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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는지 Aug 18. 2022

결국 나를 구할 수 있는 건 나야

각자가 만들어낸 두려움에 대하여 

"너희들 인생에서 가장 큰 두려움은 뭐야?"


어느날 거실에서 스페인친구 A가 우리들에게 질문했다. A는 디지털 애니메이터(digital animator)로 컴퓨터 그래픽으로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작가다. 최근 A는 fear(두려움)을 형상화하여 그림을 그리고 있었고 이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하우스메이트들에게 각자의 두려움에 대해서 질문하기 시작했다. 중국인 친구 E는 본인이 남들에게 보여주는 자신의 모습말고 그 이면의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실망할까봐 두렵다고 말했다. 싱가폴 친구 N은 친구들이 시간이 지나 본인과 멀어지는게 두렵다고 했다. 모두 관계에 대한 이야기였다. 나는 그 자리에서 바로 답하지 않고 밥을 먹으면서 조용히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내가 가진 두려움에 대해 곰곰히 생각했다. 


다음날 저녁, A와 나 그리고 캐나다친구 Ab, 터키친구 B는 집 근처 비건 레스토랑에 밥을 먹으러 갔다. 우리는 각자 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캐나다친구 Ab는 대학때 환경공학을 전공했는데 그 뒤에 다시 건축학을 공부했다. 이 친구는 어렸을 때 부터 세상에 좋은 일을 기여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건축가가 된 그녀는 요즘 친환경 건축물을 세우는 일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그녀와 나는 이전에 빌딩을 세우는 것이 미치는 환경적 영향이나 건축폐기물에 대해서 이야기 나눴었다. 재밌었던건 그녀가 단순히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빌딩건축만 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오염으로 인해 점점 터전을 잃어가고 있는 생물들을 위해서 강 하류나 상류에 해양생물들을 위한 서식지를 만드는 일도 기획하고 있다는 거다. 아마 환경공학과 건축학을 믹스해서 전공한 친구이기 때문에 가능한 고민이지 않을까 싶다. 


알아두면 쓸데있는 환경 이야기: 오늘날 폐기물 문제는 도시발전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건축물을 짓고 허무는데 발생하는 건축폐기물이 차지하는 도시에서 발생하는 전체 폐기물 양 중 차지하는 비율이 상당히 높기 때문이다. 


환경공학을 전공하고 뒤이어 건축학을 공부한 친구의 커리어가 신기했다. 어쩌다 그녀가 이런 길을 선택했는지 이야기 나누다가 우리는 각 자 나라의 교육시스템에 대해 이야기 하게 됐다. 캐나다의 경우 10대 때 직업탐색의 기회가 많아서 어렸을 때  대학에서 어떤 전공을 택하고 본인이 어떤 직업을 가질지에 대해 고민할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들이 많다고 한다. 스페인 친구의 이야기가 의외였는데 스페인 역시 한국과 비슷하게 10대때 모두 우리나라 수능처럼 대학에 진학하기 위한 시험에 몰두하느라 본인이 누구인지 알아가고 고민하는 시간이 부족하다고 했다. 나는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수능에만 몰두하느라 성인이 되고 나면 그제서야 본인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고 뒤늦은 사춘기를 겪는다고 말했더니 스페인 친구도 본인들도 그렇다고 공감하며 덧붙여 말했다. 



"내가 독일에 잠깐 있을 때 알게 된 사실인데 얘네는 16살 때인가? 그 때 본인이 학업을 계속할지 아니면 직업의 세계로 뛰어들지 결정할 수 있어. 10대때 본인이 무엇에 관심이 있고 재능이 있는지 알 수 있는 경험을 할 수 있는거지. 물론 그렇게 결정한다고 해서 영영 다른 길로 못 돌아가는건 아니야. 본인이 한 선택이 맞지 않으면 언제든 공부나 일로 방향을 다시 전환시킬 수 있어."



그러자 터키친구 B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미술선생님이었던 B는 터키의 10대 청소년들이 점점 꿈을 꾸지 않고 살아가는 것에 대해 고민을 했다. 그녀는 청소년부터 여성까지 다양한 사회이슈에 관심이 많고, 특히 터키여성들에게 가해지는 사회적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본인의 아트 스튜디오에서 women's circle이라는 이름의 모임도 만들어 여성들끼리 함께 미술과 요가를 진행하는 당찬 친구였다. B가 이렇게 말했다. 


"나는 항상 내 학생들에게 꿈을 꾸고 살아야 한다고 말했는데 어느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드는거야. 나는 심지어 내 오빠(혹은 남동생) 마저도 바꾸지 못 하는데 어떻게 사회를 바꾸고 구할 수 있겠어? 나는 나밖에 구할 수가 없겠구나 생각했어(i can just save myself). 그냥 나부터 구하고 보자 생각했지." 


이 말을 듣고 우리는 모두 빵 터졌다. 내가 치앙마이로 오기 전 방콕에서 내 학교동기 A에게 했던 말과 정확히 똑같아서 터진 공감의 웃음이었다 (사실 나 자신에게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이기도 했다). 왜 우리는 모두 알고있는 사실인데 이걸 망각하고 사는 걸까? 다른 친구들도 모두 나와 같은 심정으로 웃었을거라 확신한다. 


그러다 우리의 대화주제는 자연스럽게 어제의 주제였던 '두려움'으로 이어졌다. 나는 말했다. 


"나는 내가 지금 어디있는지, 누구인지 모른다는 사실이 가장 큰 두려움이야. 그리고 내게는 지금이 바로 그 시기야." 


그리고 바로 알아챘다. 내가 아주 쓸데없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스스로가 만들어낸 가짜 웅덩이 안에 나를 가두고 길을 잃었다 착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각자의 두려움에 대해서 그리고 가족과 어렸을적 이야기로 흘렀고 그 날의 긴 저녁식사 자리의 대화는 이거였다. 결국 두려움을 만들어내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고, 그 두려움으로 부터 나를 구할 수 있는 것도 나, 내가 구할 수 있는 것도 나밖에 없다는 사실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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