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_006] 행복의 시간 부조리

by 여상욱

행복은 수수께끼다. 오래 기다렸다가 잠깐 머물다 가고, 대신 그 자리를 고통이 차지하고 눌러앉아 떠날 줄 모를 때가 많다. 인간의 삶에서 이보다 더한 부조리가 있을까. 우리는 행복을 갈망하며 살지만, 정작 행복은 마법처럼 우리를 조롱하고 있는 듯하다.


결핍에서 충만, 다시 과잉으로


인생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결핍-충만-과잉'의 순환구조가 보인다. 무언가 모자란 상태에서 시작해 그것이 채워지는 짧은 순간의 충만함을 경험하고, 곧이어 넘치는 상태의 부담을 느낀다. 행복은 오직 결핍이 충만으로 변하는 그 찰나에만 존재한다. 나머지 시간은 모두 불행의 영역이다.


더욱 잔혹한 것은 시간의 배분이다. 결핍의 시간은 길고, 충만의 시간은 짧으며, 과잉의 시간은 또다시 길다. 마치 행복이라는 것이 인간을 괴롭히기 위해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것처럼.


그녀를 만나면서


군을 제대하고 복학해서 대학의 마지막 학기를 남겨두고 맞은 여름방학, 나는 늦깎이 연애에 빠졌다. 2백 킬로미터 가까운 거리를 두고 이쪽저쪽으로 나누어진 남녀. 그들에게 거리는 어떤 장애물도 되지 않았다. 토요일 오후에 한 번씩 보던 두 사람, 떨어져 있어야 하는 월요일부터 토요일 오전까지 온통 그 사람 생각뿐이었다. 밥 먹을 때도, 수업 시간에도, 잠들기 전에도. 결핍의 시간은 길고 아프기만 했다. 드디어 만나는 순간. 손을 잡고 걷는 몇 시간 동안만큼은 세상이 완벽해 보인다. 이것이 충만의 시간이다. 하지만 얼마나 짧은가. 벌써 해가 지고, 헤어질 시간은 금방 다가온다.


헤어지는 일요일 밤, 다시 혼자가 된 방에서 느끼는 기분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미지의 세상이다. 만나기 전보다 더 큰 공허가 밀려든다. 행복했던 기억이 현재의 외로움을 더욱 선명하게 만든다. 과잉의 시간, 추억에 짓눌리는 시간이 시작된다. 그리고 또다시 일주일의 기다림이 반복된다.


승진, 뒤따르는 후유증은 또 뭘까


20년 이상 기다려온 부장 자리. 이곳을 차지하고자 달려온 시간은 어쩌면 결핍의 시간이었는지 모른다. 야근을 밥 먹듯이 하고, 쉬어야 하는 주말에도 이런저런 일로 회사 근처에서 보낼 때가 적잖았다. "이번에는 내 차례일 거야"를 돼 내어야 했던 적도 몇 번 있다.


드디어 승진 발표날, 그 시간만큼은 정말 행복하다. 가족들에게 전화하고, 동료들의 축하를 받으며 충만감에 둘러싸인다. 하지만 그 기쁨은 얼마나 지속되었을까.


일주일? 한 달? 곧이어 깨닫는다. 부장 자리는 더 무거운 책임, 더 많은 스트레스, 더 복잡한 인간관계를 갖는다는 것을. 바라던 곳에 왔는데 왜 이렇게 마음은 무거울까. 과잉의 시간이 시작된 것이다. 성취의 무게감에 어쩔 줄 모르던 시간은 곧바로 다음 목표를 찾아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시간으로 흘러간다.


자녀 성장의 허와 실


갓 태어난 아이를 품에 안으며 맞는 어색하고 얼떨떨한 벅찬 감동. 하지만 곧이어 만나는 것은 끝없는 결핍의 시간이다. 잠 못 드는 밤들, 울음소리에 지치는 날들, 아이가 아플 때의 불안함. "빨리 커서 말이라도 통했으면" 하는 마음. 아이가 첫걸음을 떼는 순간, 처음으로 엄마, 아빠를 부르던 순간. 이때만큼은 부모로서의 행복이 충만하다. 하지만 그 시간은 정말 순간이다. 돌봄 시간은 더 늘어나고, 책임과 의무가 곳곳에 묻혀있다.


아이가 성인이 되어 출가하는 날. 이제 걱정을 걷어들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으나, 오히려 더 큰 공허가 밀려온다. 과잉의 시간, 빈 둥지 증후군이 시작된다. 너무 많은 자유 시간, 너무 조용한 공간에서 책임이 가벼워졌다고 생각한 것은 때 이른 착각임을 곧 알게 된다.


행복이라는 사기극


결국 행복이란 무엇인가. 결핍에서 충만으로 넘어가는 순간의 경험이다. 나머지 시간은 모두 그 순간을 그리워하거나 다음 순간을 기대하며 보내는 불행의 시간들이다. 더 잔인한 것은 우리가 이 구조를 알면서도 계속 행복을 찾아 헤맨다는 점이다. 마치 도박에 빠진 사람처럼, 짧은 승리의 쾌감을 위해 긴 패배의 고통을 감수한다. 행복은 우리에게 이런 거래를 강요한다. "순간의 충만을 원한다면 긴 결핍과 과잉의 시간을 견뎌라."


시간 부조리의 비밀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아마도 우리의 뇌가 변화에만 반응하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결핍에서 충만으로 변하는 순간에는 강렬한 신호를 보내지만, 충만한 상태가 지속되면 곧 무감각해진다. 그리고 과잉의 상태에서는 다시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결국 행복은 상태가 아니라 변화의 순간이다. 목적지가 아니라 여행 중의 한 정류장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정거장에 영원히 머물고 싶어 한다. 이보다 심한 가장 부조리가 어디 있을까.


부조리와 화해하기


그렇다면 행복을 포기해야 할까. 행복 찾기를 그만둬야 할까. 아니다. 오히려 부조리를 인정하면서 시작해야 한다. 행복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충만한 순간이 짧다는 것을, 결핍과 과잉의 시간이 더 길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면서 짧은 순간을 더욱 소중히 여겨야 한다. 연인의 만남, 승진의 기쁨, 아이의 성장. 이 순간들이 영원하지 않기에 더 아름다운 것인지 모른다. 행복의 부조리를 나무랄 것이 아니라, 그 덕분에 평범한 순간들이 특별해진다고 생각해야 한다.


시간은 공평하지 않다. 행복한 시간은 빨리 가고, 불행한 시간은 어김없이 가까워진다. 이 불공평이 행복을 더욱 간절히 바라게 하고, 찾아온 행복을 더 깊이 음미하도록 만든다. 부조리하지만, 그래서 더욱 인간다워지게 하는 게 바로 행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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