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_027]집(홈)일까, 집(하우스)일까

by 여상욱

한적한 왕복 2차로 도로를 타고 가다가 집 짓는 공사장을 끼고 오른쪽으로 꺾어든다. 약간 경사진 길을 100여 미터 오르다가 오른쪽으로 접어들어 20여 미터를 가면 만나는 오른쪽 두 번째 집. 우리 집이다. 작년에 설치한 태양광 시설물 아래 차를 세울 수 있는 자리가 있다. 그만큼의 폭을 가진 공간이 현관 쪽으로 하나 더 있다. 바닥엔 죽은 솔잎이 사이사이에 낀 자갈이 깔려있다. 주차장이 손님을 가장 먼저 맞이한다.


주차장을 지나면 장미 넝쿨을 이고 있는 하얀 아치가 마치 작은 문화관 입구처럼 두 번째로 손님을 반긴다. 정식 초대를 받은 사람이 들어올 수 있는 게이트다. 아치를 지나면 오른쪽에 다섯 평이 채 안 되는 텃밭이 앉아 있다. 에어컨 실외기 자리에서 건물 옆구리를 끼고 왼쪽으로 돌면, 비로소 우리 집의 진짜 얼굴인 마당을 만날 수 있다. 길게 우리 집을 설명했다. 하우스로 존재하는 집이다. 평수와 가격, 입지와 시세로 말하는 집이다. 뉴스는 부동산 가격을 외치고, 사람들은 집값을 걱정한다. '하우스'로서의 집은 끊임없이 우리를 불안하게 만든다. 소유하지 못하면 실패한 것 같고, 더 큰 집이 아니면 부족한 것 같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와 소파에 앉으면 일단 마음이 편안해진다. 거실 벽에 붙은 손주의 첫돌 전 사진을 쳐다보며 이유 없는 미소를 짓고 나면 문득 벌써 4살이 된 아이가 보고 싶어진다. 겨울엔 따스한 온기가, 여름엔 시원한 공기가 나를 감싼다. 생각만 해도 편안해지는 곳. 누군가의 목소리, 저녁밥 짓는 냄새, 익숙한 물건들. 이번에는 집이 '홈'으로 존재한다.


집은 홈도, 하우스도 다 될 수 있다. 건물이면서 동시에 보금자리로. 하지만 균형이 무너지면, 집은 더 이상 쉴 곳이 아니라 짊어져야 할 짐이 된다. 평안해야 할 공간이 스트레스가 되고, 돌아가고 싶은 곳이 도달해야 할 목표가 되어버린다.


이 지점에서 깨닫는 것이 하나 있다. 집의 의미는 내가 정하는 것이라고. 세상이 '하우스'를 외칠 때, 나는 '홈'을 지키고 싶다고.


오늘도 바깥에서 볼 일을 보고 집으로 돌아간다. 전철역에서 내려 들판을 옆에 끼고 반 시간 가까이 걸으면 우리 집에 도착한다. 나는 집이 소유의 대상이 아니라고 공표하려고 대문을 없앴다. 옆 집과 뒷집에서 주차할 때 편하게 사용하라고. 우편물이나 택배 기사들이 편하게 물건을 배달할 수 있도록. 전원주택 로망하는 사람들 부담 없이 들어와 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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