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_048] 아름다운 포기

by 여상욱

음력으로는 아직 9월이군요, 해가 서산을 넘어가면서 점점이 떠 있는 구름 사이로 초승달이 희미하게 얼굴을 드러냅니다. 어른 달, 보름달이 되기까지 골목에 하나 둘 들어오는 외등이 달빛을 대신하는 작은 강변 마을에 삽니다.

달빛을 데리고 들어오는 데는 나름 이야기가 깔려 있습니다. 열네 살,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나는 할아버지와 함께 사랑방을 사용하게 됩니다. 추석 명절을 쇠고 며칠 지나지 않은 밤이었어요. 10월 이맘때보다 조금 이른 때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할아버지와 겸상으로 식사를 마치고 조금 지났을까요, 번쩍 하고 갑자기 천장에서 불빛이 내려옵니다. 전깃불이 우리 집에 들어오는 순간이었어요.


그때 나는 등잔 위 호롱불과 남쪽 창밖 달빛 도움을 받아 그림 그리기 숙제를 하고 있었어요. 마침 가을걷이철이라 낮에는 농사일 거드느라 시간이 없었거던요. 크래용의 색상 구별도 제대로 하지 못할 정도로 희미한 불빚 아래 도화지를 펼치고 우리 동네 풍경을 그리고 있었지요. 갑자기 수십 배나 밝은 전등 불빛은 별천지를 이뤘습니다. 사랑방뿐만 아니라 본채의 큰방 건넌방은 물론 마루와 마당까지.


내가 구상하고 있는 도화지 위 사물의 색상을 모두 바꿔야 하는 사건이 일어난 것입니다. 등잔불 아래 보이는 색깔과 전등 아래 색상은 채도와 명도부터 달랐습니다. 12색 크래용으로는 다 표현할 수 없었어요. 보이는 대로 색칠하는 걸 미술로 알았던 눈높이를 가진 아이였어요. 안 그래도 초등학교 시절, 우리 집의 초가지붕을 그리는데 빛바랜 지붕 색깔을 칠할 크래용이 없어 지붕만 백지로 둔 채 그림을 제출했던 웃지 못할 기억이 있었어요.


그때부터 크레용이나 물감으로 그리는 미술이 싫어집니다. 어떤 방법으로든 세상을 도화지에 담아야 하는데 때마침 찾아온 사춘기를 앓으면서 영영 미술을 멀리 하게 됩니다. 이를 다른 말로 포기라고 하나요?


그로부터 십여 년이 흘러 미술을 전공한 아내를 맞게 됩니다. 아이 둘을 낳아 다 키워 출가시키고 손자에게 그림을 가르치는 아내를 보고 깨닫습니다.


그림은 '색으로 쓰는 글쓰기'라고... 지금 글쓰기에 푹 빠져 있는, 그때 열다섯 살 중학생이 미술을 포기한 건 아름다운 일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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