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교과서를 탈출한 지 사십 년이 다 되어간다. 그럼에도 여태 그 손아귀를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교과서를 우려먹으며 30여 년을 밥벌이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무리 뒤척여 봐도 교과서는 폭력이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폭력의 유형은 '세뇌'였다.
2
뒤늦은 한국형 계몽주의 시대에 태어났다. 먹고살기도 힘든 시절, 할아비도 아비도 오로지 공부해야 한다고 다그쳤다. 내가 배우고 싶지도 않은 공부 방식. 받아쓰기, 구구단, 4지 선다형, 공식 외우기. 아교질에서 석회질로 굳어가는 시기, 학교와 좋은 성적이 목적어였다. 사회는 유교주의, 나라는 민주와 공산 이념이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는 분단국가. 3겹의 '우리' 프레임이 씌워져 생각까지 똑같이 하도록 강요받았다. 그 어디에도 '나'는 싹틀 자리가 없었다.
3
1968년 1월 북한의 김신조 일당이 청와대를 침투하려 했고, 4월에 향토예비군이 창설된다. 마을에서 농사짓던 아저씨들이 대나무 작대기를 들고 은행나무 아래 모여 총검술 훈련을 받는다. 아버지가 노란 완장을 끼고 도열한 청년들 사이에서 자세를 고쳐주던 광경이 생생하다. 같은 해 11월엔 또 하나의 비극 울진ㆍ삼척 지구 무장공비 침투 사건이 터진다. 동갑내기 '이승복'이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저항하다 처참한 죽음을 맞는다. 그해 12월엔 국민교육헌장이 선포되어 각급 학교 학생들은 헌장 전문을 암기하도록 강요받는다.
4
소속 회사 사무실 한 쪽에서 작은 소란이 일어난다.
"내가 하는 일에 대한 문서를 보내는데 왜 결재를 받아야 합니까?" 입사 3개월 밖에 되지 않은 신입 사원 한 사람이 10년 선배 상사한테 따지듯이 묻고 있다. 공문을 보내는 절차가 있다고만 하고, 그게 왜 필요한지는 설명하지 않는다. 그 절차가 왜 필요한 이유를 알아야 결재를 받겠다고, 당당히 맞서는 부하 직원, 그 사람이 '나'였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황당한 일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일은 수습되고 나는 주목받는 괴짜 신입 사원이 된다. 다행히 주어진 일 하나는 똑부러지게 해 내니까 파문을 일으켰지만 평상을 찾는데 그리 긴 시간을 요하지는 않았다. 도대체 조직 사회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나'였다.
5
공맹사상, 말씀이 곧 법도였다. 하나님도 부처님도 그러셨다. 부모자식은 원래 한 몸이라 하였다. 어찌 내키는 대로 살 수 있겠느냐. '도'라는 게 있는데 말이다, 나도 모르게 갖추어지는 마음의 나침반이 있었다.
닦아놓은 길을 따라 여기까지 왔다. 내 발로만 온 것으로 착각했다. 적어도 큰 아이 출가할 때까진 그리 알고 살았다. 내 발걸음 하나는 천지조화, 꽃과 열매는 하나였다. "어떻게 하면 자유롭게 살 수 있습니까?" 생긴 대로 살면 된다. 진정한 나를 찾을 수 있을까? 질문하면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