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전 육아

by 브리너즈






병원에서 5박 6일, 조리원에서 2주.
그렇게 3주 만에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었다.

분명 3주 전에는 둘이서 병원을 나섰는데, 이제는 셋이 되어 집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이 묘하게 낯설었다.


결혼 후 함께 키우기 시작한 반려견 옹심이도 3주 만에 만나는 엄마를 무척이나 반겼다. 꼬리를 흔들며 반가워하는 모습을 보니 그제야 정말 집에 돌아왔다는 실감이 났다.


보통 조리원을 퇴소하면 짧게는 2주, 길게는 4주 정도 산후 도우미의 도움을 받거나 친정이나 시댁에서 산후조리를 돕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 집은 상황이 달랐다. 친정까지는 차로 6시간, 시댁까지도 3시간 거리였다. 게다가 양가 부모님 모두 아직 일을 하고 계셔서 도움을 받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미리 반려견이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2주 일정으로 산후 도우미를 신청해 두었다. 하지만 산후조리를 받기로 한 첫날, 도우미 분은 집에 들어오자마자 반려견을 보더니 알레르기가 있다며 일을 할 수 없겠다고 했다. 업체에 항의도 해 보았지만 그 달에 출산한 산모가 많아 대체 인력이 없다는 답만 돌아왔다.

그렇게 나는 예고도 없이 신생아 돌봄에 바로 투입되었다.


조리원이 천국이었다는 사실은, 집에 돌아온 뒤에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혼합 수유를 하다가 모유가 충분히 돌면 완전 모유 수유로 넘어가려 했다. 하지만 현실은 생각과 달랐다. 부족한 모유를 대신해 분유를 먹일 때마다 젖병 설거지가 쌓였고, 유축과 수유를 반복하는 일도 쉽지 않았다.

아이가 잠든 사이에 부족했던 잠을 조금이라도 보충해야 했지만 눈앞에 쌓인 설거지와 빨래를 보면 차마 누워 있을 수가 없었다. 누워 있는 것조차 죄책감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그러다 보니 스트레스는 쌓여 갔고, 스트레스가 모유에도 영향을 준다는 말을 떠올리게 됐다. 결국 나는 생각을 바꾸었다. 영양가 없는 스트레스 가득한 모유를 먹이느니 차라리 좋은 분유를 먹이자고.

자연분만 실패에 이어 두 번째 수유 계획도 그렇게 실패로 돌아갔다.

그래도 분유만큼은 좋은 것을 먹이고 싶었다. 꼼꼼하게 비교하고 선택한 분유였다. 하지만 아이는 분수토를 하기도 했고, 배앓이를 하기도 했으며, 황금변을 보지 못하기도 했다.


초보 엄마는 그때부터 정보의 홍수 속을 헤집고 다녀야 했다. 수많은 육아 정보 사이에서 우리 아이에게 맞는 답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나는 분유와 젖병, 육아용품을 찾아 떠도는 육아 아이템 유목민이 되어갔다.


이렇다 보니 부족한 잠은 결국 연쇄작용을 일으켰다. 예민함으로 이어졌고 식사 패턴도 무너졌다.

그리고 그 모든 감정은 가장 가까이에 있는 남편에게 향했다.

'가난이 대문으로 들어오면 사랑은 창문으로 나간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육아가 시작되자 사랑이란 건 어디론가 나갈 새도 없이 들숨에 한번, 날숨에 한번, 재빠르게 증발해 버리는 것 같았다.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에게 고생했다는 말 대신

'저 사람은 외형도, 사회생활도 변한 것이 하나 없는데 왜 나만 이렇게 변해야 하지?'

'왜 나는 집에서 육아만 해야 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에 맞춰 식사를 한다는 건 불가능했고 씻는 일조차 사치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남편은 제시간에 씻고, 제시간에 밥을 먹고, 다음 날 출근을 위해 잠을 잔다. 나는 또 그런 남편의 수면 시간까지 보장해 주고 있었다.

불만은 그렇게 조금씩 쌓여 갔다.


남편도 나름대로는 도와주려 했다. 하지만 젖병을 삶는 일부터 아이를 씻기는 일까지, 하나하나 물어볼 때마다 나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나도 엄마가 처음이야. 태어나면서부터 엄마로 태어난 게 아니라고.”

그 말속에는 서툰 남편을 향한 짜증과, 모든 것이 낯선 나 자신의 막막함이 함께 담겨 있었다.


그러다 보니 남편에 대한 불만은 점점 엉뚱한 곳으로 향하기도 했다.

종교도 없으면서 하나님을 원망하기까지 했다.

애초에 왜 이브를 흙으로 빚으셔서 선악과를 따먹게 했고, 그 벌을 지금의 내가 받아야 하는 건지.

그때의 초보 엄마는 그런 생각까지 하며 세상을 원망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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