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와 두 번째 산. 그 사이 계곡 어디 쯤에서
나는 국제금융기구의 환경 컨설턴트로 약 3년 넘는 기간동안 일했다.
이렇게 얘기하면 보통 한국인 분들한테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
왜 금융기구(은행)에서 환경 일을 하세요? NGO같은 건가요?
내가 일한 회사는 2차 세계대전 이후에 세워진 금융기구로 전세계 공동번영과 빈곤퇴치라는 목적아래 설립된 국제기구다. 우리의 클라이언트는 개도국 정부들이고 이들에게 저리로 돈을 빌려주고 올바른 프로젝트, 정책과 법을 제정하고 경제성장을 돕는 일을 하는 조직이다. 그 중에서도 나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중심으로 환경 섹터에서 일을 했고 해당 지역에 있는 개도국 정부들(필리핀, 캄보디아, 미얀마 등)이 지속가능한 환경을 도모하면서 동시에 경제성장을 할수 있도록 현 정책과 시스템을 분석하고 올바른 환경 정책을 수립하도록 돕는 일을 했다.
특히, 최근 전세계 폐기물(쓰레기)/플라스틱 문제가 불거짐에 따라 나 역시 주로 회사에서 이와 관련된 업무를 지속적으로 맡게되었고, 폐기물 중에서도 플라스틱 관련 프로젝트 업무를 맡게됨에 따라 좀더 테크니컬한 지식을 쌓고 싶은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덜컥 작년부터 Marine Plastic Abatement라는 전공으로 인생 두 번째 석사학위를 시작했고 코로나가 조금 잠잠해질 때 쯤인 올해 2월 학업을 마치기 위해 태국으로 오게됐다. 앞으로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길이 펼쳐질거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채로.
여기서부터 나의 어둠의 계곡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사실 나는 운이 좋게 일본정부 100% 장학생으로 들어왔다. 현재 전세계 플라스틱 발생량을 지역별로 나눠보면 경제성장 속도가 빠른 emerging countries가 몰려있다 ASEAN(아세안)지역에 몰려있다.
- 나중에 기회가 되면 다루겠지만 폐기물(쓰레기는)의 종류는 국가의 경제성장과 관련이 있고 즉, 플라스틱 쓰레기 역시 경제성장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 여기와서 피부로 체감하게 된 것인데 폐기물/플라스틱 관련 환경분야에서 일본과 독일의 자본이 태국에 정말 많이 유입되고 있음을 많이 느낀다
일본정부는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아세안 지역 내 플라스틱 전문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내가 다니는 학교에 장학금 및 교육프로그램을 만들었고 나는 아세안 국가 출신은 아니지만 운좋게 교육의 기회를 얻었다. 이 말은 즉, 함께 공부한 내 동기들이 대부분 아세안 국가 출신 친구들이라는 말이다.
플라스틱도 플라스틱이지만 나는 이것이 개도국의 현실에 대해 배울 수 있는 인생의 기회라고 생각했고 방콕 어딘가에 따로 집을 구하지 않고 이 친구들과 함께 살아보고 싶어서 기숙사로 들어갔다.
내 동기들은 나 포함 약 30명이 좀 안되는 인원이었고 국적은 태국, 인도, 파키스탄, 부탄, 방글라데시, 인도네시아, 미얀마, 아프가니스탄, 브라질, 짐바브웨, 잠비아로 그리고 한국(나)로 구성되었다.
우리는 함께 밥을 먹고, 공부했고, 과제를 하고, 놀러가고, 일요일 아침에는 인도 친구 리드아래 함께 요가를 하고, 인도 음식에 눈을 떴다(도서관에서 제일 가까운 식당이 인도음식점이 몰려있는 아케이드였던 바람에 기숙사 사는 동안 나는 태국음식보다 인도음식을 더 많이 먹었다 ㅎㅎ). 아침 7시 요가가 끝나면 근처 카페에 가서 모닝커피를 하며 수다를 떠는게 우리의 자연스러운 루틴이었는데 나는 이게 더 재밌었다.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이 모였기 때문에 정치, 종교, 젠더 등 우리의 대화주제는 정말 다양했지만 이 친구들과 얘기하면서 가장 재밌었던건 '그냥 사는 얘기'를 할 때였다. 나는 매일이 새로웠다. 미디어가 아니라 내 친구들의 일상, 생각, 행동을 통해서 그리고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게 됐다.
나는 태국에 있지만 아시아 전체를 보게됐다. 평생 돈주고 살 수 없는 귀한 경험이 맞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내게 들이닥치는 모든 자극들이 너무 버거워서 한동안 헤어나올 수 없는 어둠의 계곡을 허우적 거리게 됐다.
여기 쓰게될 글들은 그 계곡에 대하여, 그리고 그 곳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나의 발버둥에 대한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