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덤 스미스는 말했다. "당신이 오늘 아침에 따뜻한 우유와 쫄깃한 빵을 먹을 수 있는 것은 제빵업자와 축산업자의 자비심이나 이타심 때문이 아니다. 그들의 이기적인 욕망 때문이다." 자본주의가 어떤 체제인지 이보다 더 명쾌하게 찌르는 말이 있을까. 한편 이 정의만큼 우리 사회의 부조리를 적나라하게 지적하는 말도 없을 것이다.
보이지 않는 손의 명암
이기심이 선함이 되는 세상. 탐욕이 미덕으로 포장되는 시대. 개인의 욕심이 사회 전체의 이익으로 전환된다는 '보이지 않는 손'의 논리. 하지만 정말 그럴까? 이 그럴 듯한 이론 뒤에 숨겨진 부조리는 없을까?
커피 한 잔에 담긴 불평등
당신이 아침에 마신 커피를 생각해보자. 이디오피아의 한 소년이 새벽부터 일어나 커피 열매를 따고, 가공업자가 이를 사들여 볶고, 유통업자가 전 세계로 운반하고, 동네 카페 사장이 당신에게 내려주는 한 잔의 커피는 이렇게 만들어진다. 네 사람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지만, 당신한테 맛있는 커피 한 잔이 돌아온다는 사실에 주목해 보자.
눈에 보이는 모습 그 이면을 들여다보자. 미성년자인 이디오피아 소년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중간 유통업자가 많은 이익을 가져가는 흐름이다. 당신이 5천 원에 마시는 커피에서 소년에게 떨어지는 몫은 고작 50원 정도다. 과연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을까?
스마트폰에서 볼 수 있는 자본주의의 그림자
이번에는 누구나 쥐고 있는 스마트폰을 따라가보자. 내 손 안의 조그마한 통신기기는 이미 전화기나 단순 기계가 아니다. 아프리카의 희토류 광산에서 나온 원료가 중국 공장에서 조립되고, 실리콘밸리에서 설계된 소프트웨어가 탑재되어 한국의 통신망을 통해 전 세계와 연결된다.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자기 이익을 얻기 위하여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그런데 여기에도 엄연히 부조리가 숨어있다. 아프리카의 광부들은 하루 1달러도 못 받으며 독성 물질에 노출되고, 중국 공장의 노동자들은 자살 방지망이 설치된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땀을 쏟는다. 반면 스마트폰 제조 회사 CEO는 연봉이 수백억 원에 이른다. 모두의 욕망이 모두의 이익이 된다고 말할 수 있을까?
강자의 이익만 보장되는 시스템
자본주의의 가장 큰 부조리는 이 지점에 있다. 개인의 이기심이 사회 전체의 이익으로 전환된다는 논리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강자의 이기심만 보상받는 시스템이다. '보이지 않는 손'은 있지만, 그 손은 위로 올라갈수록 더 많이 가져가도록 설계되어 있다.
마르크스의 예견과 공산주의 실험의 실패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예견한 것처럼, 자본주의는 필연적으로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자본가는 노동자의 잉여가치를 착취하고, 그 착취된 가치는 다시 자본으로 축적되어 더 큰 착취를 가능하게 한다.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자는 상대적으로 더 가난해진다.
그렇다면 왜 마르크스가 제시한 공산주의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일까? 여러 이유가 있지만, 가장 근본적인 것은 인간의 본성과 관련이 있다. 공산주의는 사적 소유를 폐지하고 모든 것을 공유한다는 이상적인 시스템이지만, 실제로는 개인의 동기를 제거해버린다.
소비에트 연방의 실험은 이를 증명했다. "각자의 능력에 따라 일하고, 각자의 필요에 따라 받는다"는 아름다운 구호 아래, 실제로는 누구도 열심히 일하지 않게 되었다. 열심히 일해도 게으름을 피워도 받는 것이 같다면, 굳이 열심히 일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권력의 집중이었다. 사적 소유를 금지하면서 모든 권력이 국가, 더 정확히는 소수의 지배층에게 몰렸다. 결국 자본가 대신 관료가 지배하는 또 다른 착취 시스템이 만들어졌을 뿐이다.
중국의 현재 모습이 이를 잘 보여준다. 공산주의를 표방하지만 실제로는 국가자본주의를 실행하고 있다. 시장경제의 효율성은 도입하되 정치 권력은 공산당이 독점하는 형태다. 과연 이것이 마르크스가 꿈꾼 이상적 사회일까?
사회민주주의 모델이 대안이 될 수 없나?
결국 자본주의 부조리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은 또 다른 부조리를 낳는 꼴이 되었다. 이기심을 인정하고 활용하면 불평등이 심화되고, 이기심을 억제하려 하면 효율성이 떨어지고 권력 집중을 부른다. 그렇다면 인간 존재 자체가 부조리한 것은 아닐까?
완벽한 시스템은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현실 시스템의 문제를 인정하고 끊없이 고치고 바꾸어 나가는 일이다. 북유럽 국가들의 사회민주주의 모델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시장경제의 효율성은 유지하되 복지를 통해 불평등을 완화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여기에도 한계가 있다. 복지는 결국 누군가의 세금이 들어가는 것이니까, 세금을 많이 내는 사람들의 불평을 감수해야 한다. 또한 복지에 의존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사회 전체의 활력이 떨어질 위험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완벽한 제도는 없지만, 노력은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는 부조리한 시스템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완벽 제도를 바탕에 깔고 있는 이상적인 사회는 없고, 모든 시스템은 나름의 문제점을 안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를 인정하면서도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은 분명히 작동한다. 하지만 그 손이 항상 공정하지 않다는 것, 때로는 강자의 편만 들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한계를 보완하는 '보이는 손', 즉 정부의 역할과 시민사회의 감시가 필요하다는 것도.
오늘 아침 당신이 마신 커피, 손 안의 스마트폰, 입고 있는 옷. 이 모든 것들 뒤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노동과 욕망이 얽혀있다. 그 복잡한 관계망 속에서 모두가 행복할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는 그 부조리를 인정하고, 조금이나마 더 공정한 세상을 만들어가려고 노력해야 한다. 이것이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우리가 져야 할 짐이자, 희망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