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살아보려고 쓰는 글
호시탐탐 재밌는 것을 찾아 다른 이를 웃겨보려고 하는 이를 가까이 둔 적이 있는가?
심지어 그 이가 남들을 잘 배려하고 진취적이며, 끼도 넘쳐 함께하는 시간 절반은 같이 배꼽잡고 웃다가 헤어지는 그런 이가 있는가?
나는 있다. 우리의 인연은 스무살때부터 시작되었다.
전국 각지의 스무살 어린 청춘들이 모여 하나의 목표를 엇비슷하게라도 해내야 했던 그 시절 나는 그녀를 처음 만났다. 폐쇄적인 생활에서 그 친구는 늘 앞서 말한 저런 성정으로 나를 자주 웃게 해주고 내가 모르는 삶에 대한 관점 - '남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자기 단속의 가치관을 몸소 보여주는 사람이었다.
그런 우리가 스물세살을, 서른살을, 마흔살을 함께보내고 같이 서로의 아이가 크는 것을, 서로의 삶에서 크고 작은 것들을 이루고 누려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 때때로만 함께해도 '친구'라는 이름으로 가장 가까운 사람 중 하나로 '이 세상'에 두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다. 살아간다는 것, 늙어간다는 것이 권리인 줄 알았더라면 우리는 철없는 시간을 조금 덜 짧게 앓기라도 했을까?
2주 전 메세지로 알려온 그녀의 초기 진단명. 여느 때처럼 웃음으로 넘겨보려는 우리의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듯 중위값 2년의 생존률이라는 생각보다 심각한 상황을 알려왔을 때 24시간의 근무 후 잠에 들어야 했던 나는 뜬 눈으로 '낮'을 지새웠다. 벌렁거리는 심장과 비현실감. 하루의 과업들을 충실히 해내지 않으면 안되는 나의 정체성은 부정, 분노, 슬픔, 수용의 단계들을 충분히 밟을 공간이 없었다.
이십대 초반의 4년과 후반 언저리의 2년을 같은 곳에서 산 후 우리는 물리적으로 늘 먼 곳에 살았다. 지금도 그러한 상황에서 나는 나의 상황에서 그녀를 보는 것이 가능한 시간과 상황 그런 여건을 계산했다. 오랜 직장생활 때문일까, 감정형 인간인 나는 위기의 순간에 감정을 배제하고 상황을 파악하려는 후천적 습관을 꽤 오랫동안 훈련했다. 가장 가까운 시일에 그녀를 볼 수 있는 시간을 가늠해 인생에 쓰나미 같은 파도가 덮쳐온 그녀를 만났다.
예상했지만 그녀는 평소와 똑같았다. 언제나 '오랜만에' 얼굴을 보는 우리들은 평소처럼 우리의 인생에서 재밌었던 순간들을 혹은 의미있거나 뻘했던 순간들을 밥상에 올려내 맛있게 입에 넣어 먹었다.
대장암 4기에 수술도 어려운 상황을 생생히 전하는 와중에도 처음 해보는 검사들의 방법과 수치스러움을 떠들어 대며 그것으로 아직 닥쳐오지 않은 순간들에 대한 불안과 슬픔을 감해 보았다.
아직도 나는 부정, 분노, 슬픔, 수용의 단계에서 자주 이 상황을 부정한다. 이 부정은 암 말기라는 무서운 단어는 눈에 보이는 현재진행형이 아니기에 언젠가 그녀가 이 병의 현실들과 맞서야 할 때 당당히 그녀 옆을 지키기 위한 나의 다짐이다.
우리는 순간을 사는 것이지 내일을 사는 것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 그녀는 내 곁에 있으며 그녀의 가족들 곁에 있으며 꽤 오랜 시간 그 병에 맞서 싸울 것이다. 그녀는 우리와 같이 꽤 오랜 시간을 같이 살 것이며 나는 그녀를 지난 언제보다도 자주 만날 것이다. 나보다 힘들 그녀와 그녀의 가족들을 생각하며 눈물은 혼자만 흘리고 그녀에게는 필요한 것들을 해줄 것이다. 내게는 슬퍼할 시간이 없다고 자꾸만 되내인다. 눈물을 바꾸어 그녀의 건강이 될 수만 있다면 기꺼이 내 울음을 삼키고 그녀의 곁에 서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