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밥을 먹어줘서 고마워.

너의 허기를 채울 수 있다면.

by 상처입은 치유자

금요일 4시 20분. 핸드폰을 무음으로 하고 뒤집어 놓는다. 그래도 내 시선은 자꾸 핸드폰으로 간다. 손가락은 키보드 위에서 바삐 움직이며 문서를 작성하고 있지만, 여전히 시선의 한 부분은 나의 핸드폰을 감시하고 있다.


내 손은 기어이 핸드폰을 뒤집는다. 손에 전해 오는 두 번의 진동. 부재중 전화다.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다.


핸드폰 액정한참 바라본다. 가까스로 '부재중 전화'를 터치한다. 다시 한 숨. 수화기 모양 동그라미일 뿐인데 마치 시한폭탄 버튼같다. 또 다시 . 내 손가락을 버튼 위에 살짝 갖다 댄다.


"어~~~ 우리 ***!! 전화했었네~~" 목소리를 한껏 올린다.

휴~ 다행이다. 오늘은 학원에 간다고 한다. 핸드폰 화면을 위에서 쭉 긁어내려 진동모드 버튼을 가볍게 누른다. 퇴근길에 노래를 흥얼거렸다.


가벼운 손놀림으로 두부를 뜨끈하게 데운다. 잘 익은 김장김치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시큼한 냄새에 벌써 침이 고여있다. 밥친구로 틀어 놓은 뉴스의 앵커의 목소리에 마음까지 늘어진다. 적당한 크기로 자른 두부 위에 김치를 올린다. 이게 바로 저녁이지.


이이잉...위이이잉~~


멈칫. 핸드폰 액정을 바라본다. 깊은 한숨을 쉰다. 다시 시한폭탄 버튼을 바라본다. 목을 한번 가다듬는다.

"어~~~~ 우리 ***!! 벌써 끝났어?"

"엄마..... 나.... 집 그냥 가고 싶어...."

중학생이 이렇게 어린아이처럼 말할 수 있다니.


눈알을 굴려본다. 허공에서 적당한 말을 찾는다.

"어어.. 힘들어?"


"집에 오고 싶어?"라고 아이의 말을 따라 하면서 나의 눈은 여전히 말을 찾고 있다. 정답을 내놓으라고!! 그 바쁜 와중에도 두부김치는 포기하지 않고 입에 넣는다. 우물우물.


아이가 돌아오면 안아주며 "애썼다"라고 말하겠다고 머릿속에서 리허설을 수없이 한다.


삐삐삐삐삐. 커덩. 왔다. 연습한 대로만 해보자. 여기에 나는 없는 거다. 리허설하던 그 엄마를 데려오자.

"애썼어! 우리 ***! 추웠지?" 서늘한 아이의 시선이 내 마음에 꽂힌다. 그래 아이는 눈빛으로 비수를 꽂는거다. 이건 대본에 없던 건데. 아뿔싸. 내가 선택한 시나리오는... 흥행에 실패했다.


"엄마 때문이야. 엄마는 부족해. 애를 이렇게 키울 거면 엄마는 결혼도 하지 말고 나를 낳지도 말아야 했어!!!!"

더 심한 말도 있는데 혹시 궁금하시다면.. 아니다 그래도 안 된다. 순간의 실수는 누구에게나 있다. 난 이 아이의 성장을 믿는다.


레퍼토리의 시작. 반사적으로 핸드폰을 들어 녹음 버튼을 누른다. 아이가 나에게 퍼붓는 저주를 내 손으로 기록한다.


"이 상황에 녹음이라니..."라는 생각이 스친다. 다시 듣고 아이의 마음을 알아보려는 목적이라고는 하지만 혼자 감당하기 힘들어서 이기도 하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왠지 누군가가 함께 들어주는 것 같아서.


물론 나는 진정 이 아이가 나를 왜 힘들게 하는 엄마라고 생각하는지 가슴 아리게 알고 싶다. 왜 이 아이는 우리 집에 태어난 것을 불행이라는 단어 표현하는 것일까.


이상하게도 아이가 모진말을 쏟아낼수록 오묘한 개운함이 들었다. 식물 쓰레기를 버리는 느낌이다.

'적어도 이 아이는 내 앞에서 들다고 외치는 구나!'

엄마를 믿어서라고..믿고싶다.


"내 방에서 나가!" 드디어 사춘기 아이의 시그니처 문장이 나왔다. 나는 더 있고 싶지만, 너의 독립 연습을 존중하지. 흠.. 어차피 대학원 수업이라 나가긴 해야 해. 내가 나간다, 나가!


"엄마는 방에 있으니 도움이 필요하면 말해. 그리고 밥은 식탁 위에 있어. 배고프면 언제든지 먹고."

엄마가 차린 밥 따위는 쳐다보고 싶지도 않다는 아이의 뒤통수에 대고 기계적인 안내 멘트를 날렸다. 내가 쿨한 엄마 연기를 위해 평소 연습했던 대사다.


'은근 통쾌하다. 좋아쓰!! 흥분 안 해쓰!!'

이번엔 오디션에 통과할 수 있을까.


닫힌 문 방 안에서 아이는 온갖 저주를 우당탕탕 소리와 함께 퍼붓는다. 고요함. 귀를 기울인다.


화장실 전등 버튼이 딸깍. 쏴~ 물을 틀고 세수하는 소리다. 덜그럭. 차려놓은 카레라이스를 벅벅 숟가락 긁는 소리를 내며 먹는다.


네가 고통스럽게 토해낸 힘듦 자리에 엄마 밥을 넣는다니.. 그릇을 긁어 끝까지 밥을 먹는 너의 소리가 그 어떤 소리보다 위안을 준다.


"계란은 안 먹었네? 먹을래? 김치랑 먹으면 맛있어!"

"어... 그래... 좋아요."


세상 순진한 어린아이처럼 계란프라이를 받아 들고 고분고분 먹는다. '이제 풀어졌니?'라는 촌스런 반응 따윈 넣어둔다.


이 일이 언제 끝날지, 과연 답이 있는 시험일지 이번 오디션은 통과인지, 내 시나리오는 흥행을 수 있을지..아무 것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오늘은 일단 덮어두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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