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_070]말이 아니라 행동에 주목하라

by 여상욱

어린왕자는 자신의 별을 떠나온 후에야 깨달았다. "장미의 말을 듣고 참을 수 없었어요. 하지만 행동을 보고 판단했어야 했어요." 가시를 세우면서도 자신을 보호해 달라던 장미, 허세를 부리면서도 떠나지 말아 달라던 장미. 그 모순된 말들 속에서 어린왕자는 진짜 마음을 읽지 못했다. 그리고 우리도 매일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의사와 표시의 불일치

민법은 인간 본성의 어떤 진실을 정확히 꿰뚫고 있다. 의사표시 조문에서 '의사'와 '표시'는 다를 수 있다고 명시한 것은, 법이 인간의 말을 그대로 믿지 않는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진심을 숨기고, 포장하고, 때로는 정반대로 말한다. "괜찮아"라고 말하면서 괜찮지 않고, "신경 안 써"라고 말하면서 가장 신경 쓰고, "관심 없어"라고 말하면서 가장 관심 있다.

법은 이것을 알고 있기에 표의자의 진정한 의사를 찾으려 노력한다. 계약서의 문언만이 아니라 전후 사정, 당사자의 행동, 거래의 관행을 종합적으로 판단한다. 법조차도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데, 우리는 왜 그토록 쉽게 말에 상처받고, 말을 믿고, 말에 속을까?

분노와 다툼의 메커니즘

다툼이 일어나는 순간을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패턴이 보인다. 대부분의 갈등은 '말'에서 시작되지만, '행동'의 누적에서 기인한다. 오랜 시간 쌓인 섭섭함, 무시당한 느낌, 배려받지 못한 경험들이 어느 순간 폭발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폭발은 정작 진짜 문제와는 다른 말로 표출된다.

"넌 맨날 그래!"라는 말속에는 '오늘 설거지를 안 했다'는 표면적 불만이 아니라, '나는 네게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구나'라는 깊은 상처가 있다. "이제 지겹다"는 말 뒤에는 '나를 좀 더 이해해 줬으면 좋겠다'는 간절함이 숨어 있다. 분노는 진심을 가장 효과적으로 왜곡하는 감정이다. 우리는 화가 났을 때 정작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하고, 가장 해서는 안 될 말을 한다.

혀의 배신

혀는 놀라울 정도로 부정직한 기관이다. 뇌가 명령한 말과 입 밖으로 나오는 말 사이에는 수많은 검열과 변형이 일어난다. 자존심, 두려움, 체면, 습관, 과거의 상처들이 모두 개입하여 진심을 뒤틀어놓는다.

"너 때문에"라고 말할 때 실은 "나는 불안해"인 경우가 많다. "네가 이해 못 해"라고 말할 때 사실은 "내가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어"일 수 있다. "상관없어"라고 말할 때 가장 상관있고, "별로 안 좋아해"라고 말할 때 가장 좋아한다. 혀는 진실을 전달하는 도구가 아니라, 진실을 보호하거나 숨기는 방어기제에 가깝다.

행동이라는 정직한 언어

그렇다면 어디에서 진심을 찾을 수 있을까? 답은 명확하다. 행동이다.

매일 아침 당신의 커피를 기억해서 타주는 사람, 당신이 좋아하는 빵을 사다 주는 사람, 당신의 말버릇을 기억하는 사람. 말은 "별거 아니야"라고 하지만, 그 행동은 "너는 내게 별이야"라고 말한다.

반대로 "사랑해"를 백 번 말하면서도 당신의 시간을 존중하지 않는 사람, 당신의 부탁을 계속 잊는 사람, 당신이 힘들 때 자리를 비우는 사람. 그들의 말이 아무리 달콤해도, 행동은 "너는 우선순위가 아니야"라고 말한다.

어린왕자의 장미는 까다롭고 허영심 많은 말들을 쏟아냈지만, 매일 가시를 세우며 자신을 지켰고, 어린왕자가 물을 주길 기다렸다. 그 행동들이 진심이었다. 말은 거짓말을 할 수 있지만, 반복되는 행동은 거짓말할 수 없다.

행동을 읽는 지혜

사람의 진심을 알고 싶다면, 귀를 조금 닫고 눈을 조금 더 크게 뜨라. 무엇을 말하는가 보다 무엇을 하는가를 보라. 한 번의 말보다 백 번의 행동을, 한순간의 약속보다 긴 시간의 습관을 보라.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것은 타인뿐 아니라 나 자신에게도 적용된다는 사실이다. 나는 정말로 그 사람을 사랑할까? 내 말이 아니라 내 행동이 답을 알고 있다. 나는 정말로 이 일을 하고 싶을까? 내 다짐이 아니라 내 시간 배분이 진실을 보여준다.

민법이 의사와 표시의 괴리를 인정하듯, 우리도 말과 진심의 괴리를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덜 상처받고, 더 정확히 사랑하고, 더 솔직히 살 수 있다.

결국 어린왕자는 깨달았다. 장미의 진심은 그녀의 말이 아니라, 매일 똑같은 자리에서 자신을 기다렸다는 사실에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우리도 깨달아야 한다. 사람의 진심은 혀가 아니라 손과 발과 시간에 있다는 것을.

말은 쉽게 나오지만, 행동에는 대가가 따른다. 그래서 행동이 더 정직하다. 말은 순간에 할 수 있지만, 행동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행동이 더 진실하다.

당신의 진심을 알고 싶은가? 당신의 말을 듣지 말고, 당신의 하루를 보라. 타인의 마음을 알고 싶은가? 그의 말을 듣지 말고, 그의 선택을 보라. 장미의 가시처럼, 행동은 말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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