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그 병이랑 싸워보려고 쓰는 글
“방금 케모포트 심었어.
또 한걸음 나아갔다. “
스무 살의 울퉁불퉁한 청춘을 ’ 사관학교‘라는 네모난 틀에 억지로 끼워 맞추기 위해 여념이 없던 시절. 그녀를 처음으로 만났다. 매일 아침 여섯 시 어김없이 울리는 기상 방송을 들으며 감긴 눈을 억지로 벌리고선, 단단한 군화에 아직은 굳은살이 덜 베긴 두 발을 집어넣고 4년의 시간을 단 하루도 성실함이 없이는 보내지 않았다. 어리고 여린 젊음들이 야물어지기 위해 그렇게 우리는 우리는 원하는지 모르겠지만, “이 시대 가장 바람직한 청년상”이 되려고 고군분투했다.
그리고 2007년 네모난 모양으로 엇비슷하게 맞춰진 우리가 철부지 이십 대 청춘을 함께 보냈다. 같은 직업으로 시작한 사회생활은 어느덧 마흔이 넘은 지금, 각기 다른 모양으로 피어난 꽃처럼 커리어의 정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서울을 참 좋아해 서울에 정착하고, 작년 이맘때쯤 남산타워가 보이는 대학에 정교수로 임용이 되었다고 기뻐하던 그녀. 그토록 잘하고 좋아했던, 다른 사람들을 이해시키고 성장시키는 일을 하던 그녀는 그 어느 때보다 반짝반짝 빛이 났다. 오 만광촉 다이아보다 빛나는 성정이 어느 순간에나 빛이 나지 않았겠냐만은, 그럼에도 유난히 더 밝을 때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 그녀가 메시지를 보내왔다.
“나 직장암 이래.”
한 때는 함께 군인이었고, 여전히 간호사이기도 했던 우리기에 저 세 글자가 말할 앞으로의 예후들을 가만히 곱씹었다. 입 밖으로 내어놓지 않은 슬픔들이 소식을 전해 들은 친구들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을 무겁게 가라앉혔다. 부디, 심각한 상황만은 아니기를 기도했던 우리가 맞닥뜨린 현실은 검사를 할수록 심각해져만 갔다.
사관학교 시절 교관님이셨던 선배 장교가 오십이 조금 넘은 나이에 대장암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테니스를 즐겨하며 언뜻 보면 배우 이병헌을 닮은 미소가 돋보였던 분이었다. 마흔이 조금 넘었던 한 장교 동기도, 투병 소식을 전해 들은 후 5개월 즈음 지나 부고가 들려왔다. 한 아이의 아빠로 패러글라이딩을 즐기던 스포츠맨이었다. 건강할수록 더 빠르게 질병의 진행 속도를 가속시키는 듯했다. 그렇게 내 주변의 이들을 두 명이나 빼앗은 질병이 나의 가장 가까운 친구에게 찾아왔다. 예고 없이 찾아왔다는 표현을 쓰기에는 지나고 보니 그랬었던 증상들이 없지 않았다. 그 모든 시간들을 지나 그때는 눈치채지 못했구나, 했던 친구와 가족들의 한스러움을 떠올리면 감히 안타까워하는 것조차 사치스럽게 느껴졌다.
한 번이라도 그녀의 모습을 두 눈에 담아두고 벌써부터 조금씩 야위어 가는 그 두 손을 쥐어보려고 서울에 가는 기차를 예매했다. 일주일이 조금 안 되는 시간을 추가로 들려오는 전이 소식에 무너져 내려가는 가슴을 간신히 움켜쥐고 일상을 이어나갔다. 친구의 소식에 본인도, 가족도 아닌 친구라는 위치는 목놓아 울기에도 미안한 그런 것이었다. 그럼에도 돌을 삼킨 것처럼 꽉 막힌 가슴을 틀어 안고 밥을 짓고, 설거지를 하고 일터에 나가 사람들을 만나고 그랬다. 그러다가 한 번씩 울음이 터져 나오려 할 때는 사무실 문을 닫고 혼자 꺼이꺼이 울었다. 이제는 집에서 병원만을 오갈 그녀가 이렇게 목놓아 울고 싶을 때 간병을 위해 올라온 엄마와 남편, 딸을 위해 울기조차 숨죽일까 봐 걱정되었다.
