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_038]책상은 도처에 있었다

by 여상욱

아내는 내가 사용하는 책장이 있는 방을 서재라고 부른다. 창문 넘어 한참 멀리 한강이 조금 보이고, 산과 하늘도 조망할 수 있다. 이 방에 책상이 두 개가 놓여 있다. 하나는 독서와 글을 쓰는 용도로, 하나는 컴퓨터가 앉아 있다. 그 책상을 책을 읽거나 글을 쓸 때 책과 필기 도구를 올려놓는 상(床)이라는 사전식으로 정의한다면 나부터 받아들이기 힘들다.


책상 하면 할아버지와 함께 쓰던 사랑방 웃목의 황토색 앉은뱅이 책상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아버지가 서울로 가셔서 수박 팔고 받은 돈으로 사다 주신 책상이다. 그 위에는 초등학교 3학년 교과서와 공책 몇 권이 꽂힌 3칸짜리 책꽂이가 놓이고, 할아버지의 곰방대와 재털이도 가끔 자리잡을 때가 있었다.


고등학교 때 누나와 자취하던 셋방의 책상은 밥상이었다. 아침에는 된장찌개와 김치를 올려놓는 밥상이, 저녁이면 교과서와 공책을 펼쳐놓는 책상으로 모습이 바뀐다. 반찬이나 국물이 묻은 자국을 행주로 닦아내고, 그 위에 팔꿈치를 괸 채 숙제도 하고 시험 공부도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것도 시험 기간이 겹치면 교대로 상을 썼다. 상을 차지 못한 사람은 방바닥에 엎드려 했으니, 이때 책상은 방바닥이었다.


가장 추억이 서린 책상은 따로 있었다. 초등학생 시절, 소를 먹이러 가던 야산의 편평한 바윗돌이다. 소가 풀을 뜯는 동안, 나는 돌 위에 책을 펼쳐놓고 읽었다. 종이책보다 자연의 책이 펼쳐졌다. 계곡물 소리가 배경 음악이 되고, 바람이 책장을 넘겨주었다.


때로는 하늘이 책상이 되기도 했다. 풀밭에 등을 대고 누워 위로 팔을 뻗어 책을 펼치면, 파란 하늘이 그대로책상이 되었다. 팔이 아파 책을 내리면, 눈부시도록 푸르른 하늘이 눈 속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무더운 여름밤, 모기장 안 평상도 빼놓을 수 없다. 마당에 평상을 내놓고, 모기장을 둘러치면 그곳이 서재가 되었다. 부채로 바람을 일으키며 책을 읽노라면, 할머니가 수박을 깎아 들고 오셨다. 평상 아래서는 강아지가 장난 치고, 모기장 밖에서는 풀벌레가 울어댔다.


서재에 있는 책상은 그럴 듯하다. 서랍도 있고, 조명도 달린 책상이다. 하지만 가끔 그 앞에 앉으면 오히려 글이 써지지 않을 때가 있다. 너무 완벽해서일까. 불편함이 없어서일까.


그러고 보니 내 책상은 도처에 있었다. 책상이란 정해진 형태가 아니라, 무언가를 배우고 사유하고 꿈꾸는 모든 자리였던 것 같다. 황토색 앉은뱅이 책상에서 겸손을 배우고, 자취방 밥상 위에서 생존을 익히고, 바윗돌 위에서 자유를 맛보고, 하늘 아래서 상상력을 키우고, 평상 위에서 끈기를 길렀다.


그러니까 책상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였던 것 같다. 앉는 곳이 아니라, 살아가는 곳이었다. 지금도 책상은 도처에 있다. 버스 안 무릎 위에도, 카페 구석 테이블에도, 공원 벤치에도. 그리고 무엇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여기도 책상이다 . 내 삶의 작은 플랫폼, 그게 책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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