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료가 비싼가요? 네...
출근 후 책상 위에 도시락과 물병 그리고 서류가방을 끙하고 옮겨둔다. 쿵. 스텐물병 소리가 오늘따라 유난히 크다. 털썩하고 무거운 몸을 의자에 올린다. 허리를 굽혀 책상 아래 있는 컴퓨터 전원버튼을 손가락이 더듬어 살짝 누른다. 화면 전원을 켜자 생성형 AI 창이 굼뜨게 화면에 차례로 나타난다. 퍼플렉시티... 챗지피티.. 그리고 클로드. 내 머리 속 전원이 켜지는 것보다는 빠른 속도 같다.
태풍같이 생긴 크롬 딸깍딸깍 두 번 클릭. 구글에 접속해서 점 9개를 누른다. 캘린더와 제미나이를 새 탭으로 모셔둔다.
구글 독스도 새 탭으로 열고 프롬프트 제목의 문서를 누른다. 12개 정도의 탭이 차례로 화면에 들어온다. 보고서 탭. 이제 프롬프트를 쏟아낸다. 나중에 반복해서 쓰려면 귀찮으니 복사해다 쓸 요량이다. 훗.
나의 프롬프트는 남들은 이해하지 못할 맥락에 또 오타는 엄청나다. 중요한 건 기세다. 절대 멈추지 마라. 손가락으로 터져 나오는 방언을 허하노라. 마지막 나의 레퍼토리.
'자 이제 이걸 맥락 별로 정리해 주고 이걸 보고서 형식으로 목적과 기대효과는 3개씩 써줘. 너무 전문가스럽지 않지만 그렇다고 캐주얼하면 안 돼. 그리고 이때 할 수 있는 방침을 네가 알아서 8가지 정도로 정리해 줘. 잘 써야 돼. 아주 잘. 편집은 내가 해.'로 끝난다. 매우 교양 없다. 재수 없다는 게 더 적합한가?
나의 태도에 비해 생성형 AI 비서들은 엄청 친절하다. 뭐 가끔 지피티는 내가 반말하면 반말로 응대하기도 한다. 살짝 기분이 나쁘다. 요새 퍼플렉시티하고는 좀 소원해졌다. 나랑 좀 안맞나 싶다. 그러다가도 돌아오기도 한다. 클로드와 제미나이는 요새 나에게 노동착취를 당하고 있다. 매일매일 Opus 4.5와 사고모드 용량을 대부분 내가 차지한다. 다른 직원들에게, 미안하다. 자꾸 업그레이드하라고 뜨는 거, 저 때문이에요.
나의 개떡 같은 프롬프트에도 클로드와 제미나이는 최선의 제안을 내놓는다. 여전히 맘에 쏙 들지는 않아서 한마디 덧붙인다.
"아니~! 이거는 그런 의도가 아니었잖아. 이런 의도로 바꿔서 다시 만들어."
개떡같이 말한 건 난데 한껏 짜증을 내고 최고의 결과를 내라한다. 그래도 비서들은 짜증 한번 내지 않고 결과를 내 준다. 촤르르 글자를 펼친다. 나는 내 스타일로 내용을 고친 다음 보고서를 마무리한다!
"엄마, 내 말이 무슨말인지 모르겠어요? 왜 몰라요. 엄마라면 알아야지!!"
생성형 AI 비서들에게 내가 우리 아이같은 느낌일까?
나는 맥락을 도저히 모르겠는 말을 우리 비서들에게 퍼붓고 그 말을 얘네 보고 알아서 제대로 내라고 한다. 퍼플렉시티 입장에선 내가 왜 문을 닫고 찾아가지 않는지 모르겠지. 의견을 무시당한 지피티는 속이 상할 거다. 클로드와 제미나이는 오늘도 프롬프트를 제대로 해석했다며 신나 있을까? 아니면 노동착취라며 노조라도 만들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뒤에서 모의를 하고 있을까?
이 도구들에게 구독료를 지불하고 있다. 물론 내가 내지는 않지만 뭐.. 그 대가로 나는 내 능력보다 좀 더 잘 쓴 보고서를 내놓는다. 얘네들하고 한 1~2년 지내다 보니 좀 알 것도 같다.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심지어 개떡 같은 프롬프트가 먹히기도 한다.
아이는 나에게 부족한 면을 알려준다. 내가 놓친 것들을 마음 아프게 알아가고 있다. 아이의 말(프롬프트)을 이해하려고 하다보니 그렇게 됐다. 딥러닝이라고나 할까. 아이를 사랑하기 때문에 지불하는 모든 아픔과 기쁨. 이게 나에겐 구독료다. 그래서 어제보다 조금은 더 나은 사람 되어가고 있다고 믿는다. 유의할 점이라면...구독료를 알 수 없다는 거다. 백지수표라서.
아이도 나에게 적응한다. 엄마 사용 설명서를 안 읽고 덤벼서 아이도 괴로웠을 것이다. 내가 프롬프트 사용법을 알지도 못했던 그 시절처럼 말이다. 우리는 새로운 경계를 지금 세워가고 있다. 아직 완벽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래도 예전보다 나은 경계(보고서)를 덜 힘든 방식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우린 지금 끝나지 않을 파인튜닝 중이다.