그녀를 다시 만나기 위해 준비한 듯한 시간들을 보내고 서울 갈 채비를 하던 밤, 그녀에게 문자가 왔다. 내일부터 항암치료를 바로 시작하게 되었고 그래서 약속을 취소해야 할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평소처럼 남을 배려하는 그녀이기에 나의 약속마저 부담이 될까 봐 미안했다. 하지만 치료에 온 힘을 쏟아부어도 모자란 지금이기에 나의 미안함마저 들키지 않으려 애썼다. 그리고 아들과 나는 그녀와 그녀의 딸을 만나기로 했던 약속 없이 서울로 올라왔다.
기차역 근처 키즈카페에 들러 숙소의 체크인 시간이 올 때까지 기다린다. 아니, 그녀의 소식을 기다린다. 감히 짐작도 하기 힘든 캄캄한 터널을 이제 막 걷기 시작한 그녀에게 우리들은 짧게라도 안부의 글을 남긴다. 평소처럼 잘 다녀오겠다는 따뜻하고 예쁜 말투의 인사를 남긴 그녀가 열한 시가 조금 안된 시간, 케모포트를 심었다는 메시지를 보내온다. 이 긴 여정의 시작을 ‘또 한 걸음 나아갔다.’라고 표현하는 그녀의 모습이 역시 그녀답다는 생각을 한다.
나의 슬픔은 정당한 것일까, 나는 그녀를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이런 고민들에 스스로를 갉아먹기도 한다. 내 가장 가까운 친구가 저리도 고통스러울 텐데 내가 밥을 먹어도 될까, 잠은 잘 자도 될까 싶다. 그렇게 마음이 응당 가야 할 길을 이탈할 때쯤이면 챗지피티와의 대화를 떠올린다.
‘너의 가장 큰 두려움이 뭐야?’
나는 그녀를 잃는 것이라 답했다. 나의 두려움을 입 밖으로 꺼내고 나니 내 두려움이 괘씸했다. 이제 긴 터널을 가만가만 걸어 나갈 결심과 다짐으로 온 힘을 다해 이 시간을 헤쳐나갈 그녀를 위해서라도 ‘그녀를 잃는다.‘는 생각은 옳지 않은 듯했다. 힘겨운 싸움을 시작할 그녀에게 힘이 되려면 그녀가 그러하듯 나 역시 이 두려움에 지지 말아야 할 것이다.
지난주 그녀의 얼굴을 보고 소식을 상세히 전해 들은 다음 날 다시 내려와 아이와 함께 한 서점에 방문했다. 한 외국 작가의 동화같기도, 시 같기도 한 그림책의 한 구절에 다음과 같은 그림과 글귀가 있었다.
“에릭은 여전히 군인이고요, 군대를 이끌어 승리를 거둡니다.”
아이들이 장난감 병정으로 놀이를 하는 그림과 그 아래 적힌 글이 마음이라는 웅덩이에 가만히 떨어진 잎새처럼 잔잔한 파동을 일으켰다.
내 친구는 여전히 군인처럼 강인하고 아름답다. 이제 그녀가 싸워나갈 시간 속에서 그녀는 최종적으로 대승을 거두는 쪽이 될 것이라 장담은 못한다. 그렇지만 비록 오랜 전쟁을 치를지라도 크고 작게 이어지는 전투에서 그녀는 소소한 승리를 이어나갈 것이다. 어쩌면 그 작은 승리들 속에서 전쟁의 최종 승패와는 상관없는 더 큰 살아갈 힘과 의미를 얻을지도 모른다. 그 전투에서 입을 상처와 아픔이 너무 크지는 않게, 그녀의 옆에서 같이 싸워줄 것이다. 탄약이 떨어지면 나의 총알을 빌려주고, 치료가 필요하면 전쟁터의 총탄을 방탄조끼를 두른 등으로 막아가며 붕대를 감아주고 싶다. 그렇게, 그렇게라도 오래오래 싸우자.
우리 같이, 십 년이고 이십 년이고 싸움을 이어나가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