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히 우리 부부는 임신이 어렵지 않았다.
신혼 초, 잠시 주말부부로 지내던 나는 전 직장을 정리하고 남편의 직장이 있는 지방으로 내려가 본격적으로
신혼살림을 시작하기로 했다. 오랜만에 마음의 여유를 찾으며 스트레스 없이 잘 먹고 잘 지낸 덕분일까. 함께한 지 석 달 만에 계획에 없던 아기 천사가 조용히 찾아와 주었다. 원래는 2~3년 정도 신혼을 즐기며 새 직장도 구하고 안정된 일상을 만들어가려 했지만, 예상치 못한 임신 소식은 내 삶의 계획을 완전히 새로 그려야 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래서였을까. 그때의 나는 아이는 노력하지 않아도 원하면 언제든 품을 수 있는 선물이라 믿었다.
그러나 나는 그저 운이 좋았던 사람일 뿐, 주변에 생각보다 난임으로 어려움을 겪는 부부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난임으로 힘들어하는 부부들을 위해 나라에서 시술비와 검사를 포함한 여러 지원이 마련되어 있지만 여전히 회당 수십에서 수백만 원에 이르는 본인 부담금이 남아 있어 경제적인 부담은 결코 가볍지 않다. 또한 배란 주사와 과배란 유도 주사를 맞으면서 한 달에 여러 번 병원을 오가야 하는 육체적, 정신적 소모까지 더해지면, 생명을 창조하는 일은 그 자체로 숭고하고 어려운 일이며 임신이라는 것이 얼마나 큰 용기인지 실감하게 된다.
이렇게 어려운 과정을 거쳐 임신에 성공했다면 이제부터는 이 소중한 아이를 열 달 동안 잘 품어내야 한다.
열 달을 품는 일이 뭐 그리 어렵고 대단하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임신 초기 입덧으로 고생하던 때가 생생하다. 특히 2주 전에 끓여 먹었던 라면 냄새가 문제였다. 환기를 하고 섬유 탈취제를 뿌려도 소용이 없었다. 커튼의 섬유 속에 나노 단위로 스며든 듯한 냄새가 끝내 사라지지 않아 정말 견디기 힘들었다. 나의 오감은 평소보다 몇십 배는 더 예민해져 있었고, 김치 없이는 밥을 먹지 못하던 토종 한국인인 내가 냉장고 문을 열 때마다 풍기는 김치 냄새 때문에 미쳐버릴 것 같았다. 그 냄새가 밴 냉장고를 통째로 갖다 버리고 싶다고 말할 정도였으니까.
그 시절을 떠올리면, 입덧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시간인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놀라운 건 나의 입덧은 심한 편도 아니었다. 세상에는 출산 전날까지 입덧을 겪는 사람도 있고 ‘먹덧’이라 불리는 증상처럼 무언가를 먹지 않으면 하루 종일 울렁거려 일상생활이 어려운 경우도 있다. 먹기만 하면 곧바로 변기를 붙들어야 하는 이른바 ‘토하는 입덧’을 겪는 이들도 있다.
입덧은 아이마다 양상이 다르다. 첫째 때는 아무 증상이 없었더라도, 둘째 임신에서는 출산 직전까지 입덧을 달고 사는 경우도 흔하다. 임신 초기에는 누가 잠고문을 시킨 것도 아닌데 밤새 한숨도 못 잔 사람처럼 잠이 끝없이 쏟아지기도 한다.
임신 기간 동안 그나마 좋았던 것을 꼽자면 풍만해진 가슴을 보며 “평생 이렇게만 살 수 있다면 좋겠다”라고 잠시 생각해 본 것 정도였던 것 같다. 반면 호르몬 변화로 배 한가운데 짙게 자리 잡은 임신선과 까맣게 변한 겨드랑이를 볼 때면, 스스로가 흉측하게 느껴져 마음 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불러오는 배 때문에 허리가 아파도 엎드려 잘 수 없었고 그래서 출산을 하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 중 하나가 엎드려 가만히 누워 있는 것이었다. 임신 막달에는 배 아래쪽으로 피부가 갈라져 마치 지렁이 수십 마리가 기어가는 듯 보여서 서글픈 마음이 들기도 했다.
임신은 고귀하고 아름다운 일이라고 들 말하지만, 솔직히 나에게는 살이 찌고 못생긴 여자 사람으로 변해 가는 버겁고 힘든 시간에 더 가까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잊을 수 없는 순간이 있느냐 묻는다면 임신 18주에 처음 느꼈던 태동을 이야기하고 싶다.
임신 경험이 있는 여성이라면 아마 그 감각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물방울이 톡 터지듯 아랫배를 콕콕 치던 감촉, 작지만 분명한 아이의 발길질. 그렇게 작은 몸으로 자신의 존재를 또렷하게 알리는 그 순간은, 말로 다 담을 수 없을 만큼 경이로운 경험이었다.
그렇게 나는 처음 느껴보는 수많은 경험들을 통해, 한 여자로서가 아니라 엄마가 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앞으로 더 힘든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 줄은 미처 알지 못한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