원 군대’에 가까웠다.


선배 엄마들과 신입 엄마들 사이의 미묘한 분위기,
정해진 시간에 먹는 식사,
수유 콜이 오면 나가서 젖을 물리고
틈틈이 모빌 만들기나 효과적인 모유 수유 같은 프로그램을 듣고,
부기와 모유 수유에 도움이 된다는 산후 마사지도 받아야 했다.

젖이 돌기 시작하면 유축기도 쉬지 않고 돌려야 했다.

하루 종일 유축기를 돌리다 보면 마치 젖 공장에 취업한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였다.


그 와중에 자연분만으로 회음부 열상이 심해 조리원 퇴소할 때까지 도넛 방석을 사용하던 조리원 동기를 보며 왜인지 모를 제왕절개의 우월감을 느끼기도 하였다.

"자연 분만의 고통은 일시불이고, 제왕절개의 고통은 할부"라는 이야기가 조리원 생활을 하며 꼭 맞는 말일까 하는 생각도 하며 말이다.


아무쪼록 조리원의 시간은 매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하루가 돌아갔다.


둘째나 셋째를 출산한 엄마들은 수유 콜을 받지 않고 유축한 모유만 주기도 한다지만 파이팅 넘치는 초보 엄마였던 나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잘 자야 모유도 잘 돈다는 말에 야간 유축은 스킵했지만 이마저도 나에게는 죄책감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특히 모유가 잘 돌지 않았던 나는 공용 수유실에서 유축기로 많은 양의 모유를 담아내는 엄마들을 보며
동경의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자연분만은 실패했지만 모유 수유만큼은 꼭 해내고 싶다고 마음먹었는데, 그마저도 계획대로 되지 않는 현실 앞에서 나는 자주 좌절했고 우울해졌다.


출산 후 호르몬이라는 놈에게 잠식되어 가는 줄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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