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 쉬 피로하고 지치고 , 특히 무력감이 느껴질 때 친구를 생각하게 된다." 지난해 5월 초순 어느 날, 때 아니게 일찍 찾아온 무더위 속 저녁나절 이야기를 꺼내 본다.
나그네와 곰 이야기, 잘 알 것이다. 길 가던 두 친구가 갑자기 나타난 곰 앞에서 한 다른 행동. 그 자리에 엎드려 죽은 체했던 친구가 곰이 한 말을 혼자 도망간 친구에게 전한다. "혼자 살자고 도망가는 친구는 친구가 아니다."라고.
내게는 사람 좋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한 친구가 있다. 졸업 후 40년이 지난 어느 날 우연히 길거리에서 만난 중학교 때 찐 친구다. 금융 기관에서 정년까지 근무하다가 퇴직했다. 중간에 보증을 잘못 서서 한방에 모든 걸 날리고, 그 여파로 부인과 이혼까지 하고 기초수급자로 근근이 살아간다. 거기다가 건강까지 나쁘다. 허리 디스크에 운동을 맘대로 못해 배까지 나와 걷는 게 많이 불편하다. 이 정도 상황이 되면 대부분 자기를 꽁꽁 숨기고 살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친구는 달랐다.
그날 해후를 하고 4년을 서로 연락하면서 지낸다. 세 번 정도 얼굴을 맞대었고, 그 외는 주로 SNS로 만났다. 그간에 나한테 거리낌 없이 자신의 과거를 다 털어놓았다. 물론 나도 그랬다. 그 친구를 고향에 내려가서 네 번째로 만나게 되었다.
친구가 사는 집 가까운 전철역에 내려서 알려준 주소를 치니 5분 소요된다고 한다. 핸드폰에 깔린 내비를 따라가는데 10분이 지나도 아파트가 나오질 않는다. 잘못 가고 있나 생각하여 두세 번 길을 더 물어보았으나 가고 있는 방향은 맞다고 한다. 물어물어 밤 10시가 넘어서 친구 집에 도착했다. 물론 친구는 아파트 단지 정문에서 부채를 부쳐가며 눈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었다.
뜨거운 여름밤인데 더 뜨거운 포옹을 나누고 같이 집으로 들어갔다. 한눈에 보아도 매우 좁은 공간의 아파트였다. 침실이 하나 따로 있긴 하나 정리 못한 짐들이 들앉아 거실을 자는 침실로 겸하고 있었다. 그런데 1인용 오래된 나무 탁자에 투명한 4홉들이 소주 한 병과 마트에서 파는 회 한 접시가 기다리고 있었다.
멀리서 오는 친구를 맞느라 아픈 허리에 다리를 절룩거리며 마트에 나가 준비해 놓았던 것 같다. 친구의 마음이 오롯이 내 심금에 째릿한 전류를 흐르게 했다. 흰 술병 바닥이 보일 때까지 두어 시간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이튿날 아침에 얼큰한 해장국을 먹기로 하고, 친구는 자신의 허리에 맞춘 간이침대에, 나는 발목만큼 이 들어가지 않는 작은 2인용 소파에 몸을 눕혔다.
멀리서 벗이 찾아왔다.(有朋自遠 不亦樂乎)
시간이 덧없음을 알기에, 우리는 순간을 더 마음 깊숙이 담으려고 애썼다. 서로의 따뜻함이 찐하게 교차해서일까, 두 사람의 마음이 30도를 웃도는 때 이른 5월의 무더위를 더 뜨겁게 달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친구를 맞는 친구나, 그 친구를 찾아간 친구나 이보다 더한 기쁨이 어딨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