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난 지 40일이 되는 손자를 보려고 이른 아침, 집을 나서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한여름 무더위를 다스렸던 무거운 구름들이 걷히고 투명한 비췻빛만 남았다. 가을 하늘은 왜 이렇게 높고 또 투명할까.
바람이 여름의 끈적한 물기를 말려버렸기 때문일까. 뜨거운 햇살을 가리기도 했고, 폭우를 동반하기도 했던 뭉게구름은 얇은 종잇장처럼 접혀 먼 산 너머로 떠났다. 떠나보낸 것이 많을수록 마음이 가벼워지듯, 하늘도 비로소 제 속살을 드러낸 것이다.
햇볕도 많이 옅어졌다. 작열하던 여름의 햇볕과 달리 가을볕은 한 톨의 먼지까지도 금가루처럼 밝혀준다. 공기는 투명한 유리잔처럼 맑아져서 숨 한 번 들이키면 가슴이 씻겨지는 기분이다. 멀리 있는 산도 바로 코앞에 있는 것처럼 선명하다.
높다란 푸른 빛은 사실 비어 있지 않다. 수확을 기다리는 들판의 기도가 담겨 있고, 곧 낙엽을 쓰려고 준비한 문장들이 떠다니고, 여름이 내려놓고 간 열기의 뒷모습까지 차분히 담아 올린다. 그래서 가을 하늘은 높이떠오르는 것이다.
무거운 것은 땅으로 내려보내고 가벼운 것들만 위로 띄우는 계절의 손길 때문이다. 여름의 습기와 더위, 장마와 태풍의 무게들이 모두 아래로 내려앉고 나면, 남는 건 맑고 투명한 공기뿐이다.
우리 마음도 그 하늘을 닮는다. 불필요한 말들을 털고 나면 남는 건 파란 침묵과 뚜렷한 진심이다. 그 진심이 눈에 보이는 색으로 번지며 청명을 불러들이는 것이다.
초등학교 시절 가을 운동회 날을 떠올린다. 높다란 하늘 아래, 펄럭이는 만국기와 함께 즐거웠던 기억, 그때의 하늘도 이만큼 맑았었지. 나이테가 늘어나도 가을만 되면 그 시절의 투명한 감정이 되살아난다.
가을 하늘이 높은 건 물리적인 이유만은 아니다. 생명들이 한 해의 결실을 맺으며 내뿜는 깊은 숨결, 낙엽이 되기 전 마지막으로 타오르는 잎들의 열정, 추수를 앞둔 농부의 마음까지 모든 것이 위로 상승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을 하늘을 바라보면 마음이 정화된다. 여름 내내 쌓였던 묵은 감정들이 정리되고, 겨울을 맞을 준비가 된다. 높은 하늘은 우리에게 말한다. 무거운 건 내려놓고, 가벼운 것만 품고 살라고.
곧 도착할 아들네에서 만날 손주의 투명한 얼굴과 옹아리를 기대하며 높은 하늘을 한번 더 올려다본다. 내 마음의 하늘도 이렇게 맑아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