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_016]노인과 관광객

by 여상욱

한 선진국 관광객이 어느 가난한 나라 어촌에 갔다. 마을이 아름다워 사진을 찍고 있는데 한쪽 구석 모래밭에서
어떤 노인이 낮잠을 자고 있었다. 그 모습을 사진 찍고 있던 중에 그 노인이 깼다.
관광객 : 왜 고기 잡으러 가지 않으세요?
노인 : 이미 새벽에 나가서 고기를 한 번 잡아왔다네.
관광객 : 한 번 더 가서 고기를 잡아오면 좋잖아요?
노인 : 그렇게 고기를 더 잡아 뭘 하겠나?
관광객 : 고기를 더 많이 잡아서 낡은 배를 새 배로 바꿀 수 있겠죠. 배가 좋으면 더 많은 고기도 잡고요. 돈을 더 벌면 창고도, 가공 공장도 짓고 해서 큰 부자가 될 수 있지 않겠어요?
노인 : 그렇게 부자가 돼서 뭐하게?
관광객 : 그럼 저 산 위에 별장을 짓고 아주 여유롭게 살 수 있잖아요?
노인 : 나는 옛날부터 여유롭게 살고 있다네.

진짜 부자는 누구인가 - 모래밭 낮잠의 철학

"나는 옛날부터 여유롭게 살고 있다네."
어촌 노인의 한 마디가 선진국 관광객의 장황한 성공 공식을 한 방에 무너뜨렸다. 더 많이, 더 크게, 더 빨리. 현대 문명이 추구하는 모든 가치가 모래밭에서 낮잠 자는 노인이 무력화시켰다. 관광객의 논리는 완벽해 보인다. 더 많은 고기를 잡고, 더 큰 배를 사고, 더 큰 사업을 벌여 결국 산 위 별장에서 여유를 누리자는 것. 자본주의가 제시하는 전형적인 성공 스토리다. 하지만 그 끝에 있는 '여유로운 삶'을 노인은 이미 누리고 있다.

이 대화에서 가장 아이러니한 것은 관광객의 처지다. 그는 분명 노인이 말하는 그 '여유'를 찾아 먼 나라까지 여행온 사람이다. 아마도 오랜 시간 일하면서 모은 돈으로 온 게 아닐까. 그런데 정작 여유를 가졌으면서도 그것을 알아채지 못한다. 그러면서 노인에게 더 많이 일하라고 조언한다.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도 마찬가지다. "언젠가는 여유를 가지고 살겠다."며 평생을 달려왔다. 조금만 더 벌면, 조금만 더 나아지면, 조금만 더 쌓으면 그때 쉴 거라고 다짐한다. 하지만 그 '조금만 더'는 끝내 오지 않을 수 있다. 목표를 달성하면 더 큰 목표가 생기고, 더 많이 벌면 더 많이 쓸 곳이 생긴다.

노인의 삶을 보자. 새벽에 고기를 잡고, 낮에는 모래밭에서 낮잠을 잔다. 저녁에는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밤이 되면 별을 보며 잠든다. 부족한 게 뭘까? 더 큰 배? 더 많은 돈? 더 넓은 집? 관광객은 여유를 무엇이라고생각할까?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하고, 직원 관리 잘 하고, 시장 상황을 걱정하며 잠드는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은퇴하면 자신도 모래밭에 와서 낮잠을 자는 것이다.

결국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셈이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젊음도, 건강도, 순수도 많이 잃어버린 후일 것이다. 더 많이 가졌지만 더 적게 누리는 역설. 물론 노인의 삶이 완벽하다는 건 아니다. 의료비가 부족할 수도 있고, 자녀 교육에 한계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그는 지금 행복하다. 현재를 살고 있다.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를 저당 잡히지 않는다.

관광객은 아마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저 노인은 진취성이 없어. 발전 의지가 없어. 그래서 가난한 거야." 하지만 정말 그럴까? 어쩌면 노인이야말로 가장 현명한 경제학자일지도 모른다. 비용과 편익을 정확히 계산해본 결과, 지금의 삶이 최적해라고 판단한 것일 수 있다. 현대인들은 '더 많이'에 중독되어 있다. 더 많은 돈, 더 많은 성취, 더 많은 인정.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이'가 아니라 '얼마나 만족하며' 사는가이다. 노인은 적게 가졌지만 충분히 만족한다. 관광객은 많이 가졌지만 아직도 부족하다고 느낀다.

어떤 사람이 부자일까, 한번 생각해보자. 많이 가진 사람이 부자일까, 아니면 원하는 만큼 가진 사람이 부자일까? 노인은 원하는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 푸른 바다, 따뜻한 햇살, 가족과의 시간, 평화로운 잠. 이런 것들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장 귀한 부다. 관광객이 진짜 현명했다면 노인에게 이렇게 물어봤어야 했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만족하며 살 수 있나요?" 성공 공식을 가르치려 하지 말고, 행복 공식을 배우려 했어야 했다.

모래밭에서 낮잠 자는 노인. 그는 우리가 평생을 찾아 나서는 목표에 이미 도달해 있었다. 산 위 별장이 아니라 바닷가 모래밭에서, 미래가 아니라 바로 지금 이 순간에. 진짜 부자는 많이 가진 사람이 아니라 지금 가진 것에 행복해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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