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국민학교에 다닐 때는 ‘국민교육헌장’이라는 것이 공포되어, 모든 국민을 똑같이 빚어내려는 세뇌의 시대였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헌장의 첫 문장인데, 이상하게도 아직까지 잊히지 않는다. 내가 마음먹고 세상에 태어났다니, 참 수상한 일이다.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 덕택으로 세상에 태어났을 뿐인데, 그 문장은 어쩐지 괴상하기 짝이 없다. 더욱 가관인 것은, 문장의 주어가 ‘나’가 아니라 ‘우리’라는 점이다. 그 ‘우리’라는 말 앞에서 나는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나는 ‘우리’ 속의 한 사람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계몽으로 길들여져야 할 대상도 아니다. 나는 수많은 별들 중 하나, 고유하고 특별한 별이다. 하지만 세상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 나는 이름 없는 원석에 불과했다. 불안할 만큼 투명한 상태였고, 어떤 것으로도 미리 결정되지 않은 가능성 덩어리였다. 초면에는 흔하디 흔한 돌덩이처럼 보였을 것이다. 둥글고 거칠며 보잘것없는 돌덩이 하나.
그 돌 안에는 무엇이 숨어 있었을까. 나도 잘 모르는 나만의 이미지, 나만의 색깔, 나만의 결이 아니었을까. 아직 꺼내지 못한 이야기이며, 다듬어지지 못한 재능이고, 피어나지 않은 꿈이었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흔히 자신을 타인과 비교하며 “나는 특별하지 않다”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태어날 때부터 자신만의 모습을 띠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원석 속의 내 모습은 저절로 드러나지 않았다. 세상이라는 거친 끌과 망치에 부딪히고, 사랑의 따뜻한 손길이 닿으며, 실패와 배움의 과정을 거치면서 조금씩 형태를 드러냈다. 원하지 않게 부서져 나간 부분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부스러기조차 전체를 이루는 아름다운 균열이 되지 않았을까. 그런 과정을 통해 비로소 ‘나’라는 조각이 갖추어졌다.
그래서 나는 완벽할 수 없다. 완벽하게 태어나지도 않았고, 아무리 노력해도 완벽해질 수 없다. 그런데 완벽과 거리가 멀다는 데에 오히려 나의 존재 가치가 있다. 조각은 본래 완벽할 수 없고, 또 다른 조각들과 맞물려야만 완성에 다가가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 그 과정에 있다.
완벽한 ‘나’를 상상해 보라. 그건 어쩌면 가장 끔찍한 일일지도 모른다. 완벽해지는 순간, 성장은 멈춘다. 자동차나 냉장고 같은 완성품이 되고 나면 기다리는 것은 감가상각뿐이지 않은가.
나는 앞으로도 깎이고, 다듬어지고, 때로는 부서지며 살아갈 것이다. 삶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내 안에 분명 무언가가 있다. 아무리 두꺼운 돌 속에 가려 있어도, 그 본질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니 자책하지 않겠다. 남들과 다르지 않다고 해서, 지금 눈에 띄지 않는다고 해서 나를 놓지 않겠다. 나는 여전히 조각 중이니까. 나만의 결이 드러나는 그날을, 천천히 기다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