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을 앞두고 태교를 제대로 하진 못했지만 자연분만과 모유수유만큼은 꼭 해내고 싶었다.
라마즈 호흡법을 열심히 연습했고 부부 출산 교실에 빠지지 않고 참석해 분만 시 힘주기 방법까지 연습했다. 준비만 놓고 보면 나름 성실한 임산부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인생은 늘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법.
임신 막달에 아기가 크다는 말을 들었다. 진통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는 분만 과정에서 엄마의 고통이 더 클 수 있다는 담당 주치의의 말에 날짜를 정해 분만 촉진제를 사용하는 유도분만을 선택했다. 유도분만이란 진통이 없는 임신부에게 인공적으로 진통을 유발해 태아를 분만하는 방법이다.
누워 자는 것조차 고통스러웠던 나는, 그저 ‘이제는 빨리 낳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아침 해가 어수룩하게 떠오르던 11월의 어느 추운 날, 나는 출산의 3대 굴욕이라 불리는 제모와 관장, 내진을 차례로 거친 뒤 분만실 침대에 누워 있었다. 분만 촉진제를 맞고 진통이 오기만을 하염없이 기다리면서.
아직은 엄마 뱃속이 더 좋았던 걸까. 자궁 수축 그래프는 최고 수치를 찍는데도 자궁문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결국 그렇게 첫날의 유도분만은 실패로 끝이 났다.
출산이란 마음만 먹으면 뚝딱 끝나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초보 아빠는 유도분만 2일 차에 연차를 쓰지 못하고 출근해야 했다. 잦은 내진 덕분이었는지 밤사이 양수가 터졌고, 다음 날은 분만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 보였다. 남편은 일을 일찍 마치고 오후에는 오겠다고 했지만 분만의 흐름이 전날과 전혀 다를 거라고 누가 예상했을까.
오전부터 촉진제 효과를 잘 받은 건지 자궁문은 3cm까지 열렸고, 진통도 5분 간격으로 규칙적으로 찾아왔다.
출산을 한결 수월하게 해 준다는 무통 주사도 맞을 수 있다기에 ‘이제 나도 천국을 맛보는구나’ 싶었다.
하지만 왠걸. 맛본다는 게 천국의 맛이 아니라 지옥의 맛 일 줄은.
무통 주사는 수액처럼 계속 맞는 것이 아니라, 정말 아플 때만 한 번씩 약물을 투여하는 방식이었고 효과는 고작 한 시간 남짓이었다. 그 한 시간이 지나가자 나는 다시 고통의 한가운데로 밀려 들어갔다. 진통은 예고 없이 찾아오는 게 아니라, 아주 천천히 다가왔다. ‘이제 오겠구나’ 하는 예감이 들면 어김없이 허리부터 조여왔다.
진통 주기는 2~3분으로 줄었고 숨을 고를 틈도 없이 다음 통증이 이어졌다. 나는 특이하게도 배가 아니라 허리로 진통을 겪는 사람이었다. 허리 한가운데를 축으로 삼아 통증이 몸 전체로 퍼져 나갔다. 허리 진통이 올 때마다 마치 10톤 트럭이 그대로 내 몸을 밟고 지나가는 것 같았다. 더 무서운 건, 트럭이 지나간 뒤였다. 잠깐의 소강상태 동안 나는 숨을 몰아쉬며 ‘이제 끝인가’ 기대했지만 그 시간은 다음 트럭이 다시 돌아오기 전의 준비 시간일 뿐이었다.
정말 아플 때는 생각이 끊겼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온몸이 한순간에 굳어버리는 느낌.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알 수 없었다. 시계는 있었지만 숫자는 더 이상 의미가 없었다. 그저 ‘이번 진통을 버티면 다음이 온다’는 사실만 또렷했다.
남편이 퇴근하기 전까지 홀로 진통을 견디던 나는 결국 처음으로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욕을 했다.
“진짜 죽겠으니까 당장 와서 제발 수술 좀 시켜줘.”
진통 수치는 최고치를 경신했지만 자궁문은 끝내 더 열리지 않았고, 아이의 심박수마저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제야 의료진은 응급 제왕절개를 결정했다.
꼬박 1박 2일. 나는 아무런 보상도 없이 생진통을 견뎌낸 셈이었다. 수술대에 올라서야 알게 된 사실은 처음부터 무통 주사 시 놓았던 척추 마취가 잘못되었단다. 그렇게 척추에 바늘을 두 번이나 꽂아야 했다는 것.
어쩐지 그렇게 아팠다. 어쩐지 라마즈 호흡 같은 건 할 수조차 없었다.
수술실의 밝은 조명 아래 누워 있으면서 나는 더 이상 ‘자연분만’도 ‘계획’도 떠올리지 않았다.
고통과 허탈함이 한데 섞여 수술대 위에서 나는 서럽게 울고 있었다.
아무것도 해낸 것 같지 않았다. 자연분만을 하겠다고, 끝까지 버텨보겠다고 그렇게 마음먹었던 시간들이 수술대 위에서 한꺼번에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었다. 1박 2일 동안의 진통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말끔히 정리되어 버렸다.
수술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의사의 말이 들렸다.
“오후 4시 25분, 공주님 나왔어요.”
그 말은 생각보다 담담하게 들렸다. 영화에서 보던 장면처럼 극적인 순간은 아니었다. 눈물이 왈칵 쏟아지지도, 가슴이 벅차오르지도 않았다. 그저 ‘아, 끝났구나’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곧이어 아기의 울음소리가 수술실에 울려 퍼졌다.
분명 내가 기다리던 소리였는데 그 소리는 기쁨보다는 안도에 가까웠다. 이 지독한 시간이 마침내 끝났다는 안도. 수술포에 쌓인 아기를 잠깐 보여주셨다. 파랗게 질린 얼굴, 쭈글쭈글한 피부, 생각보다 작고 낯선 존재.
감동적인 출산 장면처럼 태명을 다정하게 부르며 '엄마야.'라는 말이 먼저 나와야 하는데 아무 말도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기쁨보다 먼저 찾아온 감정은 뿌듯함도 행복도 아닌 이상할 만큼의 허탈함이었다.
이렇게 끝나는 거였나?
그토록 오래 준비했고, 그토록 아팠고, 그토록 버텼던 출산이 이렇게 조용히, 이렇게 단절된 채 끝나버리다니.
후 처치를 위해 잠깐 재워주신다고 했다.
아주 짧은 단잠이 허락되는 그 순간, 나는 더욱 확고히 결심했는지도 모른다.
'외동 확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