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_036] 마음의 상자를 열 때

by 여상욱

상처는 몸이나 마음이 다친 자리, 혹은 그 흔적이라고 사전은 말한다. 몸에 상처를 입을 수도 있고, 마음에 상처를 받을 수도 있다. 내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다른 사람이나 제3자로부터 상처를 입기도 한다. 사고나 실수로 생긴 몸의 상처는 눈에 보이기 때문에 객관화된다. 치명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치료를 통해 대부분 낫는다.


그러나 마음의 상처는 보이지 않아 주관성이 강하다. 아픔의 정도도, 치유의 시간과 방법도 제각각이다. 그만큼 ‘상처’라고 단정 짓기조차 쉽지 않다. 몸의 상처는 찔리고, 베이고, 긁히고, 찢기고, 삐거나 멍드는 모양으로 아픔을 증명한다.


하지만 마음의 상처는 다르다. 물기 가신 여름비처럼 살며시 스며들어 지그시 눌러오기도 하고, 폐부를 콕콕 찌르듯 찾아오기도 한다. 웃으며 말할 수 있을 만큼 괜찮아졌다고 믿었던 아픔이, 불현듯 어떤 말 한마디에 다시 되살아나기도 한다. 어느 정도 나이를 먹은 사람이라면, 한두 번쯤은 그 경험을 안다. 마음의 상처는 늘 현재진행형이다.


상처는 피해의 자국이다. 그 자국은 반드시 누군가의 잘못으로만 생기지 않는다.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 스친 표정 하나, 외면당한 순간 그때 마음에 작은 가시가 박힌다. 나조차 기억하지 못한 순간에, 나의 사소한 몸짓이 누군가에게는 깊은 상처로 남기도 한다. 그래서 마음의 상처는 언제나 주관적이다. 같은 상황에서도 어떤 이는 버티고, 어떤 이는 한순간에 무너진다. 사람마다 마음의 결이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종종 마음속의 상처를 ‘정리되지 않은 상자’에 비유하곤 한다. 열어 보면 뒤죽박죽 얽힌 모양새에 마음이 상하지만, 그렇다고 버릴 수도 없는 그런 상자다. 우리는 그 상자를 끌어안고, 언젠가 꺼내어 마주 볼 용기를 배우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 상자를 열면 여러 가지 재료들이 들어 있다. 누군가는 그것으로 곡을 만들고, 누군가는 그림을 그리고, 또 누군가는 시를 쓴다. 그렇게 상처는 예술로 승화되어 너와 나의 마음에 공감의 다리를 놓는다.


상처는 결국 스스로 위로가 되고, 치유의 힘이 되기도 한다. 결국 상처는 우리가 여전히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표식이다. 상처는 아픔의 흔적이자, 삶의 증거다. 나는 그 증표를 품고, 오늘도 상처와 함께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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